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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30 01:14:00

1986년 월드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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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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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시리즈 일람
198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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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뉴욕 메츠
1987년
미네소타 트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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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
리그
챔피언십

ALCS NLCS
1986
월드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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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1986worldserieschampionamazingmets.gif
1986년 월드 시리즈 우승팀
뉴욕 메츠
MVP 레이 나이트
And the Sox are down to their last strike, and this crowd is really ready to reach the heavens now. (...) Got him!
마지막 스트라이크 하나에 몰려있는 레드삭스, 이곳의 관중들은 천국에 닿을 준비가 진작에 되어 있습니다. (...) 삼진 아웃![1]
(...) And now the crowd salutes them as they can say, truly, '[[뉴욕 메츠|We]] are number one!'
이제 관중들이 선수들에게 진심을 담아 이렇게 경의를 표합니다. '[[뉴욕 메츠|우리]]가 1등이야!'
NBC 빈 스컬리의 우승 콜
파일:1986년 월드 시리즈 로고.svg
1986 월드 시리즈 로고

1. 개요2. 양팀 사정3. 진행
3.1. 1차전3.2. 2차전3.3. 3차전3.4. 4차전3.5. 5차전3.6. 6차전3.7. 7차전
4. 과연 빌 버크너는 원흉이었는가?
4.1. 존 맥나마라 보스턴 감독의 패착
5. 기타

1. 개요

1986 MLB WORLD SERIES
파일:보스턴 레드삭스 모자 로고.svg 파일:뉴욕 메츠 로고.svg
보스턴 레드삭스 뉴욕 메츠

1986년 10월 18일부터 시작해 10월 27일까지 7차전으로 막을 내린 뉴욕 메츠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월드 시리즈경기. 1969년 월드 시리즈 우승 이후로 첫 우승을 노리는 메츠와 밤비노의 저주를 끊기위한 레드삭스간의 치열한 사투로 상징되었던 이 경기는 결국 레드삭스의 삽질과 메츠의 탄탄한 불펜진들의 역투로 메츠에 구단의 두 번째 우승 트로피를 안겨주는 대회가 되었고. 레드삭스는 그저 내후년에 다시 한번을 외치며 피눈물을 쏟고 돌아가야하는 보스턴 팬들에게는 그야말로 악몽과 멘붕을 동시에 가져다 준 대회였다.[2] 보스턴은 18년 후에야 밤비노의 저주를 끊어버린다.

2. 양팀 사정

2.1. 1986 뉴욕 메츠

1984년과 1985년에 디비전 2위를 차지했던 메츠는 선수단에 변화를 가져왔다.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좌완 밥 오헤다를 데려오고[3] 미네소타 트윈스에서 팀 터플을 트레이드 해 데려왔는데 이때 머니볼의 실제 주인공 ' 빌리 빈'이 메츠에서 트윈스로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이미 대럴 스트로베리, 키스 에르난데스, 게리 카터, 월리 백맨, 무키 윌슨, 그리고 레이 나이트로 이뤄진 베테랑 야수진에 최연소 사이 영 상 수상으로 이름을 알린 드와이트 구든, 시드 페르난데스의 선발진, 로저 맥도웰과 마무리 제시 오로스코로 이어지는 화려한 불펜진을 구축했고, 1984년부터 팀을 맡아온 데이비 존슨 감독의 지도력도 정점에 올라 그야말로 월드 시리즈 우승을 위한 준비를 마쳤다. 시즌을 시작하기에 앞서 존슨 감독은 스프링 트레이닝 때 선수들에게 NL 동부지구를 장악하겠다고 말했다.

1986년 시즌 첫 시작은 그저 그랬다. 2승 3패로 시즌을 시작한 메츠는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홈경기를 시작으로 그해 4월 24일에 있었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경기까지 무려 11연승을 올려 13승 3패로 4월을 마감하면서 승승장구해 갔다. 이어 8월에는 11경기 중 8경기를 이기고 그 후로도 계속 경기를 이겨나가면서 팀 사상 최고의 기록인 108승 54패로 2위인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무려 21.5경기차로 발라버리는 괴력을 발휘했다[4]. 참고로 더 소름끼치는 것은 이 해에 메츠에게 위닝시리즈를 기록한 유일한 팀이 바로 2위였던 필리스였다. 역시 메츠의 철천지 웬수답다.

이렇게 정규시즌을 무시무시한 괴력으로 끝낸 메츠는 서부지구 우승팀이었던 휴스턴 애스트로스 NLCS을 치르게 되고, 6차전에서 무려 연장 16회까지 가는 접전끝에 7:6으로 애스트로스를 제압하고 구단 사상 세번째 월드 시리즈 진출을 이뤘다[5].

