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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7-26 00:00:58

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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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호 원조(元祖)
시호 소황제(昭皇帝)
쩐(Trần, 陳 / 진)
리(Lý, 李)
부황 영조(寧祖)
생몰기간 ? ~ 1210년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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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쩐리(Trần Lý / 陳李 / 진리, ? ~ 1210년)는 대월 리 왕조 말기의 외척이자 정치인이다. 후대 쩐 왕조의 초대 황제인 쩐태종 쩐까인(진경)의 조부이며, 태조 쩐트어(진승)의 부친이다.

2. 생애

즉묵향[1]에서 대대로 어업을 하며 살았다. 쩐리(진리)는 어업으로 부를 쌓아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의탁했다. 쩐리는 그들을 모아 도적질을 하기도 하며 즉묵향에서 크게 세력을 키웠다.

찌빈롱응 4년( 1208년), 팜빈지가 팜주의 무고로 체포되자 팜빈지의 부장 꽉복이 수도 탕롱을 공격했고, 이에 암군이었던 젊은 황제 리 고종은 태자 리 하오 삼(이호참)과 함께 도주했다. 그들은 즉묵향에 이르렀는데, 태자 리 하오 삼이 쩐리의 딸이 자색이 있음을 보고 그녀와 결혼하여 비로 삼았다. 쩐리는 명자작(明字爵)을 하사받았고, 이때부터 변방의 보잘것없던 호족 쩐씨가 리 왕조의 외척이 되었다. 쩐리는 그의 부중을 거느리고 수도 탕롱으로 가서 반란을 평정하고, 고종을 받들어 돌아가게 했다.

1210년, 쩐리가 반란을 일으킨 병사에게 살해당하자, 그의 둘째 아들 쩐뜨카인(진사경)이 뒤를 이어 쩐씨 부중을 통솔했다. 이후 쩐뜨카인과 첫째 아들 쩐트어(진승)가 차례로 정권을 장악했다.

티엔쯔엉흐우다오 2년 12월 12일( 1226년 1월 11일), 쩐트어의 둘째 아들 쩐까인(진경)이 황제로 즉위하여 쩐 왕조를 세웠다.

끼엔쭝 8년( 1232년), 가문을 크게 일으켜 세우며 쩐씨 가문을 베트남 역사의 전면에 등장시켰던 쩐리의 묘호원조(元祖), 시호소왕(昭王)이라고 했다.

흥롱 20년( 1312년), 영종원조 소황제(元祖 昭皇帝)로 고쳐 칭했다.


[1] 卽墨鄕, 현재의 남딘성 미록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