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FFDAD0><colcolor=#000000> 포르투갈 여공 & 아스투리아스 공비 포르투갈의 마리아 마누엘라 Maria Manuela de Portuga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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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포르투갈어 |
마리아 마누엘라 (Maria Manuela) |
스페인어 |
마리아 마누엘라 데 아비스 (María Manuela de Avi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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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527년 10월 5일 | |
포르투갈 왕국 코임브라 | ||
사망 | 1545년 7월 12일 (항년 17세) | |
스페인 왕국 바야돌리드 | ||
배우자 | 펠리페 2세 (1543년 결혼) | |
자녀 | 카를로스 | |
아버지 | 주앙 3세 | |
어머니 | 오스트리아의 카탈리나 | |
형제 | 아폰수, 이자벨, 베아트리스, 마누엘, 펠리페, 디니스, 주앙 마누엘, 안토니우 | |
종교 | 가톨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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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페인의 아스투리아스 공비이자 펠리페 2세의 첫번째 아내이다. 돈 카를로스의 어머니이며, 주앙 3세와 오스트리아의 카탈리나의 딸이다.2. 생애
포르투갈 국왕인 주앙 3세와 오스트리아의 카탈리나 사이에서 둘째이자 장녀로 태어났다.마리아 마누엘라에겐 9명의 형제자매가 있었지만 모두 어린 시절에 사망했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형제가 남동생인 주앙 마누엘이였다. 주앙 마누엘도 펠리페 2세의 여동생인 오스트리아의 후아나와 결혼하여 이중으로 겹사돈을 맺기도 했다.[1] 포르투갈은 살리카법의 영향을 받지 않아 여성도 왕위 계승자가 될 수 있었고[2] 마리아 마누엘라의 형제들인 남성 계승자들이 자꾸 요절하자, 마리아 마누엘라는 한동안 포르투갈의 왕위 계승자에게 주어지는 작위인 포르투갈 여공을 받았다.
1543년에 16살 동갑인 펠리페 2세와 결혼 했는데 스페인 역사상 가장 화려한 왕실 결혼식 일정도로 호화로웠다고 한다. 2년 뒤 아들 돈 카를로스를 낳게 된다. 하지만 마리아 마누엘라는 출산 후 과다출혈로 인해 17세라는 어린 나이에 사망했다. 요절이긴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주앙 3세의 6남 3녀 중에 가장 오래 살았다. 형제들이 거의 다 어린 나이에 죽었고 남동생 주앙 마누엘은 그보다 나중에 사망하긴 했지만 나이로 따지면 마리아 마누엘라보다 3개월 가량 일찍 죽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그렇게 힘들게 낳은 돈 카를로스는 여러 대에 걸친 근친혼의 부작용이였는지 정신이 미약했다.
3. 가족관계
3.1. 조상
본인 | 부모 | 조부모 | 증조부모 |
포르투갈의 마리아 마누엘라 (Maria Manuela of Portuga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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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앙 3세 (John III) |
<colbgcolor=#ffffe4,#323300>
마누엘 1세 (Manuel 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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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제우 공작 페르난두[3] (Ferdinand, Duke of Vise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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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베아트리스[4] (Beatrice of Portuga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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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곤의 마리아 (Maria of Arag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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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란도 2세 (Ferdinand I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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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벨 1세 (Isabella 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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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의 카탈리나 (Catherine of Austri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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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페 1세 (Philip 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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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밀리안 1세 (Maximilian 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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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고뉴 여공작 마리 (Mary, Duchess of Burgund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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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아나 1세 (Joanna 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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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란도 2세 (Ferdinand I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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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벨 1세 (Isabella I) |
3.2. 자녀
자녀 | 이름 | 출생 | 사망 |
1남 |
아스투리아스 공 카를로스 (Charles, Prince of Asturias) |
1545년 7월 8일 | 1568년 7월 24일 |
4. 여담
- 남편 펠리페 2세는 외삼촌 카를 5세[5]와 고모 포르투갈의 이자벨[6]의 아들로 외사촌이자 고종사촌이었다.[7] 심지어 부모인 주앙 3세와 오스트리아의 카탈리나도 이종사촌끼리 결혼한 것이다.[8] 이런 대를 이은 근친혼 때문에 아들인 돈 카를로스도 선천적으로 정신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한다.
[1]
주앙 마누엘은 16살의 어린 나이로 사망하는데, 부인 후아나가 낳은 아들이 이후 포르투갈의 왕이 되는
세바스티앙 1세이다. 세바스티앙 역시 후계자를 남기지 못하고
알카세르퀴비르 전투에서 전사해 펠리페 2세가 포르투갈 왕위 계승을 주장하고 경쟁자들을 모두 물리치며
이베리아 연합을 구성한다.
[2]
단 여성에 대한 차별이 없이 출생 순으로 계승권을 주는 체계는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아들이 우선이고, 아들이 없을 경우에 한하여 딸에게 계승권이 돌아가는 체계였다.
[3]
두아르트 1세의 차남이자
페란도 1세의 외손자다.
[4]
주앙 1세의 손녀다.
[5]
어머니
오스트리아의 카탈리나의 큰오빠.
[6]
아버지
주앙 3세의 여동생.
[7]
펠리페 2세에게도 마리아 마누엘라는 외삼촌
주앙 3세와 고모
오스트리아의 카탈리나의 딸로 외사촌이자 고종사촌이었다.
[8]
남편 펠리페 2세의 부모인 카를 5세와 이자벨도 이종사촌이다. 즉, 남매가 이종사촌과 나란히 겹사돈을 맺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