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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1 14:23:54

전일본 여자 프로레슬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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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日本女子プロレ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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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명칭 전일본 여자 프로레슬링 흥업 주식회사 (全日本女子プロレス興業株式会社)
약칭 전녀 (全女) / AJW / AJWPW
설립일 1968년 6월 4일
해산일 2005년 3월 31일
분류 주식회사
사업 내용 프로레슬링 흥행 관련 기획 운영
대표자 대표이사 회장 마츠나가 타카시 (松永高司)
대표이사 사장 마츠나가 쿠니마츠 (松永国松)

1. 개요2. 역사
2.1. 1960년대2.2. 1970년대 : 여명기2.3. 1980년대 : 전성기의 시작2.4. 1990년대 초반 : 단체 대항전의 시대2.5. 1990년대 중후반 : 시작된 몰락2.6. 2000년대
3. 챔피언십
3.1. WWWA3.2. 전일본 여자 프로레슬링 협회3.3. AGWA3.4. UWA3.5. IWA
4. 리그
4.1. 재팬 그랑프리4.2. 태그 리그 더 베스트4.3. GRAND NORTH 6인 태그 리그
5. 명예의 전당
5.1. 역대 헌액자
6. 주요 소속 선수7. 여담8. 둘러보기9. 관련 문서

1. 개요

전일본 여자 프로레슬링의 공식 테마곡.[1]

지금은 없어진 일본의 전설적인 여자 프로레슬링 단체. 줄여서 전녀(全女)라고도 부른다. 영어로는 AJW로 표기한다.

1968년 6월 4일에 도쿄 시나가와 공회당에서 정식으로 출범했다. 텔레비전 중계는 후지 TV와 FIGHTING TV 사무라이에서 맡았으며, 2005년 4월 17일 고라쿠엔 홀에서 마지막 흥행을 개최하고 해산했다.

'일본 여자 프로레슬링 협회'[2] 경영진과 마찰로 인해를 협회에서 퇴사한 마츠나가 타카시(松永高司)와 그를 따르던 선수들에 의해 설립되었고, 초대 회장으로는 대일본 잇세이회 소속의 이치마네 히가시이치(万年東一)가 취임했다. 출범 초기에는 폭력조직과 관련이 있다는 흑색선전 때문에 흥행을 위한 시설 차용에 어려움을 겪었고, 때문에 야외에 링을 설치하고 지방 순회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행스럽게도 당시 스포츠 신문사인 '데일리 스포츠'[3]는 전녀를 지원해주었고, 이는 곧 폭력조직과는 관계가 없다는 일종의 신원 보증이 되었다. 이후 1990년대까지 전녀의 주요 흥행에는 심지어 주관하는 방송사가 다르다고 할지라도데일리 스포츠의 기자가 해설자로 파견되었다.오오 은혜갚은 전녀 또한 전녀 출범 당시 데일리 스포츠의 편집 국장을 지냈던 우에다 신지(植田信治)는 훗날 전녀의 챔피언쉽 타이틀 운영 기관인 '전일본 여자 프로레슬링 협회'의 커미셔너로 취임했다.

흥행은 대도시의 대회장, 지방의 현립 체육관이나 시민 회관, 대형 마트의 주차장(...) 등 다양한 장소에서 열렸으며, 최전성기에는 연간 300회가 넘는 흥행을 치르기도 했다. 이는 일본의 모든 프로레슬링 단체를 통틀어 최다 흥행 기록이었다.

2. 역사

2.1. 1960년대

1968년 6월 4일. 정식 출범일. 창단 멤버는 ‘일본 여자 프로레슬링 협회’에서 이탈한 11명의 선수들과 4명의 왜소증 레슬러들로 구성되었다.

2.2. 1970년대 : 여명기

1970년 10월 15일. 쿄 아이코(京愛子)가 Marie Vagnone을 꺾고 일본인 최초로 WWWA 월드 챔피언에 등극하였다. 이후 해당 타이틀은 전녀가 소유권을 차지하며 전녀를 상징하는 벨트로 거듭나게 된다. 1년 후엔 WWWA 월드 태그 팀 챔피언쉽도 전녀 선수들이 획득하며 소유권을 가져오게 된다.

