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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2. 상세
허덴 | ||
허영무 | 정명훈 |
하지만 커리어, 승률, 전적 면에서 택뱅리쌍에게는 유의미하게 뒤쳐졌고, 개인리그 준우승 2회를 최고 커리어로 보유하는데 그쳤다. 그러다가 박카스 스타리그 2010에서 정명훈이 우승[3]한 것을 기점으로 허덴의 성적이 조금씩 택뱅리쌍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결국 마지막 두 번의 개인리그인 진에어 스타리그 2011와 tving 스타리그 2012에서는 이들이 서로를 상대로 결승전을 치렀다. 사실상 스타1 리그 말기는 허덴의 시대로 끝난 셈이다.
다만 허덴의 시대에도 택뱅리쌍의 기세는 죽지 않았으며[4], 해당 시기가 스타1 리그가 사양길에 접어들던 시점이라 분위기도 좀 어수선했다. 더불어 스타1 말기의 택뱅리쌍은 손목 부상 악화, 스타2 병행[5], 소속팀의 해체(이제동 한정) 등 다양한 악재로 인해 온전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보는 시각도 만만찮다. 따라서 허덴이 택뱅리쌍을 일시적으로 넘어섰다고는 할 수 있을지언정, 완전히 대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시간이 흘러 2020년대가 되어서도 스타1 팬들 중에는 스타판의 후기 최강자로 허덴보다는 택뱅리쌍을 꼽는 사람들이 많다. 또한 계속 스타1을 플레이하고 ASL 등에 출전하는 택뱅리쌍과 달리 허덴은 스타1을 완전히 접은 것도 있다.
허덴은 전적의 측면에서 다소 특이하다. 일반적으로 최상위권 선수들은 개인리그/ 프로리그[6] 전적이 모두 화려하다. 그리고 최상위권에 못 미치는 선수들은 프로리그 전적이 개인리그 전적보다 우수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 허덴은 프로리그보다 개인리그 전적이 더 화려하다. 프로리그 한정으로 허영무는 다승 19위/승률 51.2%를[7], 정명훈은 다승 12위/승률 60%를[8] 기록했다.[9] 즉 프로리그에서는 신이염보다도 밀린다고 볼 여지가 많다. 하지만 개인리그 성적은 각각 우승 2회/준우승 2회, 우승 1회/준우승 4회로 결승에 가본 적도 없는 신이염은 비교 대상도 아니고, 택뱅리쌍으로 묶이는 송병구조차도 이들과 동급 혹은 밀리는 정도.[10]
복잡하게 따질 필요 없이, 드래프트 세대 중 택뱅리쌍과 허덴을 제외하면 개인리그 결승에 2회 이상 진출한 선수는 없다. 또한 드래프트 세대 중에서 e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등록된 선수도 택뱅리쌍과 허덴 외에는 없다.
둘의 상대전적은 9:8(비공식전 포함 11:8)로 허영무의 근소 우세. 준우승 이상의 개인리그 기록은 다음과 같다.
- 허영무
- 우승: 진에어 스타리그 2011, tving 스타리그 2012
-
준우승:
Clubday Online MSL 2008(우승
김택용),
로스트사가 MSL 2009(우승
박찬수[11]) - 정명훈
- 우승: 박카스 스타리그 2010
- 준우승: 인크루트 스타리그 2008(우승 송병구), BATOO 스타리그 08~09(우승 이제동), 진에어 스타리그 2011(우승 허영무), tving 스타리그 2012(우승 허영무)
3. 역사
스타1 양대 개인 리그 경력 | ||||||||
이름 | 온게임넷 스타리그 | MSL | ||||||
★ | ★ | ★ | 본선 횟수 | ★ | ★ | ★ | 본선 횟수 | |
허영무 | 2 | 0 | 0 | 6회 | 0 | 2 | 1 | 9회 |
정명훈 | 1 | 4 | 1 | 9회 | 0 | 0 | 1 | 8회 |
3.1. 커리어 초기
허영무는 2006년, 정명훈은 2007년 데뷔했으나 초기 둘의 위상은 매우 달랐다. 허영무가 그의 팀내에서의 실력과 재능을 눈여겨본[12] 김가을 감독에 의해 꾸준히 기용된 결과 팀의 주력이자 송병구 못지않은 에이스로 떠올라 조기에 육룡의 일원으로 이름을 날렸던 반면, 정명훈의 네임밸류는 허영무에 비해 더없이 초라했다.T1이라는 팀 자체가 테란라인이 워낙 강력했던 팀인데다 같은 시기 팀내에는 고인규, 오충훈 등 더욱 촉망받던 인재들이 있어 정명훈은 듣보 취급이었다.[13] 그가 두각을 나타낸 인크루트 스타리그 2008 때만 해도 그를 사람들은 리그 브레이커 취급하며 깠을 정도.[14] 그러나 정명훈은 이후에도 반짝 준우승으로 그치지 않고 꾸준히 성장, 마침내 이영호 다음가는 테란 수준의 위상까지 확보하는 동시에 팀의 최고전력인 도택명의 일원이 된다.
