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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6 23:15:45

프린세스 로열 샬럿

<colbgcolor=#1353b4> 파일:Coronet_of_a_Child_of_the_Sovereign.svg (1).png
프린세스 로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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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8E6C9><colcolor=#000000> 뷔르템베르크 왕국 프리드리히 1세의 왕비
프린세스 로열 샬럿
Charlotte, Princess Royal
파일:Charlotte,_Princess_Royal_(1797).jpg
이름 영어 샬럿 오거스타 마틸다
(Charlotte Augusta Matilda)
독일어 샤를로테 아우구스테 마틸데
(Charlotte Auguste Mathilde)
출생 1766년 9월 29일
런던 버킹엄 궁전
사망 1828년 10월 5일 (향년 62세)
뷔르템베르크 왕국 루트비히스부르크 루트비히스부르크 궁전
배우자 프리드리히 1세 (1797년 결혼 / 1816년 사망)
아버지 조지 3세
어머니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샤를로테
형제 조지 4세, 프레더릭, 윌리엄 4세, 에드워드, 어거스타, 엘리자베스,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1세, 어거스트 프레더릭, 아돌푸스, 메리, 소피아, 옥타비우스, 알프레드, 아멜리아
서명
파일:프린세스 로열 샬럿 서명.svg

1. 개요2. 작위3. 생애
3.1. 어린 시절3.2. 결혼3.3. 왕대비
4. 가족관계
4.1. 조상

[clearfix]

1. 개요

영국의 프린세스 로열이자 하노버 왕국의 공주. 조지 3세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샤를로테의 넷째이자 장녀로, 프리드리히 1세의 왕비이다.

2. 작위

파일:Coat of Arms of Charlotte Augusta Matilda, the Princess Royal.svg
문장

3. 생애

3.1. 어린 시절

파일:1072304-1660910214.jpg
파일:372563-1363974384.jpg
어린 시절
1766년 9월 29일 버킹엄 궁전에서 조지 3세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샤를로테의 장녀이자 넷째로 태어났다. 같은 해 10월 27일 세인트 제임스 궁전에서 세례를 받았고, 대부모는 고모 캐롤라인 마틸다와 루이자 공주, 그리고 고모부인 크리스티안 7세이다.
파일:254950-1330620135.jpg
가족 초상화
샬럿 위로 아들만 셋이었기 때문에, 조지 3세 샬럿 왕비는 첫 딸인 샬럿 공주를 매우 예뻐했다고 한다. 조지 3세 재위기간에 태어난 국왕의 장녀로서 1789년 6월 22일 프린세스 로열이 되었다. 영국 국왕 겸 하노버 선제후의 장녀로 태어난 만큼 샬럿의 혼처는 중요했고,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많은 교육을 받고 자랐다. 18개월 때부터 공주의 교육을 시작했다고 하는데 프랑스인 가정교사를 두어 프랑스어를 외국 억양 없이 구사할 수 있었다.

사랑받는 국왕의 장녀였지만 자라면서 2살 터울의 여동생 어거스타 소피아 공주와 많이 비교당했다. 어거스타 소피아 공주는 예뻤지만 샬럿 공주의 외모는 평범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샬럿 공주는 많은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두 공주는 성격도 매우 달랐는데 샬럿 공주는 적극적이고 활발했던 반면, 어거스타 소피아 공주는 소극적이고 부끄럼을 많이 타는 성격이었다.

3.2. 결혼

16살이 된 샬럿 공주는 사교계에 데뷔했고 여러곳에서 혼담이 들어왔다. 그 중에서는 고종사촌인 프레데리크 왕세자도 있었다. 하지만 조지 3세는 프레데리크 왕세자의 어머니이자 자신의 여동생인 캐롤라인 마틸다가 덴마크에서 이혼당하고 첼레에서 쓸쓸히 죽었기 때문에 사랑하는 딸을 덴마크 왕실로 시집보내고 싶어하지 않았다. 또, 딸들을 멀리 시집보내지 않고 조금 더 곁에 두고 싶어했다.

시간이 흘러 샬럿은 어느새 20대 후반의 나이가 되었다.[1] 아버지 조지 3세 포피리아가 발병하자, 샬럿도 더 이상 결혼을 미룰 수 없었다. 아무리 영국의 공주더라도 집안에 정신병이 있는 것은 흠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러 곳에서 좋은 혼처가 들어왔지만 그때마다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아 내치다가 어느새 샬럿은 30대가 되었다. 더 혼담을 내치다가는 결혼을 할 수 없겠다고 생각한 샬럿은 뷔르템베르크 프리드리히 공세자와 결혼을 하기로 결심했다. 프리드리히 공세자는 전처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의 아우구스테[2]를 폭행한 가정폭력범으로 유명했는데, 결국 그와 결혼을 하기로 한 것이다.
파일:Charlotte-Pss-Royal-wedding-01.jpg
샬럿과 프리드리히 공세자의 결혼식
1797년 5월 18일 세인트 제임스 궁전의 채플 로열에서 뷔르템베르크의 프리드리히 공세자와 결혼했다. 두 사람은 조지 1세를 기준으로 8촌이다. 프리드리히 공세자는 전 아내인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의 아우구스테 사이에서 2남 1녀를 두고 있었다. 샬럿 사이에서는 사산한 딸 한 명을 제외하고는 자식이 없었지만, 샬럿은 의붓 자녀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고 특히 둘째 카타리나 공주[3]와 사이가 좋았다고 한다.

