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25 시즌 참가 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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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K 아우스트리아 클라겐푸르트 로고.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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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데스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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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리그 및 대표팀 |
SportKlub Rapid Wie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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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라피트 빈 | SK 라피트 II |
''' SK 라피트 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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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Rapid Wien | |
<colbgcolor=#005536><colcolor=#fff> 정식 명칭 | SportKlub Rapid Wien |
별칭 | Die Grün-Weißen(초록-하양), Hütteldorfer |
창단 | 1899년 1월 8일 ([age(1899-01-08)]주년)[1][2] |
소속 리그 | 분데스리가 (Bundesliga) |
연고지 |
빈 14번 지구 펜칭 휘텔도르프 (Hütteldorf, Penzing, Wien) |
홈구장 |
알리안츠 슈타디온 (Allianz Stadion) (28,000명 수용) |
라이벌 | FK 아우스트리아 빈 - 빈 더비 |
구단주 | 미하엘 크라머 (Michael Krammer) |
감독 | 로베르트 클라우스 (Robert Klauß) |
주장 | 기도 부르크슈탈러 (Guido Burgstaller) |
공식 웹사이트 | |
우승 기록 | |
★★★ 분데스리가 (1부) (32회, 최다 우승) |
1911-12, 1912-13, 1915-16, 1916-17, 1918-19, 1919-20, 1920-21, 1922-23, 1928-29, 1929-30, 1934-35, 1937-38, 1939-40, 1940-41, 1945-46, 1947-48, 1950-51, 1951-52, 1953-54, 1955-56, 1956-57, 1959-60, 1963-64, 1966-67, 1967-68, 1981-82, 1982-83, 1986-87, 1987-88, 1995-96, 2004-05, 2007-08 |
ÖFB컵 (14회) |
1918-19, 1919-20, 1926-27, 1945-46, 1960-61, 1967-68, 1968-69, 1971-72, 1975-76, 1982-83, 1983-84, 1984-85, 1986-87, 1994-95 |
ÖFB슈퍼컵 (4회) |
1985-86, 1986-87, 1987-88, 2007-08비공식 |
미트로파컵 (2회) |
1929-30, 1950-51 |
독일 축구 선수권 대회[3] (1회) |
1940-41 |
DFB-포칼 (1회) |
1937-38 |
[clearfix]
1. 개요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 14번 지구 펜칭의 휘텔도르프를 연고로 하는 축구 구단이다.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성공한 구단이며 단 한번도 강등을 겪지않은 팀이기도 하다. 같은 연고지인 아우스트리아 빈과는 오랜 앙숙이지만 신흥강호 FC 레드불 잘츠부르크에게 사이좋게 밀리는 상황에 처해 있다.2. 역사
1897년, 에르스터 비너 아르바이터 푸스발 클럽(Erster Wiener Arbeiter-Fußball-Club)[4]에서 출발하였으며, 1898년에 SK 라피트 빈으로 지금의 구단 명칭을 정하게 되었다.[5] 구단의 컬러는 원래 빨간색과 파란색이였지만 1905년부터 하양색과 초록색으로 정해졌으며 이는 쭉 이어지고 있다.창단 초기에는 따로 홈구장 없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이 사용하던 연병장에서 경기를 진행했다. 당시 오스트리아 축구리그에는 빈을 연고지로 하는 구단만 참가했는데, 당시 라피트 빈은 빈 내에서도 약체였기에 항상 하위권에 머물렀다. 1898년에는 SK 아드미라 빈에게 홈에서 0대20으로 패하기도 했다.
1900년 오스트리아에 첫 축구협회가 설립되면서 타그블라트 포칼 Tagblatt-Pokal이라는 전국리가가 생겼고, 2부 리그에 참가했다. 1901년부터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전체를 포함한 리가가 출범했다. 1903년 첫 홈구장인 라피트플라츠 Rapidplatz가 지어졌는데, 경기장이 기울어져 있어 양쪽 골대의 높이차가 2미터가 넘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지만 이를 잘 이용해 빈 SC를 꺾고 1부리그 승격에 성공했다. 승격후인 1908년 구단 창단 10주년을 맞이해 경기장에 관람석을 짓는 등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이러한 무리한 공사가 구단의 부채로 돌아왔고, 1910년 유지비를 지불하지 못하고 결국 라피트플라츠를 철거했다.