3.2. 양대 콩라인
정상급 프로토스와 테란으로 거듭난 둘은 커리어 중반부터 공교롭게도 사이좋게 콩라인의 일원이 된다. 허영무가 Clubday Online MSL 2008과 로스트사가 MSL 2009에서[15], 정명훈이 인크루트 스타리그 2008과 BATOO 스타리그 08~09에서 각기 준우승을 거두며 사이좋게 콩라인에 가입하게 된 것. 다만 이 때만 해도 이들의 위상이 택뱅리쌍 급은 아니었기에 허덴으로 묶이지는 않았고, 그저 콩라인의 일원으로 나란히 언급되는 정도였다.이 기간 동안 둘은 두 번의 준우승 이후에도 꾸준히 양대리그 본선에 발을 들여놓았고, 프로리그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며 활약했지만, 끝내 개인리그에서는 우승을 거두지는 못하고 그분에 이은 콩라인으로 남아야 했다. 이전에 콩라인으로 언급되던 송병구가 정명훈이 준우승을 한 그 인크루트 스타리그 2008에서 우승을 하면서 콩라인에서 탈출하여, 현역 콩라인으로는 정말 둘밖에 남지 않았던 상황.
3.3. 콩라인 탈퇴와 허덴의 탄생
그러던 와중 2011년, 드디어 정명훈이 박카스 스타리그 2010에서 이전에 콩라인을 탈출한 그분을 셧아웃시키며 우승을 달성, 콩라인에서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반면 허영무의 경우, 이 시기 역대 최악의 슬럼프에 빠지며 프로리그, 개인리그 할 것 없이 연패를 기록, 그대로 콩라인에 머무를 것만 같은 위기에 빠지게 된다. 물론 정명훈 역시 우승 직후 슬럼프에 빠지며 신동원과 함께 우스운자라는 불명예스런 별명을 얻게 되었지만.그러나 이러한 슬럼프도 잠시, 허영무는 그 유명한 겜알못 사건 이후 본격적으로 각성, 슬럼프 이전보다도 압도적인 포스를 보여주며 다시금 정상급 프로토스의 자리를 되찾았고, 결국 박카스 스타리그 이후 열린 진에어 스타리그 2011에서, 처음에 예선탈락하는 비운을 맛봤으나 가까스로 와일드카드를 잡고 본선에 진출[16], 기어이 결승까지 올라가게 된다. 그리고 같은 시기 결승에 올라온 정명훈과의 격돌에서 2:2 상황에서 패배 직전까지 몰렸으나 기적적으로 역전승을 거두고 우승을 하게 된다. 이로써 허영무와 정명훈 모두가 콩라인에서 탈출하게 된다.
우승과 준우승을 거둔 둘의 행보는 거칠 것이 없어, 사실상 2011~2012 시즌은 이들의 시대나 다름없는 시기가 되었다. 당장 진에어 스타리그 2011에서부터 택뱅리쌍이 모두 4강 이전에 탈락하면서 시드 확보에 실패하는 이변이 나타났으며[17], 이듬해 열린 tving 스타리그 2012에서는 택뱅리쌍 중에서도 최강자로 꼽힌데다 당시 기세도 가장 좋았던 이영호가 16강에서 허영무에게 패하고, 정명훈에게 4강에서 0:3 셧아웃을 당하는 사태가 발생하는 등, 택뱅리쌍의 기세는 예전같지 않았다. 반면 허덴은 정명훈이 이영호에게 완승을 거둔 것을 비롯, 반대편에선 허영무가 4강에서 김명운을 명승부 끝에 3:2의 세트스코어로 물리치고 결승전에서 재격돌하게 된다. 여기서 허영무는 3:1으로 낙승을 거두고 마지막 스타리그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으며, 패배한 정명훈도 평생의 라이벌이자 늘 자신을 2인자로 만들었던 이영호를 완벽히 꺾고 스타1 말기 최강의 테란으로 우뚝 서는 위업을 달성하게 된다.