1976년 재키 사토(ジャッキー佐藤)와 마키 우에다(マキ上田)가 뷰티 페어라는 태그 팀을 결성하고 WWWA 월드 태그 팀 챔피언에 등극한다. 같은 해에 둘은 ‘ 방황하는 청춘(かけめぐる青春)’이라는 곡으로 가수로 데뷔하였는데, 80만장이 팔리는 대히트를 기록하고 인기를 누렸다. 특히 여고생을 중심으로 큰 인기를 끌고 붐을 일으켰으며, 이에 따라 어린 여성 관중들이 늘어나는 계기가 된다.

1979년 10월엔 미국의 여자 프로레슬러들과 리그 대항전을 개최했다. 당시만 해도 미국의 여자 프로레슬러들과 일본의 여자 프로레슬러들의 교류가 잦았다. WWE에서 활동했던 선수들 중 일본에서 경기를 치렀던 선수들로는 페뷸러스 물라, 웬디 릭터, 셰리 마텔, 메두사 머첼리, 레일라니 카이, 벨벳 맥킨타이어, 몬스터 리퍼 등 꽤 많다. 반대로 전녀의 선수들이 WWE에서 뛰었던 케이스로는 대표적으로 점핑 밤 엔젤스와 불 나카노가 있으며, 90년대 초반WWE의 전녀 카피하기 시즌에 상당수의 전녀 선수들이 WWE에서 경기를 가졌었다.

2.3. 1980년대 : 전성기의 시작

나가요 치구사(長与千種)와 라이오네스 아스카(ライオネス飛鳥)가 태그 팀 크러쉬 갤즈(Crush Gals) 결성했다. 크러쉬 갤즈는 나가요 치구사의 미소년스러운 외모 덕분에 여학생들 사이에서 엄청난 붐을 일으켰다.[4] 앞서 70년대의 뷰티 페어와 비슷한 케이스로 보이지만, 뷰티 페어가 노래로 먼저 인기를 얻은 것과 달리 크래쉬 갤즈는 경기하는 모습으로 먼저 인기를 끈 뒤에 음반을 발표했다.[5]

1985년. ‘재팬 그랑프리’와 ‘태그 리그 더 베스트’가 개최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하단 참조.

1986년 4월 5일. 여성들은 경기를 치른 전례가 없던 ‘양국 국기관’에서 처음으로 경기를 가진 여성들이 되었다. 당일 메인이벤트는 데빌 마사미와 라이오네스 아스카의 WWWA 월드 챔피언쉽 매치. 같은 해에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단체인 재팬 여자 프로레슬링(JWP)이 출범했다.[6]

1987년 10월. ‘일본 레슬링 협회’와 함께 ‘제1회 전일본 레슬링 선수권 대회’ 합동 개최했다. 본 대회는 아마추어 레슬링 대회였으나 전녀의 훈련생들을 대회에 내보내기도 했다.

1989년. 크래쉬 갤즈가 해체하고 불 나카노, 아쟈 콩 등 악역 레슬러들이 활약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악역 선수들은 그야말로 악역답게 마냥 미움받는 존재였는데, 불 나카노가 단체의 중심으로 올라선 후 악역이라도 경기를 잘 하면 팬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남자 팬들이 늘어나게 된 시점이기도 하다.

2.4. 1990년대 초반 : 단체 대항전의 시대

90년대 일본 여자 프로레슬링계에서 일어난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으로는 단체 대항전[7]이 있다.

1992년 7월. FMW 소속의 샤크 츠치야(シャーク土屋)와 크러셔 마에도마리(クラッシャー前泊)가 전녀 흥행에 나타나서 도전장을 내민다. 훗날 벌어질 단체 대항전의 서막.

같은 해 9월. 전녀의 불 나카노와 호쿠토 아키라가 FMW의 흥행에 참가하여 쿠도 메구미(工藤めぐみ)와 컴뱃 토요다(コンバット豊田) 팀으로부터 승리한다. 이를 계기로 전녀는 각 단체에 교류를 요청하게 된다.