부채로 휘청이던 구단에서 선수로 뛰던 디오니스 쇠네커가 은퇴후 감독직에 부임해 팀을 무너지지 않게 이끌었다. 1911년 새 홈구장인 파르비제[6]를 완공시켰고 1911년 새롭게 설립된 오스트리아 챔피언십의 원년 멤버가 되었다. 리그 참가 첫해에 20경기에서 15승을 거두며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초대 우승클럽이 되는 명예를 누린다.
이후 FK 아우스트리아 빈과 엎치락뒤치락하며 미트로파컵, ÖFB컵 오스트리아 리그 등 가리지않고 상위권에 자리했고, 오스트리아 최고의 강팀자리를 내려놓지 않았다. 현재 독일의 FC 바이에른 뮌헨급의 위상. 제2차 세계 대전의 여파로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병합되었을 때에도 가우리가, DFB-포칼에서 우승하는 기염을 토했다. 1955년 UEFA 챔피언스 리그가 설립되자 여기서도 원년멤버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나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우승 타이틀이 없는 13년의 시간을 보냈다. 1967-68시즌 마지막 우승 이후 1981-82시즌 우승하기 전까지 우승하지 못했다. 1977년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가 출범했지만 갈수록 옛날의 명성보다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처음으로 강등위기설이 돌기도 했지만 다행히 강등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2004-05시즌, 2007-08시즌 우승을 차지하며 다시 예전의 명성을 찾나 했지만 당시 신흥 강호였던 FC 레드불 잘츠부르크가 나타나며 우승을 기록하지 못하고 있다.
2010년대 후반부터는 그래도 기본적인 실력은 있어서 컵 대회에서는 결승까지 가나 준우승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3. 여담
- 오스트리아의 최고 명문답게 각종 기록도 있다. 일단 초대 유러피언컵 대회에 참가한 원년멤버이며 PSV 에인트호번을 종합 스코어 6-1로 이기며 구단 역사상 최초의 8강 진출을 이뤘다.[7] 1960-61시즌에는 유로피언 컵 준결승 진출까지 해냈으며, 준결승에서는 당시즌 대회 우승팀인 벤피카를 만나 4-1로 지며 탈락하였다. UEFA 컵위너스컵에서도 나름 성과를 냈으며, 1984-85 시즌과 1995-96 시즌에 결승까지 진출하지만 각각 에버튼 FC와 파리 생제르맹 FC에게 패하여 준우승에 그쳤다.
- 2009-10 시즌과 2010-11 시즌 UEFA 유로파리그 예선에서 EPL의 아스톤 빌라를 연이어 탈락시킨 바 있다.
- 안슐루스로 인해 나치 독일 시절에는 오스트리아 1부 리그에서 우승하면 독일 챔피언십에 참가하기도 하였으며, 1938년에는 DFB-포칼, 1941년에는 독일 챔피언십을 우승하였다. 이는 오스트리아 최초의 독일 대회 우승이며, 분데스리가 유일의 오스트리아 우승 클럽이다.
- 자회사로 MVNO 브랜드인 라피트 모빌(Rapid Mobil)을 가지고 있다.
- 경기가 끝나기 15분 전에 Rapid-Viertelstunde라는 응원방식이 있다. 즉, 홈에서든 원정에서든 점수에 관계없이 리드미컬한 박수를 치는 것이다. 유래는 1910년대로 거슬려 가야한다.
4. 소속 선수
5. 둘러 보기
[1]
1897년
7월 22일에 에르스터 빈 AFC로 창단되었으나, 구단의 공식 창립일은 라피트 빈으로 명칭이 변경된 날로 보고있다.
[2]
#
[3]
분데스리가 출범 이전의 리그로, 각 지역 리그의 우승자들끼리 경기를 해서 전국 챔피언을 가려내는 방식이었다. 1938년에 나치독일이 오스트리아를 병합하면서 독일 축구 협회로 편입 되었다.
[4]
빈의 첫번째 노동자 축구 클럽이라는 뜻이다.
[5]
독일의
라피데 베를린이라는 구단의 명칭을 따라한 것이다.
[6]
현재 홈구장인
알리안츠 슈타디온이 지어지기 전까지 70년동안 사용했다.
[7]
그러나 8강에서
AC 밀란에게 8-3으로 패하며 탈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