로스터

릭 아길레라, 월리 백맨, 게리 카터, 론 달링, 레니 다익스트라, 케빈 엘스터, 시드 페르난데스, 드와이트 구든, 대니 힙, 키스 에르난데스, 하워드 존슨, 레이 나이트, 리 마질리, 로저 맥도웰, 케빈 미첼, 밥 오헤다, 제시 오로스코, 라파엘 산타나, 더그 시스크, 대럴 스트로베리, 팀 터펠, 무키 윌슨, 에드 헌, 랜디 니만

2.2. 1986 보스턴 레드삭스

보스턴 레드삭스 역시 만만치 않았다. 웨이드 보그스, 돈 베일러, 드와이트 에반스, 짐 라이스, 그리고 데이브 헨더슨이 포진한 방망이는 거의 공포 수준이었는데다가 브루스 허스트, '휘발유통(Oil Can)' 데니스 보이드, 그리고 지금은 영 좋지 않은 이미지지만 전대미문의 정규이닝 20K에 24승 4패 2.48 238K를 찍고 시즌 종료 후 사이 영 상은 물론 MVP까지 석권하는 에이스 로저 클레멘스가 버티고 있는 선발진은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여기에다가 마이크 그린웰이라는 신인이 좌익수 자리에서 포텐을 터뜨리려 하고 있었다.

이러한 방망이와 선발진의 강력한 조화는 아메리칸 리그를 초토화 시키는데 충분했고 마침내 95승 66패로 2위이면서 철천지 원수인 뉴욕 양키스를 5.5경기차로 따돌리고 아메리칸 리그 서부지구 우승팀이었던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ALCS을 가졌다. 그런데 레드삭스는 오히려 에인절스에게 완전히 밀릴 뻔 했다. 4차전까지만 해도 1승 3패로 뒤지고 있던 레드삭스는 5차전, 9회 초까지 2:5로 뒤진 상황에서 에인절스의 팀 최초 월드 시리즈 진출을 내줄 판이었으나, 그 순간 돈 베일러의 2점 홈런으로 1점 차까지 육박했고, 그리고 1점을 지키러 나온 에인절스의 구원투수 도니 무어[6]를 상대로 데이브 헨더슨이 투아웃 후 극적인 역전 2점 홈런을 시전하며 연장 사투 끝에 7:6으로 역전승을 거뒀다. 그리고 남은 2게임까지 연승하며 4승 3패로 기사회생,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다.[7]

로스터

토니 아르마스, 마티 배럿, 돈 베일러, 웨이드 보그스, 오일 캔 보이드, 빌 버크너, 로저 클레멘스, 스티브 크로포드, 드와이트 에반스, 리치 겟맨, 마이크 그린웰, 데이브 헨더슨, 브루스 허스트, 알 니퍼, 스파이크 오웬, 짐 라이스, 에드 로메로, 조 삼비토, 캘빈 슈랄디, 밥 스탠리, 데이브 스테이플턴, 마크 설리반, 팀 롤러, 새미 스튜어트

3. 진행

당시 1·2·6·7차전은 메츠의 홈구장인 셰이 스타디움에서, 3·4·5차전은 레드삭스의 홈구장인 펜웨이 파크에서 열렸다.

3.1. 1차전

1986년 10월 18일 셰이 스타디움
선발 1 2 3 4 5 6 7 8 9 R H E
BOS 브루스 허스트 0 0 0 0 0 0 1 0 0 1 5 0
NYM 론 달링 0 0 0 0 0 0 0 0 0 0 4 1
승: 브루스 허스트(1승)
패: 론 달링(1패)
세:캘빈 슈랄디(1세)

1차전 선발인 메츠의 론 달링과 레드삭스의 브루스 허스트는 6회말까지 용호상박의 호투를 보이면서 0:0의 팽팽한 승부를 이어갔다. 그러나 7회초 1사 2루 상황에서 리치 겟맨의 평범한 2루수앞 땅볼을 메츠의 2루수 팀 터플이 고대로 가랑이 사이로 알을 까면서... 이날 경기의 유일한 득점이 이렇게 나오고 만다. 삭스의 허스트가 8이닝 무실점으로 승리투수. 캘빈 슈랄디가 1이닝 세이브를 따냈고, 메츠의 선발 론 달링은 7이닝 비자책 1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되고 만다. 나중에 나온 말이지만, 이 경기가 어찌보면 6차전의 프리퀄 격이라고 할수 있을것이다.

3.2. 2차전

1986년 10월 19일 셰이 스타디움
선발 1 2 3 4 5 6 7 8 9 R H E
BOS 로저 클레멘스 0 0 3 1 2 0 2 0 1 9 18 0
NYM 드와이트 구든 0 0 2 0 1 0 0 0 0 3 8 1
승: 스티브 크로포드(1승)
패: 드와이트 구든(1패)
세: 밥 스탠리(1세)

2차전에서는 양 팀의 실질적인 에이스였던 드와이트 구든 로저 클레멘스가 출격했지만 버틸 수가 없다! 둘 다 5회를 넘기지 못하는 멘붕경기를 펼친 가운데 장단 18안타를 폭발시킨 보스턴이 구든에게 5이닝 6실점 패전을 안기면서 9대 3으로 승리를 가져가면서 2승이라는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 속에 여유있게 홈으로 향하게 됐다.