1993년 4월 2일. 요코하마 아레나에서 전녀, JWP, FMW, LLPW[8] 선수들이 출전한 전일본 여자 프로레슬링 창립 25주년 기념 꿈의 올스타전 Dreamslam I[9]이 개최되었다. 결과는 대성공. 경기들이 길어지는 바람에 메인 이벤트 경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시간이 자정을 넘어 막차가 끊기는 사태가 발생했다. 허나 경기에 빠진 관중들이 흥행을 끝까지 관람한 뒤 경기장 근처 전철역에서 첫 차를 기다리며 밤을 새기도 하는 등 전설적인 흥행 기록을 남겼다. 그로부터 바로 9일 후에 치러진 Dreamslam II 역시 성공적인 흥행이 되었다.

2.5. 1990년대 중후반 : 시작된 몰락

1994년 11월 30일. 여자 프로레슬링 단체로는 처음으로 도쿄돔에서 흥행을 개최했다. Big Egg Wrestling Universe이라는 이름의 이 흥행에선 불 나카노가 얼룬드라 블레이즈를 꺾고 WWE 위민스 챔피언십을 획득하기도. 허나 경기장 좌석의 절반 이상이 공석이었고, 작년과는 달리 막차 시간에 맞춰 경기장을 떠나는 관중들이 많았다. 이는 여자 프로레슬링의 붐이 한풀 꺾였음을 입증하는 사례였다.

1995년 8월 30일. JWP 소속의 다이너마이트 칸사이(ダイナマイト・関西)[10]가 아쟈 콩을 꺾고 WWWA 월드 챔피언쉽을 획득하는데 성공. WWWA 월드 챔피언쉽이 타단체에 유출된 최초의 사례로 남았다.

1996년 5월 18일. 제1회 주니어 올스타전이 개최되었다. 전녀, JWP, LLPW, GAEA, Jd', FMW, IWA 재팬의 선수들이 참가한 가운데 GAEA 소속의 사토무라 메이코(里村明衣子)가 MVP가 되었다. 93년 단체 대항전 시절보다 더 많은 단체들이 참가했지만, 듣보잡 신인 선수들의 대회라는 점과 여자 프로레슬링의 인기가 식었다는 것이 이유가 되어 크게 이슈화되지 못했다.

1997년 8월. 전녀의 최고 스타인 아쟈 콩이 일본 무도관에서의 경기를 끝으로 프리랜서로 활동하겠다고 선언했다. 점점 망할 조짐이 보이는 전녀 이 무렵부터 이노우에 교코(井上京子)를 비롯하여 홍보 프로듀서, 프로레슬링 관계자들은 새로운 여자 프로레슬링 단체인 ‘Arsion’과 ‘NEO 여자 프로레슬링’의 출범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달 사이에 무려 14명의 선수들이 전녀를 퇴사했다. 퇴사한 선수들은 아쟈 콩을 따라 Arsion으로 가거나, 이노우에 교코를 따라 NEO 여자 프로레슬링으로 갔다.

그 해 10월. 어음 부도에 의한 은행거래 정지 처분을 받는다. 동시에 사옥 건물의 소유권은 채권자에게로 이동했지만 차용하고 계속 사용했으며, 후지 TV의 ‘전일본 여자 프로레슬링’ 중계가 종영되고 후지 TV에서의 중계권도 일시 소멸되었다.

2.6. 2000년대

2002년 3월 30일에 이르러 지상파의 전녀 중계방송이 모두 종료되었다.

2005년 3월 29일. 요코하마 가나자와 산업진흥센터 체육관에서 전녀가 주최한 마지막 흥행이 열렸다.

2005년 4월 17일. ‘퍼스트 온 스테이지’의 주최로 열린 고라쿠엔 홀에서의 흥행을 끝으로 결국 해산하였다. 이 마지막 흥행은 2,100여명의 관중을 동원했으며, 부상으로 결장한 선수들을 제외한 모든 선수가 경기에 출전하고 은퇴한 선수들도 대거 방문해 자리를 빛냈다.

