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한국어의 주격 조사로 받침이 있을 때는 '이'가 된다. 다른 조사/어미가 받침/무받침 형태가 거의 비슷한 것과 달리(로/으로, 은/는 등) 주격 조사는 형태가 크게 달라서 이목을 끈다.2. 유래
대체로 17세기 즈음부터 '가'가 쓰이기 시작한 것으로 본다. 그 이전에는 자음 뒤에서는 '이'가, 모음 뒤에서는 'ㅣ'가 쓰였고, /i/, /j/ 뒤에서는 쓰이지 않았다. '가'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가설이 있으며, 아직까지 정설은 없다. 주격조사 ‘-가’의 발생에 대하여(HWP 파일)일본어 주격 조사 が의 차용이라는 가설도 있으나[1][2] 문법 요소의 차용이 드물다는 점과 최초로 '가'가 등장하는 문헌이[3][4] 임진왜란 전에 작성됐다는 점 때문에 주류 학계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다만 2021년 이용규의 최신 논문에 따르면 "우선 주격 조사 ‘-가’가 ≪ 첩해신어(捷解新語)≫에서 처음 등장한 이후에 그 쓰임이 확대되었음을 확인하였다. 또한 첩해신어의 저자가 피로인(被擄人) 출신 왜학 역관이라는 점에 주목하여, 일본과 밀접하게 접촉한 바 있는 왜학 역관들의 언어가 일본어에 영향을 받은 바 있음을 확인하였다. 또한 실록 기사 등을 바탕으로 임진왜란 이후에 일본어의 영향이 한반도에 남아 있었음을 확인하였다. 이 외에도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시기에 일본에 잡혀 갔던 피로인들이 돌아온 시기와 주격 조사 ‘-가’의 쓰임이 확대되는 시기가 겹치는 점을 강조하여, 주격 조사 ‘-가’의 등장이 일본어의 영향일 가능성을 제고(提高)하였다."라고 하며 일본어 차용 가능성을 내비쳤다. 즉 단정적으로 부정하기는 어렵다.
3. 관련 문서
[1]
鄭光 (1968) 主格 ‘가’의 發達에 對하여 -, <우리문화> 2.
[2]
'~가'가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문헌들에는 주격조사로 쓰인 경우가 거의 없다가,
임진왜란 후부터 빈번히 쓰였다.
[3]
죽산안씨 언간
[4]
다만, 죽산안씨 언간에 등장하는 '가'가 주격 조사가 맞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