3.3. 3차전

1986년 10월 21일 펜웨이 파크
선발 1 2 3 4 5 6 7 8 9 R H E
NYM 밥 오헤다 4 0 0 0 0 0 2 1 0 7 13 0
BOS 오일 캔 보이드 0 0 1 0 0 0 0 0 0 1 5 0
승: 밥 오헤다(1승)
패:오일 캔 보이드(1패)

홈에서 열린 2차전에서 투수들이 무너지며 2연패를 한 메츠였으나, 3차전에서는 선발투수 밥 오헤다의 7이닝 1실점 호투와 1회초에 터진 레니 다익스트라의 선두타자 홈런을 기점으로 하여 보스턴 선발 데니스 보이드를 장단 5안타 4득점으로 두들기며 일찌감치 경기를 가져오는데 성공한다. 다익스트라는 이날 5타수 4안타 1홈런 2득점으로 훨훨 날면서 보스턴 투수들을 앞장서서 두들겨패는데 일조한다.

3.4. 4차전

1986년 10월 22일 펜웨이 파크
선발 1 2 3 4 5 6 7 8 9 R H E
NYM 론 달링 0 0 0 3 0 0 2 1 0 6 12 0
BOS 알 니퍼 0 0 0 0 0 0 0 2 0 2 7 1
승: 론 달링(1승 1패)
패:알 니퍼(1패)
세: 제시 오로스코(1세)

시리즈 1승 2패로 몰려있던 메츠는 선발투수 론 달링의 7이닝 무실점 역투와 해결사 안방마님 게리 카터의 2홈런 3타점 원맨쇼에 힘입어 시리즈를 원점으로 돌리는데 성공한다. 보스턴의 선발 알 니퍼는 6이닝 3실점으로 나름 잘 버텨줬으나 타선 지원의 미비로 패전 투수가 된다.

3.5. 5차전

1986년 10월 23일 펜웨이 파크
선발 1 2 3 4 5 6 7 8 9 R H E
NYM 드와이트 구든 0 0 0 0 0 0 0 1 1 2 10 1
BOS 브루스 허스트 0 1 1 0 2 0 0 0 - 4 12 0
승: 브루스 허스트(2승)
패: 드와이트 구든(2패)

양 팀이 상대팀 구장에서 2승을 주고 받은 가운데, 5차전에서 메츠는 드와이트 구든을 내세워 3승 2패의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 했다. 그러나 구든은 많은 이닝 소화로 무뎌져 4이닝 4실점으로 무너졌고, 오히려 레드삭스의 브루스 허스트가 9이닝 2실점 130구 완투승을 거두면서 레드삭스가 4:2로 승리를 거두게 된다. 이제 메츠는 시리즈 전적 2승3패의, 한 판만 더 지면 준우승하는 기로에 선 채로 뉴욕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보스턴은 이제 지긋지긋한 밤비노의 저주를 끊기까지 단 1승만을 남겨놓고 있었다.

3.6. 6차전

보스턴 레드삭스 구분 뉴욕 메츠
선수 포지션 타순 선수 포지션
웨이드 보그스 3B 1 레니 다익스트라 CF
마티 배럿 2B 2 월리 백맨 2B
빌 버크너 1B 3 키스 에르난데스 1B
짐 라이스 LF 4 게리 카터 C
드와이트 에반스 RF 5 대럴 스트로베리 RF
리치 겟맨 C 6 레이 나이트 3B
데이브 헨더슨 CF 7 무키 윌슨 LF
스파이크 오웬 SS 8 라파엘 산타나 SS
로저 클레멘스 P 9 밥 오헤다 P
1986년 10월 25일 셰이 스타디움
선발 1 2 3 4 5 6 7 8 9 10 R H E
BOS 로저 클레멘스 1 1 0 0 0 0 1 0 0 2 5 13 3
NYM 밥 오헤다 0 0 0 0 2 0 0 1 0 3 6 8 2
승: 릭 아길레라(1승)
패:캘빈 슈랄디(1패 1세)

운명의 6차전. 보스턴은 로저 클레멘스를, 뉴욕 메츠는 밥 오헤다를 내세워 사투를 준비했다.

보스턴은 1회초 드와이트 에반스의 1타점 적시 2루타와 3회초 마티 배럿의 1타점 적시타로 2:0으로 앞섰으나 메츠도 5회말 무사 2루 찬스에서 레이 나이트의 적시타와 이어진 무사 1-3루 상황에서 대타로 나온 대니 힙의 병살타로 2:2 동점을 만들면서 따라붙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번에야말로 밤비노의 저주를 끊으리라고 마음먹은 보스턴은 물러서지 않았다. 보스턴은 7회 초 안타와 메츠의 3루수 레이 나이트의 송구실책으로 만들어진 1사 1-3루 상황에서 드와이트 에반스의 내야땅볼로 3:2 역전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2사 2루 상황에서 리치 겟맨의 짧은 좌전안타가 나오자 발이 느린 짐 라이스가 무리하게 홈으로 달려들다 메츠 좌익수 무키 윌슨의 핀포인트 송구로 홈에서 횡사하면서 더이상 도망가지는 못한다.