3. 챔피언십

전녀에는 참으로 다양한 타이틀이 존재했으나 메인급 타이틀은 WWWA 월드 챔피언쉽, WWWA 올 퍼시픽 챔피언쉽, 전일본 싱글 챔피언쉽 3개 정도다.

3.1. WWWA

WWWA[11]가 인증하고 전녀에서 관리하는 챔피언쉽.

파일:external/www.oocities.org/wwwa62199.jpg

3.2. 전일본 여자 프로레슬링 협회

전녀가 인증하는 챔피언쉽.

3.3. AGWA

미국 여자 레슬링 협회(American Girls Wrestling Association) 인증. 전녀의 여명기에 등장했던 챔피언쉽.

3.4. UWA

멕시코의 UWA(Universal Wrestling Association)가 인증하는 챔피언쉽. UWA에 여자 선수가 부족했던 관계로 챔피언쉽은 주로 전녀에서 열렸다.

3.5. IWA

4. 리그

4.1. 재팬 그랑프리

Japan Grand Prix. 1985년부터 2004년까지 해마다 치러진 싱글 매치 리그. 우승자에겐 WWWA 월드 챔피언쉽 넘버 원 컨텐더 자격이 주어졌다. 수많은 명경기들이 바로 이 재팬 그랑프리에서 탄생했다. 토요타 마나미가 최다 우승자(총 4회)이며, 2003년엔 WWE의 ‘카르마’로 널리 알려진 어메이징 콩이 참가해 우승한 적이 있다.

4.2. 태그 리그 더 베스트

Tag League The Best. 재팬 그랑프리와 달리 이쪽은 태그 팀 매치 리그. 1985년부터 2003년까지 해마다 치러졌다. 전녀의 해산과 함께 자연스럽게 사라졌다가 2011년에 JWP가 동명의 대회를 개최하며 부활시켰다.

4.3. GRAND NORTH 6인 태그 리그

1995년부터 딱 세 차례 열리고 끝난 6인 태그 팀 리그.

5. 명예의 전당

1998년 11월 29일. 요코하마 아레나에서 개최된 전녀 출범 30주년 기념 흥행에서 '여자 프로레슬링 명예의 전당'이 창설되었다. 전녀 선수들 외에도 일본 여자 프로레슬링의 역사에 큰 업적을 남긴 인물 역시 헌액되었다.

5.1. 역대 헌액자

6. 주요 소속 선수

소속되었던 주요 선수들은 전녀 데뷔 순서대로 나열하였다.

7. 여담

8. 둘러보기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 레슬링 옵저버 선정 5성 경기 [★]
1985년 8월 22일
전일본 여자 프로레슬링
WWWA 월드 위민스 챔피언십
재규어 요코타(C) vs 아스카 라이오니스
1987년 2월 26일
전일본 여자 프로레슬링
싱글 매치
나가요 치구사 vs 아스카 라이오니스
1987년 12월 6일
전일본 여자 프로레슬링
트웰브 맨 태그팀 매치
나가요 치구사 & 스즈키 미카 & 타카하시 미카 & 히라타 이시야 & 홋타 유미코 & 오구라 유미
vs
미타 에츠코 & 나가호리 카즈에 & 아스카 라이오니스 & 코마츠 미카 & 니시와키 미츠코 & 나카무라 사치코
1991년 1월 4일
전일본 여자 프로레슬링
WWWA 월드 챔피언십
불 나카노 (C) vs 호쿠토 아키라
1992년 4월 25일
전일본 여자 프로레슬링
IWA 월드 위민스 챔피언십
이노우에 쿄코 vs 토요타 마나미
1992년 8월 15일
전일본 여자 프로레슬링
IWA 월드 위민스 챔피언십 헤어 VS 헤어 매치
야마다 토시요 vs 토요타 마나미(C)
1992년 11월 26일
전일본 여자 프로레슬링
WWWA 월드 태그팀 챔피언십
다이너마이트 칸사이 & 오자키 마유미 vs 야마다 토시요 & 토요타 마나미(C)
1993년 4월 2일
전일본 여자 프로레슬링
태그팀 매치
큐티 스즈키 & 오자키 마유미(X) vs 이노우에 쿄코 & 이노우에 타카코(O)
1993년 4월 11일
전일본 여자 프로레슬링
WWWA 월드 태그팀 챔피언십 3판 2선승 매치
다이너마이트 칸사이 & 오자키 마유미(O) vs 야마다 토시요 & 토요타 마나미(X)(C)
1994년 11월 20일
전일본 여자 프로레슬링
빅에그 레슬링 유니버스 토너먼트 8강전
아쟈 콩 vs 토요타 마나미
1995년 3월 26일
전일본 여자 프로레슬링
WWWA 월드 챔피언십
아쟈 콩(C) vs 토요타 마나미
1995년 5월 7일
전일본 여자 프로레슬링
WWWA 월드 챔피언십[19]
이노우에 쿄코 vs 토요타 마나미(C)
1995년 6월 27일
전일본 여자 프로레슬링
WWWA 월드 챔피언십
아쟈 콩 vs 토요타 마나미(C)
1995년 7월 23일
전일본 여자 프로레슬링
싱글 매치
시모다 미마 vs 토요타 마나미
1995년 9월 2일
전일본 여자 프로레슬링
재팬 그랑프리 4강전
호쿠토 아키라 vs 토요타 마나미