하지만 남편 프리드리히는 여전히 폭력적이었고 샬럿을 학대했다. 그러나 샬럿은 자신이 선택한 남편이 가정폭력범이라는 것을 인정하기에는 너무나도 자존심이 세서, 학대당한 것을 말하고 다니지 않았다고 한다.

1797년 12월 23일 시아버지 프리드리히 2세 오이겐이 사망하여 남편 프리드리히 공세자가 뷔르템베르크 공국의 공작이 되었고, 샤를로테 또한 공작부인이 되었다. 1803년 뷔르템베르크 공국이 선제후국이 되는데 이어 1806년에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 의해 뷔르템베르크 왕국으로 승격되었다. 이에 샤를로테 또한 공식적으로 뷔르템베르크 왕국의 왕비가 되었다.

남편 프리드리히 1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동맹을 맺었는데[4], 이는 프랑스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샤를로테의 아버지 조지 3세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딸을 '뷔르템베르크의 왕비'라고 부르는 것을 거부할 정도였다고. 그러나 1813년 프리드리히 1세는 다시 영국과 동맹을 맺게 됨으로써, 이러한 갈등은 어느정도 가라앉게 되었다.

3.3. 왕대비

파일:268889-1334826640-01.jpg
말년의 샤를로테 왕대비
1816년 10월 남편 프리드리히 1세가 사망하고 의붓아들 빌헬름 1세가 즉위하여 샤를로테는 왕대비가 되었다. 왕대비 시절에는 슈투트가르트의 루트비히부르크 궁전에서 거주하며 동생들인 켄트와 스트래선 공작 에드워드 왕자[5], 서식스 공작 어거스터스 프레더릭 왕자, 케임브리지 공작 아돌푸스 왕자, 엘리자베스 공주, 어거스타 소피아 공주 등과 교류하며 지냈다. 말년에는 영국에도 방문하기도 했다.

이후 1828년 10월 6일 평소 거주하던 루트비히부르크 궁전에서 사망했다.

4. 가족관계

4.1. 조상

본인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프린세스 로열 샬럿
(Charlotte, Princess Royal)
<colbgcolor=#fff3e4,#331c00> 조지 3세
(George III)
<colbgcolor=#ffffe4,#323300> 웨일스 공 프레더릭
(Frederick Louis, Prince of Wales)
조지 2세
(George II)
브란덴부르크안스바흐의 카롤리네 공녀
(Princess Caroline of Brandenburg-Ansbach)
작센고타알텐부르크의 아우구스타 공녀
(Princess Augusta of Saxe-Gotha-Altenburg)
작센고타알텐부르크 공작 프리드리히 2세
(Frederick II, Duke of Saxe-Gotha-Altenburg)
안할트체르프스트의 막달레나 아우구스타 공녀
(Princess Magdalena Augusta of Anhalt-Zerbst)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샤를로테
(Princess Charlotte of Mecklenburg-Strelitz)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카를 루트비히 프리드리히 공작
(Duke Charles Louis Frederick of Mecklenburg-Strelitz)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공작
아돌프 프리드리히 2세
(Adolphus Frederick II, Duke of Mecklenburg-Strelitz)
슈바르츠부르크존더스하우젠의
크리스티아네 에밀리 공녀
(Princess Christiane Emilie of Schwarzburg-Sondershausen)
작센힐트부르크하우젠의
엘리자베트 알베르티네 공녀
(Princess Elisabeth Albertine of Saxe-Hildburghausen)
작센힐트부르크하우젠 공작
에른스트 프리드리히 1세
(Ernest Frederick I, Duke of Saxe-Hildburghausen)
에어바흐에어바흐의 조피아 알베르티네 여백작
(Countess Sophia Albertine of Erbach-Erbach)


[1] 당시 20대 후반이면 굉장히 노처녀였다. [2] 조지 2세의 증손녀로, 샬럿 공주의 고종사촌이다. 조지 4세의 아내인 브라운슈바이크의 카롤리네의 언니이기도 하다. [3] 후에 제롬 보나파르트와 결혼하여 베스트팔렌의 왕비가 된다. [4] 프리드리히 1세의 딸 카타리나 공주를 나폴레옹의 남동생 제롬 보나파르트와 결혼시킨 것도 동맹을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5] 샤를로테는 에드워드 왕자의 딸인 빅토리아 여왕의 대모가 되어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