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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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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97년 6월 23일
충청남도 서천군
사망 1974년 7월 1일 (향년 77세)
서울특별시
본관 평택 임씨
서훈 대통령표창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1. 개요2. 생애
2.1. 해방 이전2.2. 해방 이후2.3. 사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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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의 경무대 비서실 행정관을 역임한 정치인.

2. 생애

2.1. 해방 이전

1897년 6월 23일 충청남도 서천군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29일 충청남도 서천군 마산면 신장리에서 송기면, 유성렬, 이근호 등 동지들과 함께 태극기 200여매를 모여드는 장꾼들에게 독립만세운동에 같이 참여하도록 권유해 이천여 명의 군중 앞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장터 행진을 개시했지만 일본 경찰들에 의해 송기면과 유성렬이 강제로 끌려가고 뒤이어 이근호와 나상준도 같이 붙잡히자 군중들과 같이 주재소로 가서 구금 조치된 서천 주민들의 석방을 극력 촉구하며 독립만세를 연신 고창하다가 체포되었다. 결국 그는 1919년 6월 14일 호서 지방 고등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른 후 이듬해 1920년에 만기 출감하였다. 이후 1923년에 부인, 자녀들과 아울러 일족들이 홀홀단신으로 경성부에 상경하여 조선중앙일보 예하 등기물 배달부와 동아일보 예하 보급소 보급원 등을 지내며 일족들과 아울러 근근이 경성부 생활을 지냈다.

2.2. 해방 이후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하고 1949년 2월 1일 한국독립당에 상임고문으로 입당을 하고 난 뒤 같은 해 6월 26일, 사돈인 백범 김구 비상국민회의 부의장의 서거 비보를 접하였고 1957년 한국독립당 상임고문 직위를 사퇴 및 탈당하였으며 이후 셋째사위인 김신의 대한민국 공군 장교 재편입과 아울러 그 후 1962년 8월 1일을 기하여 김신 당시 대한민국 공군참모총장이 대한민국 공군 중장으로 예편하는 것을 목도하였고 2년 후 1964년에는 68세 나이로 대한민국 민주공화당 전임고문에 위촉되었으며 이후 1971년 11월 11일에는 위암 투병하던 셋째딸을 향년 43세로 먼저 여의었고 2년 후 그는 1973년 3월 20일을 기하여 민주공화당 전임고문 직위에서 사퇴와 동시에 민주공화당 탈당을 하였으며 이듬해 1974년 7월 1일, 향년 78세로 사망하였다.

2.3. 사후

1977년 대통령표창과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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