9. 관련 문서



[1] 신인 선수들의 등장 음악으로도 사용되었다. [2] 60년대 일본에서 여자 프로레슬러들을 관리하던 협회. 단체라고 분류하긴 애매하다. [3] 한신 타이거즈의 사실상의 당기관지로 유명하다. [4] 당시 관중의 80%는 여성이었다. 일본에서 여자 프로레슬링이 남성 팬들을 모으기 시작한 건 90년대에 이르러서이다. [5] 일본에서 여자 프로레슬러들은 거의 반쯤 연예인으로 취급받았기 때문에 이들처럼 음반을 내는 등 연예계 활동에 발을 걸치는 경우가 많았다. 성공한 케이스가 드물 뿐 [6] 큐티 스즈키, 다이너마이트 칸사이, 오자키 마유미 등의 쟁쟁한 선수들이 간판 스타로 활동했던 단체다. [7] 전녀, JWP, FMW, LLPW의 소속 선수들이 한 흥행에 모여 대결을 펼쳤던 일. 표면적으로는 2001년 WWE의 PPV 인베이전과 비슷하다. [8] Lady's Legend Pro-Wrestling의 약자. 1992년에 재팬 여자 프로레슬링이 해산하는 바람에 만들어진 여자 프로레슬링 단체. 현재는 LLPW-X라는 아주 작은 규모의 단체로 전락했다. [9] 호쿠토 아키라가 칸도리 시노부를 꺾고 ‘데인저러스 퀸’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바로 그 흥행. [10] 재일교포 2세 출신으로 한국 이름은 '이강자'. 스플래쉬 마운틴(싯아웃 크러시픽스 파워밤)의 개발자이며 킥커 스타일 레슬러이다. [11] World Women 's Wrestling Association의 약자. 세계 여자 레슬링 협회. [12] 전세계 여자 프로레슬링의 역사에서 탄생한 최초의 인기 스타. 페뷸러스 물라의 스승이기도 하다. [13] 여성 단체인데 남성들의 챔피언쉽이 있는 이유는 한동안 왜소증 남자 레슬러들도 함께 활동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14] 오디션 프로그램 스타 탄생!에 참가해 최종 결선까지 올라갔으나 불합격한 이력이 있다. [15] 보통 중학생 나이 정도에 데뷔하는 경우가 많아서 데뷔 10년차라고 하더라도 20대인 경우가 많았다. [16] 대표적인 예가 데빌 마사미. 데뷔 9년차가 되던 해에 프리랜서로 전향해서 활동하다가 JWP로 들어갔다. [17] 소도시의 게이샤가 프로레슬러로 데뷔하는 이야기. [★] 밑줄이 승리자. 다자간 매치의 경우 이름 옆 (O)가 핀폴자, (X)가 피핀폴자. [19] 시간제한 무승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