1943년 3월부터 제5공군 제5돌격항공군단 제4근위돌격항공사단 소속으로 보로네시 전선군,
제1우크라이나전선군,
제2우크라이나전선군을 지원했다. 1943년 10월 20일, 21번의 임무 투입 후 130번의 작전을 완수한 베레고보이는 레닌훈장과 알렉산드르 넵스키 훈장을 받았다.
리보프-산도미에시 작전 당시
독일 국방군의 전차,
열차포 다수를 파괴했으며, 짧은 시간 내에 방공망이 가장 취약한 곳을 찾아내는 실력이 좋았다고 한다.
쿠르스크 전투 당시 베레고보이는
일류신 전투기 편대 선두에 서던 도중 2배 정도 되는
독일 공군 전투기를 마주하게 됐다. 아군이 이목을 끌어 베레고보이의 도주를 지원했지만
메서슈미트 전투기의 공격으로 그의
Il-2는 격추되고 말았다. 위 사고를 포함해 베레고보이는 3번의 추락을 겪고 3번 모두 탈출에 성공했다. 총 186회의 전투를 끝낸 베레고보이는 1944년 10월 26일
소련 최고회의 상무회 법령에 따라
금성메달을 받았다.
1948년 고등장교과정,
테스트 파일럿 훈련과정을 수료해 소련 공군 국립 연구소에서 테스트 파일럿으로 복무했다.
MiG-15,
MiG-19를 비롯한 60가지 이상의 항공기를 직접 조종했으며, 소련 최초로 제트 추진식 전투기 조종을 마스터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그의 능력을 인정받아
수호이 설계국에서 파일럿들에게 요잉 현상 탈출법을 비롯한 여러 전술을 가르쳤다.
1963년, 베레고보이는 40세가 넘는 나이에 우주 비행사를 꿈꾸게 됐다. 의사와 여러 전문가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1968년 10월 26일, 소유즈 3호에 탑승했다. 30일 무사히 귀환한 베레고보이는 후배 비행사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말해주며 여러 번
우주에 나가고 싶다는 입장을 밝혔다. 많은 나이를 무릅쓰고 우주 비행사로서의 꿈을 이룬 뒤 11월 1일 두 번째 금성메달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