보스턴 입장에서 이 주루사는 상당히 뼈아팠는데, 메츠가 8회말 공격에서 게리 카터의 희생플라이로 동점을 만들었기 때문. 만약 라이스가 홈에 들어왔거나 2사 1-3루 상황에서 압박을 지속했다면[8] 8회말 메츠의 희생플라이가 나온다고해도 보스턴이 1점차로 앞서 갈 수 있었고,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정규이닝 안에 승부를 볼 확률이 꽤 높았다는 점에서 보스턴에겐 7회초 주루사가 더더욱 뼈아프게 다가오고 말았다.

9회초 메츠는 로저 맥도웰을 내리고 릭 아길레라[9]를 등판시켰는데, 아길레라는 1사에 후 드와이트 에반스를 유격수 실책으로 출루시켰으나 다음 타자 리치 겟맨을 바로 병살타로 잡아내며 이닝을 끝냈다. 하지만 메츠도 9회말 안타와 야수선택으로 만들어진 무사 1, 2루의 끝내기 찬스에서 대타 하워드 존슨이 삼진을 당하며 흐름이 끊겼고, 뒤이은 리 마질리와 레니 다익스트라가 모두 좌익수 플라이로 물러나며 이 경기는 결국 연장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10회초가 되자마자 보스턴은 선두타자 데이브 헨더슨이 아길레라의 2구 패스트볼을 통타해 좌월 솔로홈런을 만들어내며 역전한데 이어 2사 후 웨이드 보그스의 2루타와 마티 배럿의 적시타로 또 한 점을 추가해 5:3으로 앞서나가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당시 월드 시리즈 주관방송사였던 NBC가 마티 배럿을 경기 MVP로 선정하고, 최장기간 월드 시리즈를 우승 못한 팀을 자막으로 보여주는 등 설레발을 치기 시작한다.

10회말 보스턴은 선두타자 월리 백맨과 다음 타자였던 키스 에르난데스를 나란히 플라이아웃으로 처리하면서 마침내 지긋지긋했던 밤비노의 저주 를 끊는가 싶었다. 그러나 2사를 잘 잡아놓고 슈랄디가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했다. 슈랄디는 게리 카터에게 안타를 허용하고, 대타로 나온 케빈 미첼에게마저 안타를 맞으며 2사 1, 2루를 만들더니 다음 타자 레이 나이트에게 2루수 키를 살짝 넘어가는 적시타를 허용하면서 한점차 2사 1-3루 위기를 자초하고 말았다.

이에 당황한 레드삭스는 장작을 쌓던 슈랄디를 강판하고 전임 마무리였던 밥 스탠리를 등판시켜 급한 불을 끄려 했다. 그러나 스탠리는 무키 윌슨을 상대로 용규놀이를 당하다 볼카운트 2-2 제 7구 상황에서 폭투를 던지면서 기어코 동점을 내주고 말았다.[10]

다 잡았던 경기를 어이없게 동점을 허용한 보스턴은 일단 10회말을 추스르고 11회초 공격에서 다시 반격에 나설 준비를 했다. 그리고 무키 윌슨이 9구째에 1루 땅볼을 치면서 11회초가 다가오는 듯 했지만...


So the winning run is at second base, with two outs three and two to Mookie Wilson. (...) little roller up along first...behind the bag! It gets through Buckner! Here's comes Knight, and the Mets win it!
(2사에 결승주자가 2루, 3볼 투 스트라이크의 무키 윌슨. (...) 1루 쪽으로 흐르는 타구, 1루 베이스 뒤로 빠집니다! 버크너 다리 사이로 빠지는 타구입니다! 2루주자 나이트가 홈으로 들어오면서 메츠가 승리합니다!!!)
- 빈 스컬리의 10회말 메츠 공격 때-[11]
If one picture is worth a thousand words, you have seen about a million words, but more than that, you have seen an absolutely bizarre finish to Game 6 of the 1986 World Series. The Mets are not only alive, they are well, and they will play the Red Sox in Game 7 tomorrow!.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면 여러분들은 지금 수만가지를 보셨을겁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점은 1986년 월드 시리즈 6차전의 오묘한 끝내기를 보신 것이라는 점입니다. 보시다시피 메츠는 기사회생했을 뿐 아니라 내일 저녁 마지막 승부인 7차전을 치르게 되겠습니다!)
-6차전의 극적인 끝내기로 메츠가 승리한 후 경기종료 때-

1루수 빌 버크너가 타구를 뒤로 빠뜨리면서 그대로 경기가 끝났다.

다 졌다고 생각한 경기를 기적적으로 가져온 메츠 선수들과 셰이 스타디움을 가득 채운 메츠팬들은 환호했고, 다 이긴 경기를 패한 보스턴 선수들과 팬들은 절망하고 말았다.

지면 준우승인 상황에서 2아웃 이후 3점을 낸, 그야말로 "어메이징 메츠"의 대 역전승이 만들어진 것이다.


