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다윗 왕조 | ||||
초대 | 제2대 | 제3대 | 제4대 | 제5대 | |
르호보암 | 아비얌 | 아사 | 여호사밧 | 여호람 | |
다윗 왕조 | 오므리 왕조 | 다윗 왕조 | |||
제6대 | 제7대 | 제8대 | 제9대 | 제10대 | |
아하시야 | 아달리야 | 요아스 | 아마지야 | 우찌야 | |
다윗 왕조 | |||||
제11대 | 제12대 | 제13대 | 제14대 | 제15대 | |
요담 | 아하스 | 히즈키야 | 므나쎄 | 아몬 | |
다윗 왕조 | |||||
제16대 | 제17대 | 제18대 | 제19대 | 제20대 | |
요시야 | 여호아하즈 | 여호야킴 | 여호야긴 | 치드키야 | |
이스라엘 판관 ·
통일 이스라엘 ·
북이스라엘 바빌론 예후드 · 예후드 메디나타 하스몬 왕조 · 헤로데 왕조 · 유다이아 |
}}}}}}}}} |
남유다 왕국 제18대 국왕
여호야킴 יהויקים | Jehoiakim |
|||
|
|||
<colbgcolor=#0038B8,#467EFF><colcolor=#fff> 이름 |
엘리야킴공동번역, 엘야킴가톨릭, 엘리아김개신교 여호야킴공동번역, 가톨릭, 여호야김개신교 |
||
출생 | 기원전 634년경 | ||
예루살렘 | |||
사망 | 기원전 598년경 | ||
예루살렘 | |||
재위 기간 | 제18대 남유다 왕국 국왕 | ||
기원전 609년 ~ 기원전 598년 (약 11년)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0038B8,#467EFF><colcolor=#fff> 지파 | 유다 지파 | |
전임자 | 여호아하스 | ||
후임자 | 여호야긴 | ||
부모 | 요시야 | ||
자녀 | 여호야긴 | }}}}}}}}} |
[clearfix]
1. 개요
유다의 제18대 왕. 본명은 엘리야킴으로, 요시야의 둘째 아들이었다. 그의 아버지 요시야를 죽이고 유다 왕국을 다시 정복한 이집트 파라오 네코 2세에 의해 여호야킴이란 왕명으로 책봉되었다.[2] 요시야의 첫째 아들은 요하난인데 어린 나이에 죽었는지 이름만 언급될 뿐 기록이 없다.
2. 행적
동생 여호아하즈가 네코 2세에게 폐위된 후 이집트의 꼭둑각시로 왕위에 책봉되어 11년 동안 유다를 다스렸는데, 여러 악행을 일삼았다. 선지자 우리야를 살해하고, 내관이 선지자 예레미야가 작성한 문서를 읽어주자 읽는 족족 칼로 두루마리를 잘라 모두 화로에 넣어 태워 버렸다. 이러한 행적으로 예레미야에게 죽은 당나귀처럼 버려질 것이라는 지독한 예언까지 들었다. 또 이집트에게 줄 조공을 준답시고 백성들의 세금을 많이 올렸다. 결국 여호아김은 이집트를 배반하고 3년 간 네부카드네자르 2세를 섬기다 또 이집트의 원조를 기대하고 네부카드네자르를 배반했다가 그의 침략으로 수갑에 묶인 채 바빌론으로 끌려간 후 결국 끔찍하게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3]3. 여담
- 이렇게 비참한 왕인데도 천주교 권에서는 이름으로 많이 쓰인다. 이는 성모 마리아의 아버지의 이름이 여호야킴이라는 전승이 있기 때문이며, 영어권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으나 독일어권 요아힘(Joachim), 이탈리아어 조아키노(Gioacchino), 스페인어권 호아킨(Joaquin) 이란 이름으로 쓰이고 특히 호아킨은 스페인어권에서는 꽤 자주 볼 수 있는 이름이다.
[1]
흔히
성경에서
북이스라엘 왕들을 소개할 땐 보통 그의 아버지를 대면서 ◯◯◯의 아들 ◯◯◯이 왕위에 올랐다. 라고 하지만 남유다 왕들을 소개할 땐 ◯◯◯의 어머니는 @@@ 출신 ◯◯◯이다. 라고 서술한다. 왕의 어머니가 유다 출신이면 대체로 왕들이 신앙을 가지지만, 이방 출신의 어머니의 아들일 경우 대체로 왕이 삐뚤어지는 케이스가 많다.
[2]
마치 동아시아의 임금들처럼, 구약의 왕정에서는 본명과 왕명이 구분되었고, 대체로 왕명 쪽이 더 유명했다. 가령 다윗의 후계자는 여디드야(2사무 12,25)라는 본명으로 태어났으나
솔로몬이라는 왕명으로 즉위했다. '여호야킴'의 경우 비록 파라오에게 책봉된 것이지만 왕명 자체는 매우 유다이즘에 부합하므로, 실제론 유다 왕국측에서 내세운 왕명을 파라오가 형식적으로 수락하는 형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골리앗을 죽인 용사가 다윗이냐 엘하난(2사무 21,19)이냐의 문제 역시도 학자들은 본명과 왕명의 차이로 설명하기도 한다. 곧 '엘하난'(본명)과 '다윗'(왕명)이 동일인물이라는 점이 잊혀지면서, 마치 두 명의 용사가 골리앗을 죽인 것처럼 성경에 기록되었단 것이다. [3] 그의 시체는 예루살렘 성 밖에 버려졌다고 한다.
또한 골리앗을 죽인 용사가 다윗이냐 엘하난(2사무 21,19)이냐의 문제 역시도 학자들은 본명과 왕명의 차이로 설명하기도 한다. 곧 '엘하난'(본명)과 '다윗'(왕명)이 동일인물이라는 점이 잊혀지면서, 마치 두 명의 용사가 골리앗을 죽인 것처럼 성경에 기록되었단 것이다. [3] 그의 시체는 예루살렘 성 밖에 버려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