3.4. 스타리그 종료 이후
스타2 전환 이후 둘의 행보는 다소 엇갈렸다. 허영무가 연봉 협상 문제로 불과 1년만인 2013년 은퇴를 선언한 반면, 정명훈은 스타2에서도 굳건히 살아남아 활동을 지속하였다. 중도에 한 번 은퇴한 뒤 의경 복무를 하긴 했지만, 이후 또다시 스타2 프로게이머로 복귀하여 2019년까지 프로게이머 생활을 지속하고 은퇴했다.아프리카TV 시대가 열리고 택뱅리쌍은 모두 스타1 방송을 하며 스타판에 복귀했지만, 허덴은 모두 여기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상반된 행보를 보이고 있다. 허영무는 잠시 방송을 하긴 했으나 가업을 잇기 위해 곧 접고 스타1 게이머로서의 삶을 완전히 그만두었으며, 정명훈은 팬들이 스타1을 할거냐는 질문에 단호히 거절하면서 아예 스타1 방송에는 발도 들여놓지 않았다. 스타2 프로게이머에서 은퇴를 하고 스타1으로 복귀를 원했던 많은 팬들의 기대와는 달리 샌드박스 리그 오브 레전드 팀의 코치로 데뷔하고 이후 2군 감독을 역임하며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이후 광동 프릭스의 1군 코치로 합류했다.
한편 허덴 둘 다 e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4. 택뱅리쌍과의 비교
언급된 바와 같이 2023년 현재까지도 스타리그의 최강자로는 단연 택뱅리쌍, 그 중에서도 리쌍이 투톱으로 꼽히며, 허덴은 이들을 잠시 넘어서긴 했으나 택뱅리쌍을 뛰어넘었다는 평가는 받고 있지 않다. 이 문서부터 택뱅리쌍과는 달리 2020년 10월에야 만들어졌을 정도로 허덴이라는 용어 자체가 택뱅리쌍에 비해 넘사벽급으로 인지도가 낮다.[18]이렇게 된 이유는 역시나 택뱅리쌍에 비해 허덴의 시대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짦은 것에서 기인한다. 택뱅리쌍은 3.3 혁명 이후 이미 2007년 경부터 각자의 종족 내에서 확고한 위상을 확보한 선수들이었고, 약 1~2년 간의 혼란기를 거쳐 빠르면 2008년, 늦어도 2009년에는 스타1의 최강자로 각인되었다. 반면 이 시점에 허덴의 위상은 이들과 비교할 바가 아니었으며, 허덴의 시대는 약 2011년부터 스타1 공식리그가 끝날 때까지 약 1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이 시기 동안 택뱅리쌍이 완전히 죽은 것도 아니고, 약간 주춤할지언정 위상 자체가 떨어진 것은 아니었으니 허덴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낮아보이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당장 활동기간 동안의 꾸준한 활약상을 반영하는 프로리그 다승 순위만 해도 정명훈은 12위, 허영무는 19위인 반면 택뱅리쌍은 사이좋게 1~4위[19]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허덴의 시대는 스타1 리그 자체가 사양길에 접어들고 있던 시기였던 것도 원인이다. 스타1 리그는 올드 게이머들이 활약했던 2001~2007년 무렵의 황금기를 지나 드래프트 세대들이 활약하고 택뱅리쌍이 결성된 2008년 무렵부터 조금씩 저물어가고 있는 상태였으며,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 이후 결정타를 맞아 2011년이면 양대리그 중 하나였던 MBC GAME이 폐국되고 스타2 리그와의 병행이 논의되는 등, 이미 종말이 뚜렷하게 보이는 시기였다. 이 시기에 아무리 전성기를 맞아봤자, 택뱅리쌍의 전성기와 비교하면 초라하게 보일 수밖에 없으며 이들을 포함한 주요 선수들 역시 스타2 리그를 준비하는 시기였으므로 최강자 논쟁에 있어서도 반박당한 건덕지가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20]
