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이름이 수정궁인 영국의 건축물에 대해 다룹니다. 유리장식이 많은 건축 양식을 일컫는 말에 대한 내용은 유리궁전 문서 참고하십시오.
1. 영국에 있었던 건축물
The Crystal Palace
정식명칭은 the Palace of the Great Exhibition of the Works of Industry of All Nation으로 Crystal Palace는 당시 주간지 칼럼니스트가 붙인 이름으로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1851년, 영국 런던의 하이드 파크에서 일반적으로 세계 첫 박람회로 인정하는 1851 런던 엑스포를 위해 규격화된 주철 구조물과 유리만으로 만들어진 대규모 건물로, 철골 구조를 대중에게 널리 각인시켰다. 철제나 목제 골조와 유리를 중심으로 하는 온실 설계로 명성을 얻은 영국의 건축가 조셉 팩스턴 경(Sir J. Paxton)의 설계를 기초로, 개최연도에 맞춰 좌우 1,851피트(564m) 길이의 건물로, 석재나 벽돌을 전혀 쓰지 않고 유리와 철제 빔만으로 지어진 당시 최신 건축기술의 표본과도 같은 건물이었다.
건설 배경을 살펴보면, 1849년 왕립예술협회의 헨리 콜이 파리 박람회에 다녀오고 열폭해서, " 프랑스만 박람회 여는 줄 알아? 우리도 박람회 열 수 있어!"를 외치고 다른 고위층들을 설득해서 박람회 개최를 전격 결정했다. 수정궁은 박람회를 열기 위한 거대한 박람회장으로 기획되었다.
애초에 프로젝트 일정이 빡빡하기 그지 없었다. 본 건물을 기획하면서, 총 공사기간을 1년 6개월 정도로 잡아 사실상 성공 여부가 불투명했다. 그러나 신예 건축가 조셉 팩스턴의 설계가 너무나 뛰어나, 일정내에 건설되는 것은 물론, 실제 공사기간을 5개월로 줄일 수 있었다.
사실 팩스턴은 전문적인 건축 설계자는 아니었다. 정원, 공원 설계에서 젊은 나이에 인정을 받기 시작한 조경업자에 가깝다고 하는 것이 적절한 설명이다. 조경업자로서 자신에게 익숙한 철제/목제 골조와 유리를 중심으로 하는 온실에서 영감을 얻어 2주 동안 초안을 작성하고, 그 초안은 결국 다른 200여개의 제안을 물리치고 채택된다.
이와 같은 건설은 이전 기술 수준으로 불가능했던 유리의 대량생산 문제가 해결되는 시점에 이루어져 가능했다. 냉각이 빠르고 광택을 내기가 쉬운 판유리의 경제적인 생산법이 보편화되어 판재 유리를 대량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그에 더해 사회적, 제도적 변화가 수정궁의 건설에 큰 역할을 하였다. 창문세와 유리세가 폐지되어 사회적으로 유리 수요가 증가하고 이에 따라 생산시설이 증가하고 유리판의 값은 떨어졌다. 세금이 폐지된 이후 팩스턴의 설계가 나왔을 때는, 이전 판유리에 비해 절반으로 값이 떨어져 유리궁전의 건설을 가능하게 했다.
박람회 폐회 후에는 일시적으로 해체되어 1854년에 원래 위치에서 시드넘으로 옮긴 뒤, 새 공원을 조성하면서 더 큰 규모로 개축되었고, 온실, 콘서트홀, 박물관, 미술관이 갖추어진 복합문화공간으로 많은 관람객을 끌어모으는 런던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하였다.
1888년 6월 29일 수정궁에서 연주된 헨델의 ‘이집트의 이스라엘인’ 중 "Moses and the Children in Israel"이다.[1] |
하지만 이러한 건축 양식이 시간이 지나면서 식상해지게 되어 1909년에 이르러 운영업체가 파산하고 말았고, 이후에는 영국 정부가 직접 매입하여 운영하다가 1936년 11월 30일 화재로 인해 전소되었다. 화재 소식을 들은 윈스턴 처칠은 " 한 시대의 끝이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하며, 이후 재건되지는 못했다.
화재 이후 잔해는 모두 철거되었다. 석재와 콘크리트로 지어진 수정궁 양쪽에 있던 탑 2개는 화재에서도 살아남았지만, 남쪽에 있던 탑은 화재로 구조물이 약화, 붕괴 위험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어 화재 직후 잔해 해체와 함께 철거되었다. 북쪽 탑은 한동안 남아 있었지만 1941년에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철거되었다.[2]
잔해 철거 후 부지는 공원화되었고, 불에 타지 않은 석재 기단부 및 계단 등이 남아 있다.
조지 6세의 언어치료사였던 라이오넬 로그의 자택이 수정궁 근처에 있어서 로그는 불타는 수정궁을 가족들과 함께 봤다고 한다.
수정궁은 유리와 철을 사용한 혁신적인 건물이었음에도 건물의 기둥 간 간격 등은 짧아 여전히 구시대적이란 인상이 남아있지만, 1869년에 지어진 세인트 판크라스역은 기둥간의 거리를 73m로 늘렸다.
프랑스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훗날 1889 파리 엑스포에서 300m 높이의 에펠 탑과 수정궁과 비슷하지만 기둥간의 거리를 115m로 늘려 더욱 거대한 규모의 팔레 드 마신(Palais des Machines, 기계관)을 선보여 세계에 충격을 주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팔레 드 마신은 수정궁보다 더 이른 시기인 1910년에 철거되어 수정궁보다는 존재감이 없었다.
2013년 중국 자본이 수정궁 재건 협약을 체결했으나, 계획이 진행되지 않고 계약이 만료되면서 재건 계획은 취소되었다.
폴아웃 런던에서는 화재와 2차 세계대전은 피해갔지만 핵전쟁은 피해갈 수 없었는지 주변이 용암으로 들끓는 마경이 되었는데도 이곳저곳이 파손된 황량한 건물만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