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 이즈미 쿄카 [ruby(泉鏡花, ruby=いずみ きょうか)]|Kyoka Izum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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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이즈미 쿄타로 ([ruby(泉 鏡太郎, ruby=いずみ きょうたろう)]) | |||
출생 | 1873년 11월 4일 | |||
일본 제국 이시카와현 가나자와시 시모아라마치 | ||||
사망 | 1939년 5월 29일 (향년 63세) | |||
일본 제국 도쿄부 도쿄시 고치마치구 오기쿠보 | ||||
직업 | 소설가, 시인, 극작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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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 학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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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자와고등초등학교 (졸업) 호쿠리쿠에이와학교 (중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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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기간 | 1893년 – 1939년 | |||
묘소 | 도쿄도 도시마구 조시가야 공원 | |||
부모 |
아버지 이즈미 마사미츠 어머니 이즈미 스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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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 이즈미 스즈(어머니와 이름(下の名前)이 같다. 이즈미 쿄카와의 결혼으로 성(名字)까지 같아진 것.) | |||
장르 | 소설, 하이쿠, 희곡 | |||
데뷔작 | 관야자에몬 (18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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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인으로 태어나면서, 혹은 일본어를 해독할줄 알면서, 쿄카의 작품을 읽지 않는 것은, 모처럼의 일본인으로서의 특권을 포기한 것이다." -
나카지마 아츠시
"그는 바다처럼 풍부한 어휘로 신비주의와 상징주의의 밀림을 맨손으로 헤치고 들어갔다." -
미시마 유키오
일본 메이지 시대의 환상문학 소설가. 1873년 11월 4일 일본의 카나자와시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이즈미 쿄타로(泉鏡太郎). 9세에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평생 어머니에 대한 깊은 그리움을 가지고 죽은 자들이 있는 곳을 생각했다. 죽은 어머니가 있는 곳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곳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고 오히려 편안하게 느꼈다고 한다. 그의 작품에 요괴나 귀신이 자주 등장하는 까닭. 그의 작품에 요괴나 귀신이 등장하기 때문에 공포물 + 애니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기념품(엽서 등)이 잘 팔리고 있다. 매년 10월에 그의 고향 카나자와에서는 요괴 축제(妖怪祭り)가 열린다.
어머니 스즈와 동일한 이름을 가진 여인에게 운명을 느껴 결혼했다. 어머니에 대한 애정과 집착을 보여준다. 아내 스즈는 평소 담배를 즐기는 쿄카의 담뱃대 커버를 화려하게 만들어주었다.(카나자와의 시모신쵸 2쵸메에 위치한 이즈미 쿄카 기념관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이즈미 쿄카 기념관은 그가 태어난 곳에 지어졌다.)
이즈미 쿄카는 토끼 모양의 오브젝트가 행운을 불러온다고 생각해서 수집하는 취미가 있었다. 극도의 결벽증으로 밖에서는 절대로 화장실을 사용하지 않았고, 날 것은 먹지 않았으며, 한번 입은 옷은 즉시 버렸다고 한다.
카나자와의 료칸 마츠자키에 종종 머물렀다고 한다. 그 근처에 친척(할머니)이 운영하는 기생집이 있어서 용돈을 받으러 왔었다고 한다.
21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죽기 전에는 도쿄의 니혼바시에 머물렀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서양 문물이 급격하게 유입되면서 일본의 전통문화는 시대에 뒤처진다 여겨져 무시받는 경향이 강했는데, 이즈미 쿄카는 오히려 일본의 요괴, 향토적 소재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시대를 역행한 작가라고도 불린다. 이는 당시 그의 소설이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일본의 원풍경(原風景)을 아름답게 묘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1973년에는 이즈미 쿄카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이즈미 쿄카 문학상이 제정되기도 하였다. 대표적 수상자는 교고쿠 나츠히코로, 1997년 <웃는 이에몬>으로 수상한 바 있다.
2. 작품
- 고야산 스님(高野聖)
- 외과실
- 초롱불 노래
- 천수각이야기(天守物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