이처럼 다소 부족한 위상에도 불구하고 허덴은 택뱅리쌍을 상대로 상대전적에서 크게 밀리지 않는 몇 안 되는 선수들이었다. 정명훈의 경우 택뱅리쌍 중 이제동에게만 다소 약했지[21] 나머지 3명과는 대등한 전적을 보유하고 있으며, 허영무는 이제동, 김택용에게는 많이 약했지만[22] 이영호와는 대등하며[23], 송병구에게는 5전 전승이라는, 일방적으로 앞서는 전적을 보유하고 있다. 사실상 송병구의 유일한 프프전 천적이었던 셈. 위상은 상대적으로 떨어질지라도, 자신들의 전성기 이전부터 택뱅리쌍 어느 누구도 쉽게 볼 수 없는 강력한 상대였음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스타1이 계속 됐다면 어떻게 됐을까?"하는 궁금증을 더해주는 선수들이기도 하다. 마지막 티빙 스타리그에서 정명훈은 이영호를 상대로 충격의 3:0 승리를 거두었고, 허영무는 전무후무한 프로토스 스타리그 2연패라는 기록을 세우며 놀라운 기량을 과시하고 있었다.[24] 뿐만 아니라 프로토스 유일무이한 골든마우스 가능성까지도 점칠 수 있었을 정도. 더군다나 택뱅리쌍, 특히 이영호는 여전히 스타1 말기에도 우승컵을 추가할 수 있는 저력을 갖고 있었기에, 허덴과 함께 흥미로운 라이벌리를 이어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여러모로 잠재력이 너무 늦게 만개해버려 아쉬움을 낳는 두 선수. 이들 말고도 김민철, 장윤철, 이신형, 정윤종[25], 변현제, 유영진 등 스1 마지막 세대 또한 비슷한 평가를 받는다.
그렇다 보니 진출자가 확정된 상황에서 치러지지 못한 2011 MSL 시즌 2이 더더욱 아쉽게 다가온다는 이야기가 많다. 택뱅리쌍허덴+ 이신형, 신노열, 김유진, 어윤수, 김민철이 모두 진출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21년 여름, 택뱅리쌍 중 김택용과 이영호가 불미스런 사건에 연루되어 주작범들과 동급으로까지 이미지가 추락해버리자[26] 상대적으로 허덴의 평가가 오르고 있다. 심지어는 허덴을 송병구, 이제동과 동급까지 끌어올려 허뱅리덴/뱅폭허덴이라 바꿔 부르는 중.[27] 마치 성전의 최종 승자가 강민으로 결론나고, 개인리그 다전제에서 이영호를 여러 차례 관광보냈으며 상대전적도 저그 중 가장 우세했던 김준영의 평가가 올라간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이렇다보니 팬들은 스타1 판을 살려줄 유력한 후보들로 꼽지만 허영무는 가업을 잇기 위해 게임에서 완전히 손을 뗐으며[28] 정명훈은 KeSPA가 직접 스2 관련 리그로 넘어갈 때부터 바로 스2로 뛰어들었고, 군복무 이후에도 스2 게이머로 복귀했다가 은퇴 후에도 롤 코치로 데뷔하여 2군 팀의 지도력을 인정받은 점을 감안하면 허덴이 스타1 BJ를 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볼 수 있다.[29]
5. 여담
- 이윤열이 양대리그에서 마지막 불꽃을 보여준 상대들이기도 하다.
- 스타리그는 인크루트 스타리그 2008 36강에서 첫 진출한 정명훈에게 40여분 간의 혈전 끝에 역전승을 차지했는데, 정명훈의 스타리그 통산 테테전 기록은 17승 2패 89.5%에 달한다.
- MSL은 로스트사가 MSL 2009 8강에서 당시까지 테란전 13승 3패를 기록 중이던 허영무를 만나 비록 패배했지만 1세트를 먼저 따냈고 풀세트 접전을 치르며 졌잘싸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줬다.[30]
- 두 명 모두 첫 개인리그 본선 무대는 MSL이다. 정명훈은 아레나 MSL, 허영무는 곰TV MSL 시즌2. 하지만 둘 다 스타리그에서의 커리어가 훨씬 뛰어나다는 것 또한 공통점.[31]
- 평균적으로 테란 선수의 APM은 프로토스 선수보다 높은데, 허덴은 반대다. 정명훈은 드래프트 세대 테란 중에서는 손이 상당히 느린 반면에, 허영무는 프로토스 중에서 가장 손이 빠르기로 유명한 김택용에 필적하는 손속도를 지녔다.
