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FRS 장바티스트 르 롱 달랑베르 Jean-Baptiste le Rond d'Alember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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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717년 11월 16일 |
프랑스 왕국 파리 | |
사망 | 1783년 10월 29일 (향년 65세) |
프랑스 왕국 파리 | |
직업 | 학자, 음악 이론가 |
분야 | 수학, 철학, 물리학 |
종교 | 반종교[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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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의 수학자, 철학자, 물리학자, 음악이론가다.2. 상세
그는 프랑스 계몽주의 시대의 백과전서파 인물 중 한 명으로 백과전서를 편찬할 때 서문과 수학편을 맡았다. 대표적인 업적으로 1743년 《역학론》(Traité de dynamique)을 저술하여 라그랑주 역학의 기초 원리가 되는 달랑베르의 원리를 발표한 것이 있다. 1744년 달랑베르의 원리를 유체에 적용하여 《유체의 평형운동론》(Traité de l'équilibre et du mouvement des fluides)을 출간한다. 1747년《기류의 일반적 원인에 대한 고찰》(Réflexions sur la cause générale des vents)을 출간하면서 파동방정식을 푸는 방법을 제시했다. 이 책은 베를린 학술원의 상을 받았고 달랑베르는 베를린 학술원 회원으로 선정된다.1750년 베를린 학술원이 유체 저항 이론에 대한 공모전을 열자 달랑베르는 논문을 제출했다. 학술원의 결정이 연기되자 달랑베르는 수상을 포기하고 1752년 해당 내용을《유체 저항에 대한 새로운 이론에 대한 평론》(Essai d'une nouvelle théorie de la résistance des fluides)으로 출간한다. 달랑베르는 이 책에서 달랑베르의 역설을 주장하였다. 문제가 된 공모전의 심사위원이 오일러였기 때문에 달랑베르와 오일러는 이때를 계기로 사이가 안좋아지게 되었다. 이후로도 여러 주제를 두고 오일러와 달랑베르는 논쟁을 벌였다.
그 외에도 여러 분야에 그의 이름이 등장한다. 달랑베르 연산자가 그의 이름을 따왔다. 또한 코시-리만 방정식을 만들기도 했다. 급수의 수렴을 판정하는 '달랑베르 비율 판정법'도 그의 이름을 따왔으며 유체역학에선 달랑베르의 역설이 그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달랑베르의 글은 수학적 엄밀함이 부족하여 오일러의 저술보다 체계성이 뒤떨어졌기 때문에 과거 학계에서는 달랑베르의 업적이 저평가되는 경향이 있었다.
후학 중 한 명으로 피에르시몽 라플라스가 있다.
대수학의 기본정리라는 중요한 정리를 거의 증명했다. 해당 문서 참고.
[1]
“
Jean Le Rond d’Alembert: French mathematician and philosopher,”
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 2022년 11월 13일 수정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