한편, 이날 한 메츠 팬이 1회 초 빌 버크너의 타석에서 낙하산을 타고 경기장에 난입하는 소동도 있었다. 다만 평범한 일반인은 아니었고, 마이클 세르지오(Michael Sergio)라는 단역 배우였다.[12]

3.7. 7차전

1986년 10월 27일 셰이 스타디움
선발 1 2 3 4 5 6 7 8 9 R H E
BOS 브루스 허스트 0 3 0 0 0 0 0 2 0 5 9 0
NYM 론 달링 0 0 0 0 0 3 3 2 - 8 10 0
승: 로저 맥도웰(1승)
패:캘빈 슈랄디(2패 1세)
세: 제시 오로스코(2세)

눈앞에서 벌어진 어처구니 없는 사태에 레드삭스 선수단의 분위기는 멘붕으로 치달았다.[13] 더구나 최고의 선발 로저 클레멘스를 사용해버린 레드삭스는 5차전 완투를 거둔 브루스 허스트를 투입하는 초강수를 두며 7차전을 맞이했다. 한편 메츠 역시 1선발 드와이트 구든이 시리즈 내내 부진하고 있었던 관계로 4차전 호투로 분위기를 반전시킨 론 달링을 선발로 내세웠다.

우천으로 하루 쉬어간 7차전, 경기 초반 분위기는 이날도 보스턴이 잡았다. 보스턴은 2회초 메츠의 선발투수 론 달링을 상대로 드와이트 에반스와 리치 겟맨의 백투백 홈런, 그리고 이어지는 2사 2루 상황에서 웨이드 보그스의 1타점 적시타가 연달아 터지면서 먼저 3점을 앞서나갔다.[14] 그러자 메츠의 데이비 존슨 감독은 연속홈런을 맞으며 불안감을 노출한 선발투수 론 달링을 4회 2사에서 4일전이었던 5차전에 구든을 구원하여 4이닝을 투구한 3선발 시드 페르난데스를 올리는 초강수를 두었고, 이 예상은 적중하여 페르난데스는 레드삭스의 타선을 6회까지 무피안타 1볼넷으로 틀어막는데 성공한다.

그 사이에 메츠 타선은 5회까지 브루스 허스트에게 또 꽁꽁 묶였으나, 앞선 5차전에서 무려 130구를 던진 허스트는 이미 지칠대로 지쳐있었다. 허스트의 힘이 빠진 6회말 안타-안타-볼넷으로 1사 만루 찬스를 얻은 메츠는 키스 에르난데스의 2타점 적시타와 게리 카터의 1타점 우익수 앞 땅볼[15]로 3:3 동점을 만드는데 성공한다. 결국 허스트는 6회말 종료 후 마운드를 내려가게 되는데 다음 투수가 누군고하니 바로 메츠 스파이캘빈 슈랄디.

아니나다를까 슈랄디는 겨우 아웃카운트 하나를 잡아내는동안 홈런[16]-안타-폭투-적시타-희생번트로 메츠에게 점수를 조공하면서 그대로 강판당한다. 그러니까 본인이 잡은 아웃카운트 하나조차도 희생번트였다는 말 뒤이어 올라온 조 삼비토를 상대로도 키스 에르난데스가 희생플라이를 치면서 보스턴의 3점 리드는 이제 메츠의 3점 리드로 뒤바뀌고 만다.

하지만 보스턴도 가만히 당하지만은 않았다. 보스턴은 8회초 메츠의 로저 맥도웰[17]을 상대로 안타-안타-2타점 2루타로 6:5 한점차로 따라붙었으나 뒤이어 올라온 메츠의 마무리 제시 오로스코[18]를 상대로 6-7-8번 타순이 무기력하게 물러나면서 추격 동력을 상실하고 만다. 결국 8회 말에 올라온 알 니퍼를 상대로 대럴 스트로베리의 1점 홈런, 그리고 1사 1,2루 찬스에서 투수(!) 제시 오로스코가 내야수들을 살짝 비켜가는 1타점 적시타를 때리면서 메츠가 마침내 보스턴이 67년동안 기다렸던 우승 샴페인들을 모두 깨뜨려버리는데 성공한다. 결국 보스턴은 6차전에서 끝났다면 시리즈 MVP가 유력했던 마티 배럿[19]이 오히려 9회 2사에서 오로스코에게 삼진당하는 우승 자료화면으로 남으며 또 다시 밤비노의 저주아래 시달리게 되고 만다. 메츠의 통산 2번째 우승이었다. 월드 시리즈 MVP는 6차전 결승득점과 7차전 역전 솔로홈런을 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끈 레이 나이트[20]가 차지한다.

4. 과연 빌 버크너는 원흉이었는가?