[1]
정명훈이라는 이름 자체가 원체 흔하다보니, 스타 커뮤니티에서는 '
리그에 테러를 가한다'는 의미로
오사마 빈 라덴에서 따온 별명인 정라덴, 줄여서 그냥 덴이라 불렸다. 리그 브레이커의 이미지가 사라진 이후에는 주로
벌처 운용에 능하다는 스타일과 엮여서 쓰인다. 사실 성씨인
정씨도 매우 흔한 성씨인 것에 반해 스1판에서는 정씨 선수가 많이 없고, 특히 강자급 이상 중에서는 사실상 정명훈이 유일했기 때문에 성씨인 정이 약칭으로 쓰여도 무리는 없었겠지만 성씨가 아닌 별명이 약칭으로 쓰인 특이사례다. 이것은
송병구도 마찬가지.
[2]
택뱅리쌍으로 몰아놓고 보면 전체적인 상대 전적은 비슷한데, 개개인 상성상이나 대회로 보면 편차가 극심하다
[3]
결승에서 송병구를 3:0으로 꺾었다.
[4]
특히
이영호는 개인리그 8강~4강 정도는 꾸준히 올라갔고, 스타1으로만 진행된 마지막 프로리그에서 정규시즌 다승왕을 차지했다.
[5]
다만 스2를 병행한 건 허덴도 마찬가지다.
[6]
프로리그 다승 1~4위가 사이좋게
택뱅리쌍이다.
[7]
기나긴 슬럼프 시절 승수와 승률을 다 까먹었다.
[8]
다만 정명훈은 다른 드래프트 세대들에 비해 프로리그 데뷔 자체가 늦었다. 정명훈은 허영무와 달리 프로리그에서 꾸준히 김택용 다음가는 T1의 에이스로 활약했으며, 프로리그 결승전에서도 최다승(6승 0패)을 기록하는 등 팀 기여도가 상당히 높다.
[9]
허영무는
송병구, 정명훈은
김택용이라는 팀내 에이스와 프로리그 승수를 나눠 먹어야 했다보니 상대적으로 프로리그 승수가 적게 기록된 측면도 있다.
[10]
송병구의 양대리그 커리어는 우승 1회, 준우승 4회다. 4강 기록(3회)까지 볼 경우 정명훈(2회)보다는 약간 앞서지만, 허영무에게는 이미 우승 기록부터 밀리기 때문에 명백한 아래다. 물론 양대리그만 봤을 때 그렇다는 것이고, 대신 WCG 우승 1회, 준우승 2회의 기록까지 있어서 진지하게 허덴보다 개인리그 입상 경력이 밀렸다고 보는 이들은 많지 않다. 또한 올드게이머이기도 하고
[11]
승부조작으로 기록 말소.
[12]
방송 경기 데뷔전이었던
MBC MOVIES배 10차 MSL 서바이버리그에서부터
조용호,
김성기,
권수현을 모두 전승으로 물리치고 예선을 간단히 통과해 주목받은 바 있었다.
[13]
이 2명이 나중에는
고인물,
팀플 전담 등으로만 알려지는 등 기대에 비해 훨씬 초라한 모습밖에 못 보여주고 물러났다는 게 아이러니.
[14]
별명인 정라덴,
테러리스트부터가 리그 흥행에 테러를 가한다는 부정적인 의미에서 붙은 것이었다. 물론 이후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긍정적인 의미로 바뀌게 된다. 하필 정명훈의 특기가 벌처 견제라 플레이 스타일과도 잘 맞는 별명이 되었다.
[15]
정규리그는 아니지만
TG 삼보-인텔 클래식 시즌2에서도 준우승했다.
[16]
와일드카드로 본선에 진출한 이후
이러한 웹툰이 돌았는데, 정말로 허영무가 우승을 거두며 성지가 되었다.
[17]
드래프트 세대의 시작인
3.3 혁명 이후 택뱅리쌍 전원이 4강 진출에 실패했던 유이한 대회다. 나머지 하나는
박성준이 우승했던
EVER 스타리그 2008.
[18]
참고로 비교대상인 택뱅리쌍 문서는 무려 10년 전인 2010년 7월, 리그베다 위키를 넘어 무려 엔하위키 시절에 만들어졌다.
[19]
이제동-
이영호-
김택용-
송병구 순.