월드 시리즈가 끝난 후 많은 보스턴 일간지, 신문, 그리고 언론들은 보스턴의 충격적인 패배의 원인을 6차전에서 일어난 빌 버크너의 실책으로 뽑았다. 또 실제로 보스턴 시민들의 버크너를 향한 증오는 엄청났다. 어느 정도였냐면 버크너가 보스턴의 한 바에 갔을 때 그를 알아본 한 사람이 버크너 쪽으로 과일 하나를 굴리고는 "그거 한번 잡아보쇼!"라고 빈정거렸을 정도였다고 한다. 게다가 집 밖에다 쓰레기 봉지를 투척하기도 하고 거의 중범죄자 취급하는게 예사였을 지경이었다. 지역 언론들은 버크너의 실책을 보스턴 스포츠 역사상 최악의 플레이로 꼽아도 무리가 아니라고 할 만큼 버크너의 평가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보스턴은 87시즌 도중 버크너를 캘리포니아 에인절스로 트레이드 해 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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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경기 당시 글러브 안에 배팅장갑을 착용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하필이면 시카고 컵스 장갑. [21]이것을 보고 이중 저주, 즉 밤비노의 저주 염소의 저주가 더해져 버크너가 알까기를 했다는 분석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졌었다.

그러나 훗날 알려진 바에 따르면 버크너의 실책은 사실 비난받을 만한 것의 성질이 아니었다고 한다. 실제로 당시 메츠의 코치였던 버드 해럴슨에 따르면 만약 버크너가 제대로 수비를 했었어도 무키 윌슨은 세이프 되었을 것이라고 확신했었다고 한다. 윌슨이 워낙에 준족이었던 데다 베이스 커버에 들어갔어야 할 투수 밥 스탠리마저도 느렸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윌슨도 증언하기를 자신이 세이프가 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고 한다. 실제로 윌슨은 타석 때 용규놀이를 하며 풀카운트 9구까지 끌고가 어떻게든 1루로 살아나가려고 했다.[22]

다시 말하면 패배의 원인을 특정 인물의 실책에서 찾으려는 것 자체가 옳지 못하다는 얘기다. 이 항목에 첨부된 동영상에서 보아서도 알 수 있듯이 버크너가 정상적으로 포구를 했었어도 무키 윌슨이 세이프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베이스 커버를 들어갔어야 할 밥 스탠리가 타구가 버크너 바로 앞까지 굴러간 상황에서도 1루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설사 버크너가 본인이 처리하겠다고 해도 준족을 자랑하는 윌슨을 단독으로 처리하기가 매우 어려웠던 상황이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겠다. 여기에 중요한 건 버크너 본인이 8회쯤 되던 시점에서 존 맥나마라 감독에게 다른 선수로 교체할 생각이면 그렇게 하라고 했다고 직접 증언했다.

사실, 보스턴 팬들이 이 에러는 둘째치더라도 이 해 월드 시리즈에서의 빌 버크너를 욕하는건 그럴 수 있다. 주전 1루수가 시리즈 설적 .182 1타점에 그쳤기 때문이다. 뭐 여기서 결정적 실책까지 더했으니...

이후 버크너는 현역 은퇴 후 아이다호 주로 이주하여 부동산과 자동차 딜러 사업을 벌였다고 한다. 그가 투자한 부동산 택지 중 한 곳의 이름을 ' 펜웨이 파크'로 지었을 정도로 레드삭스에 대한 정은 여전히 남아있는 듯 하다. 그리고 2008년 레드삭스의 2007년 월드 시리즈 우승 기념 홈 개막전에 초청되어 그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레드삭스 팬들과 보스턴 지역 언론을 용서하겠다는 이야기를 남겼다. 허나 그 후 루이소체 치매에 걸려 몇 년을 앓다가 결국 2019년 5월 27일 타계했다[23]. 레드삭스의 구단주 존 헨리는 조의를 표했다.

4.1. 존 맥나마라 보스턴 감독의 패착

예리한 몇몇 스포츠 기자들과 전문가들은 패배의 직접적인 원인을 빌 버크너의 실책보다 당시 레드삭스의 감독이던 존 맥나마라의 작전 미숙에 있다고 보고있다. 특히 6차전에서 보인 그의 상식이하의 선수 기용은 너도나도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었는데 왜 그런지는 대략 이렇다.
6차전에서 보스턴은 로저 클레멘스를 선발로 내세웠다. 이미 2차전에서 5회를 넘기지 못한 탓에 체력이 많이 비축된 상황이었다. 따라서 언제든지 완투가 가능했고 본인 역시 완투를 희망했다. 그러나 맥나마라 감독은 7회를 마친 클레멘스가 손가락에 물집이 생겨서 더 던질수 없어 강판시켜달라고 자청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클레멘스는 그런 언급은 한 적도 없거니와 투수가 손가락에 물집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고 그 정도로는 교체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증언했지만 진실은 저 너머에.