[20]
실제로 이영호, 송병구, 염보성 등의 프로게이머도 추후 술먹방 도중 이 둘을 인정 못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여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다만 이런 시기가 그들을 스타1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한 선수들로 기억되게 한 것 또한 사실이다. 그리고 이들이 인정을 안한 것은 스1-스2 병행 시즌에 치러진 2012년 티빙 스타리그 뿐이지 2011년의 기록까지 부정한 것은 아니기에 이 경우에도 허덴은 아직 건재한 5인자, 6인자로서 바뀌는 건 별로 없다. 만약에 이들이 2011년마저 부정했으면 그야말로 제 살 깎아먹기인 게 송병구는 준우승 1번이 줄어들면서 롱런했다는 이미지가 약해지고 이영호는 일생일대 최대 커리어인 골든 그랜드 슬램이 무효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영호는 이미 2011년 진에어에서 허영무에게 패배했다.
[21]
공식전 전적 6:11로 승률 35.3%다. 그래도 이제동 프로게이머 인생 최대 굴욕인
광삼패라는 패배를 안겨준 적 있다.
[22]
특히 이제동에게는 상대전적 1:11으로 압살 수준이다.
[23]
이영호와 어느 정도 이상의 전적이 있는 선수들 중 대등한 상대전적을 유지한 프로토스는 송병구, 허영무, 도재욱밖에 없다. 김택용도 명경기를 여럿 만들어낸 점에 묻힐 뿐이지 상대전적은 이영호에게 밀린다.
[24]
이때는 떡밥으로만 있었던 완성형 프로토스가 실현됐다는 말까지 나왔었다. 허영무가 모든 분야에서 골고루 뛰어난 밸런스형이었기도 하고, 티빙 스타리그 4강 김명운전에서 1경기 사신토스, 4경기의 한방토스, 5경기 공굴리기 운영 등 다양한 전략으로 김명운을 극복해내고 결승에 진출했기 때문.
[25]
여기에 나온 선수 중 유일하게 개인리그 본선 진출 경험이 없다.
[26]
심지어는 조작범들조차도 팬들의 지갑을 직접적으로 털어먹으려고 한 건 아니었다면서 이들을 그보다 더한 악질로 보는 평가도 제법 존재한다. 틀린 말이라고 단정할 수만도 없는 것이 승부조작은 e스포츠판을 뒤흔들어 동업자들에게 타격을 줬지만 팬들의 입장에서는 업계 관계자들과 한마음으로 조작범을 욕해줄지언정 냉정히 보면 그저 여가거리 하나가 사라진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코인게이트는 연루자들이 팬들에게 코인 구매를 직접적으로 권장했기 때문에 사건이 끝까지 공론화되지 못했거나 몇 달이라도 늦었다면 그 팬들의 지갑이 직접적인 타격을 받았을 것이다. 당장 주식이었으면 바로 빨간줄이 그여도 무방했을 사건이지만
아직 암호화폐 관련 법 조항이 부실해서 이들을 법적으로 처벌할 근거도 미약했기 때문에 전과만 생기지 않았을 뿐이다.
[27]
사실 허영무와 송병구도 개인방송에서의 논란 때문에 비판거리가 아주 없는 건 아니다. 물론 초대형 사건사고를 저지르지는 않았기에 호불호를 조금 타는 정도에 그치지만. 이마저도 허영무는 스스로의 처신 문제라기 보다는 대형 논란에 휘말려 들어간게 큰지라.
[28]
그래도 친하게 지냈던 게이머들 BJ 방송에는 가끔씩 출연하는 것으로 보인다. 친구가 부르면 가줘야지
[29]
도재욱이 말하길 정명훈은 리액션 등의 이유로 방송BJ와는 별로 맞지 않다고 했다. 정명훈 본인도 BJ에 대해선 자신이 없다고 털어놓은 바 있었다. 물론 자기
맞수였던
김윤환같이 마음먹고 변화하니 최고의 입담으로 칭송받는 등 변화를 추구하면 안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이건 김윤환이 스스로 방송을 위해서 노력 끝에 변화한 경우고, 정명훈은 그럴 의지가 크게 없어보인다.
[30]
이 둘은 그 전부터 나름 일면식이 있는 사이였다. 바로 이윤열이
골든마우스를 손에 넣었던 시즌에서 결승전 연습을 허영무가 도와줬기 때문. 물론 당시 허영무는 방송 데뷔 무대를 가지기도 전이었긴 하지만.
[31]
허영무는 결승 진출 자체야 스타리그/MSL 모두 2회씩이지만 우승은 스타리그에서만 달성했으며, 정명훈은 아예 본인의 모든 개인리그 결승 무대가 스타리그 결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