하지만, 이건 반론이 가능한 것이 클레멘스의 7회초 종료시의 투구수는 무려 140개였다. 아무리 마운드 운용과 라루사이즘이 정리되지 않은 1980년대의 야구라지만 이정도면 마운드에서 버티는 것이 다행이다. 맥나마라는 모험과 정석 대신 정석을 택했던 것이다.
뭐 클레멘스가 7회에 강판된 것은 그럭저럭 넘어간다 치자면 그 이후는 더 아리송하다. 클레멘스의 타순[24]에서 1사 2루 찬스가 나오자 맥나마라는 대타를 기용하게 되는데, 대타로 신인이던 마이크 그린웰이 타석에 들어온다.[25]. 이게 더 의아했던 이유는 그린웰이 시리즈 내내 무안타(...)행진 중이었고, 벤치에는 베테랑 강타자 돈 베일러가 대기하고 있었다는 점[26] 때문이다. 3:2, 단 1점 차로 앞선 1사 주자 2루 상황에서 승부에 쐐기를 박을 클러치 히트의 가능성이 높고 그만한 경험이 있는 베테랑이 아닌, 큰경기 경험 없는 신인을 대타로 기용했다는 것은 확실히 정상적인 선수기용으로 보기가 어려웠다. 승부조작 의심 안 받은 게 다행이다. 결국 그린웰이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맥도웰의 싱커 3개에 시원하게 3구삼진을 당하며 보스턴은 절호의 기회를 놓쳤고, 8회 공격에서 메츠가 동점을 만들며 경기를 원점으로 돌리는 계기를 마련한 꼴이 됐다.
맥나마라 감독은 클레멘스를 끌어내린 8회부터 마무리 캘빈 슈랄디에게 마운드를 맡겼다. 문제는 이 분이 '기복이 심했다는 점 + 소심남'이었다는 것. 잘할 때와 못할 때의 차이가 눈에 띄게 뚜렷했던데다 이상하게도 불안해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서 마무리로는 미덥지 못한 인상을 많이 보여왔던터라 보스턴 팬들을 자주 롤러코스터를 태웠다. 이 해의 월드 시리즈 영상에서 슈랄디 등판이후 유독 선수들이나 코칭스탭이 많이 올라가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비록 8회에 동점을 허용하긴 했어도 이후 메츠 타선을 잘 틀어막은 뒤 2점을 앞선 10회말 첫 두 타자를 잘 처리해 믿음직스런 모습을 보여주는 듯 했지만,. 그 다음 내리 세 타자 연속안타를 허용, 5:4로 한 점차 추격까지 허용하고 난 후에 주자 둘을 두고장작을 쌓아놓고 강판되었다. 이런 패턴이 다음 날인 7차전에서도 이어졌고 결국 보스턴은 패했다. 여기에서도 알 수 있듯 맥나마라 감독은 희한할 정도로 슈랄디에게 집착했는데 마무리로서의 확실한 모습을 보이지 못한 그를 시리즈 내내 기용한것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처사였다. 물론 정규시즌 마무리 밥 스탠리도 마무리라고는 볼 수 없는 스탯(ERA 4.37 16세이브 5블론)이었고 이 시리즈 동안도 실점만 없었지 불안한 모습을 보였지만, 투수가 이정도로 마운드에서 벌벌 떨면서 경기를 망치는데도 끝까지 밀고 나간것은 누가봐도 감독의 옹고집이었다.
레드삭스는 이번 시리즈에서 경기 후반이 되면 1루수로 데이브 스테이플턴을 계속 기용해 왔다. 버크너의 공격력은 필요했으나, 버크너의 잔부상으로 인해 후반에 수비가 중요시되는 시기에는 수비불안이 있는 버크너보다는 수비가 좋은 스테이플턴으로 수비강화를 해 왔던 것. 그런데 갑자기 이 중요한 경기에서 맥나마라는 스테이플턴을 놔두고 빌 버크너를 그대로 기용하기에 이른다[27]. 그런데 문제는 당시 버크너는 도저히 제대로 된 수비를 할 수 없을 정도였다는 점이다. 당시 레드삭스 팀 트레이너의 증언에 의하면 버크너의 상태는 도저히 경기를 뛰거나 수비를 할 만한 상태가 전혀 아니었다는 것이다. 허벅지에서부터 발목까지 정상이 아니었고, 발목은 아예 맛이 가버려 제대로 뛸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5. 기타



[1] 이 멘트 이후 스컬리는 약 2분 정도 아무 멘트도 하지 않은 채 현장을 지켜봤다. 경기장의 분위기를 그대로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스컬리 특유의 중계 방식이 제대로 드러났던 사례다. [2] 이게 어느 정도였냐면 시리즈가 끝난 뒤 보스턴의 스포츠 라디오 대담프로에서 한 노년 팬이 " 내 생전에 레드삭스 월드 시리즈 우승을 본다는건 꿈에서나 가능할 일이까보이.."라고 자조하셨을 정도. 마라카낭의 비극의 미국판이라 카더라. [3] 공교롭게도 이때 메츠가 오헤다를 데려오면서 레드삭스에게 넘긴 선수 중 한 명이 후에 저술할 캘빈 슈랄디였다. 신의 한 수 [4] 당시 디비전 꼴찌였던 피츠버그 파이리츠와의 경기차가 자그만치 44경기차였다. [5] 첫번째는 1969년, 두번째는 1973년이었다. [6] 이날의 패배 이후 도니 무어는 블래스 신드롬에 걸리며 1988년 은퇴했고, 3년 뒤인 1989년 부부싸움 중 홧김에 아내를 총으로 쏜 뒤 자살했다. [7] 참고로 이 때의 승패 순서는 30년 뒤에 치러지는 한풀이 월드 시리즈에서 똑같이 재현된다., 심지어 5차전에서 1점차 승리인 것도 공통점이다. [8] 메츠의 구원투수 로저 맥도웰은 당시 많은 이닝소화와 CS-WS동안의 잦은 연투를 거치며 구위가 꽤나 떨어져있는 상황이었다. [9] 훗날 프랭크 바이올라 트레이드 때 미네소타 트윈스로 트레이드 되어 트윈스의 간판 마무리 투수로 성장하게 된다. [10] 이것은 포수 리치 겟맨의 판단미스도 한몫 했다. 사인과 반대투구가 들어왔는데 그 공이 완전히 빠진 공도 아니었고 블로킹만 제대로 해줬다면 주자가 득점할 필요가 없는 공이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몸은 안가고 글러브만 갖다 대다가 놓친 공이니 사실상 포일 수준. [11] 소위 '국어책 읽기'식의 중립성 중계로 유명한 빈 스컬리옹의 감정이 실린 중계였다. 아울러 2년 후인 1988년 월드 시리즈 1차전의 커크 깁슨의 끝내기 홈런에서도 이런 감정실린 음성을 듣게된다. [12] 세르지오는 이 때 자신을 태워준 비행기 조종사의 이름을 대지 않아 잠시 구류됐으나, 뉴욕 시 상원의원 알 드마토의 중재로 간신히 풀려났다. [13] 아닌 게 아니라 당시 중계 화면을 보면 레드삭스는 이미 덕아웃 뒤편에 샴페인까지 다 준비해놓고 우승을 만끽할 순간만 기다리고 있었다. 설레발은 죄악 [14] 겟맨의 홈런은 메츠의 우익수 대럴 스트로베리가 담장 너머에서 글러브 안에 잡아냈으나 젖혀진 손목의 반동으로 인해 글러브에서 빠졌다. 이닝이 종료될때 방송사에서 클로즈업한 스트로베리의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은 덤. [15] 다만 이때 1루 주자 에르난데스가 타구 판단 미스로 2루에서 포스아웃당했다. [16] 레이 나이트의 홈런. 이 홈런은 시리즈 최초의 홈팀선수가 홈그라운드에서 친 홈런이 된다. [17] 정규시즌 14승 9패 22세이브 3.02 [18] 정규시즌 8승 6패 21세이브 2.33 [19] 6차전까지 타율 .418 [20] .391 1홈런 5타점 [21] 버크너는 이전에 컵스의 1루수였다. [22] 단 포구를 못한 것은 명백히 중대한 실수가 맞다. 포구만 했으면 1루에서 타자 주자가 세이프가 되더라도 2루 주자가 홈으로 들어오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그 다음 타자와의 승부가 어떤 결과를 낳을 지는 알 수 없으므로 포구만 해서 득점을 막기라도 했어야 했다. [23] 향년 69세. [24] 상기했듯 6차전은 메츠의 홈구장 셰이 스타디움에서 열렸다. 내셔널 리그 구장에서 열렸으니 당연히 투수도 타석에 들어서야 한다. [25] 훗날 보스턴의 핵심 타선의 중추적 역할을 하게 되지만 이땐 아직 신인이었다. 그리고 훗날 그는 열도의 호랑이굴에서 반어법으로 역사에 큰 이름을 남긴다. [26] 베일러는 당시 불혹의 나이+소녀어깨라는 약점 때문에 시즌 내내 지명타자로만 출장했는데, 6차전이 메츠의 홈경기(즉, 내셔널리그 규정의 적용으로 지명타자 없음)여서 선발 라인업에서 빠져 있었다. [27] 이 때문에 각주에서도 서술했다시피 내셔널 리그 회장이자 레드삭스빠였던 바트 지아마티의 욕지거리의 표적이 된다. [28] 스캇은 그가 등판한 두 경기 모두 완투를 하면서 단 1실점(1차전 완봉, 4차전 1실점)을 하는 놀라운 호투를 보여줬다. 비록 애스트로스는 메츠에게 시리즈 2승4패로 패퇴했으나 스캇은 이 놀라운 투구로 시리즈 MVP를 수상했다. 그리고 이 해의 놀라운 성적으로 스캇은 사이 영 상까지 받게 된다. [29] 단 에인절스는 3승 1패에서 5차전 역전패, 6-7차전 완패로 간 반면, 보스턴은 3승 2패에서 6차전 역전패, 7차전 완패로 갔다. [30] 빌 버크너는 상당히 많이 까였고, 도니 무어는 후유증으로 은퇴하고, 3년 뒤에 자살했다. [31] 이해 피트 로즈의 도박 사건이 터졌다. 결국 로즈는 영구제명 크리. [32] 그해 월드 시리즈 1차전 시구는 그의 아들이었던 마커스 지어마티가 맡았다. [33] 정확히는 브루클린 다저스의 올드팬으로, 다저스가 LA로 연고이전을 한 이후 자연스럽게 메츠의 팬이 된 케이스다. 1989년 히트곡인 We Didn't Start The Fire에서도 야빠심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