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000000> 러시아의 공주 소피야 알렉세예브나 로마노바 Софья Алексеевна из Росси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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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소피야 알렉세예브나 로마노바 (Со́фья Алексе́евна Рома́нова) |
출생 | 1657년 9월 27일 |
루스 차르국 모스크바 | |
사망 | 1704년 7월 14일 (향년 46세) |
루스 차르국 노보데비치 수녀원 | |
아버지 |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 |
어머니 | 마리야 일리니츠나 밀로슬랍스카야 |
형제 | 드미트리, 예브도키야, 마르파, 알렉세이, 예카테리나, 마리야, 표도르 3세, 표도시아, 시메온, 이반 5세, 표트르 1세, 나탈리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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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러시아 제국 로마노프 왕조의 황녀이자 섭정으로 황제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의 셋째 딸이다. 표도르 3세, 이반 5세의 친누나이면서 표트르 1세의 이복누나이다.2. 생애
아버지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가 승하하고 장남 표도르 3세가 차르에 올랐지만 자식을 남기지 못 하고 죽자, 미워하던 이복동생 표트르 1세가 차르에 오르는 것을 반대해 스트렐치들을 동원해 반란을 일으켰다. 이는 이반 5세와 표트르 1세가 공동차르에 오르면서 소피야가 섭정을 맡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섭정이 되어 국정을 돌보다 나선정벌이 일어나 1687년 봄에 청나라에서 병력 7천을 파견해 알바진을 공격할 때 사신을 베이징에 파견해 협상을 제안했는데, 강희제가 수락하면서 네르친스크 조약이 맺어져 공격은 9월은 중지되었다. 1689년에는 오스만 제국과 청나라에 패한 것을 구실로 봉기한 표트르 1세에 의해 모반죄로 체포되어 노보데비치 수도원에 갇혔고, 1698년에 소피야를 복권시키려는 반란이 있었지만 진압되고 소피야는 계속 수녀원에서 살게 되었다. 이후로 소피야를 더욱 엄격히 감시하여 사실상 감옥 생활을 하게 되었다. 수녀들조차 부활절 예배를 제외하고는 소피야를 볼 수 없을 정도였다. 6년이 지나 1704년에 사망했다.
러시아의 大화가 일리야 레핀이 1879년에 그린 '노보데비치 수도원에 유폐된 소피야 공주'. 소피야 공주는 권력을 잃고 몰락한 사람답게 매우 심란한 표정을 하고 있고 창 밖에는 소피야를 복위시키려는 목적으로 반란을 일으켰다가 교수형을 당한 스트렐치들의 시신이 보인다.
3. 대중매체
여담으로 대체역사소설 명군이 되어보세! 3부에서 주인공이 소피야 섭정을 만나는데, 현대에서 위 그림으로만 형성된 이미지(...)를 갖고 있다가 실제 외모를 보고 "생각보다 훨씬 다른데?"라고 여기는 씬이 지나간다.3.1. 녹정기의 소피야
한국 서브컬쳐계에서는 녹정기에서의 조연으로 인상이 남아 있는 듯하다. 물론 역덕들에게는 표트르 대제에게 패하여 유폐된 이복누나 정도로 기억되는 듯.위소보와 잠시 바람을 피운 나찰국( = 러시아 제국)의 황녀로 남자를 좋아하고 좀 머리 빈 공주님으로 등장한다. 위의 스트렐차를 동원해 반란을 일으켜서 표트르 1세와 이반 5세가 공동차르가 되고 소피야가 섭정이 되기까지 부분이 녹정기에 나온다. 여기서도 대담함과 잔인함을 함께 갖춘 여걸로 나오며, 위소보에게 있어 건녕공주 다음 가는 변태적인 여자로 인식되고 있다. 첫 등장부터 심심해서 경비병과 간통하고 있다가 위소보와 만나게 되며, 위소보와 함께 지하실에 숨게 되지만 어둠 속에서 위소보와 키스하고 그를 애무하는 등 여러모로 음란한 성품의 소유자. 위소보가 그녀와 처음 만나는 것도 소피야가 별장에서 성관계를 하다가 들켜서 비밀통로로 도망쳤다가 위소보에게 성추행 당하는 상황이었다. 위소보에게 성추행 당하고도 되려 "히히, 어린애가 날 만지려하네!"라며 즐거워했다.
이후 막사과(모스크바)로 가는 길 내내 위소보와 육체관계를 맺게 되고 그를 남자 황후로 삼아서 곁에 두겠다고 하는 바람에 위소보가 기겁한다. 이래 봬도 작중 위소보가 관계를 맺은 2번째 여자.[1] 정치적으론 머리가 비었지만 언어적으론 나쁘지 않은지 위소보로부터 어느 정도의 중국말을 배우게 된다. 유폐된 후 위소보의 조언을 통해 스트렐치들의 난을 선동하여 정권을 뒤엎고 처음에는 차리나(여자 차르)가 되려 했지만, 법률상 불가능하다는 말에 위소보가 도르곤의 예시를 들어 섭정의 지위에 오르라고 조언하자 섭정이 된다. 이후 여러 남자 애인들을 거느리게 되며 위소보와 마지막으로 작별의 관계를 맺은 후 청나라로 돌려보낸다. 위소보가 소피야를 꼬신 덕분에 오삼계의 반청 음모에서 러시아 제국이 이탈한다. 나중에 건녕공주가 위소보가 소피야와 간통한 걸 어떻게 알았는지 그걸 추궁하면서 위소보를 구타한다.
나중에 네르친스크 조약 체결 파트에서 다시 등장하는데, 위소보를 잊지 못해서 위소보를 모스크바로 초대하지만, 위소보가 러시아인의 아첨에는 넘어가지 않겠다면서 끝내 안가고 대신에 자신을 조각한 석상을 하나 보내준다. 소피야는 어이없어 하지만, 그런데로 그 석상을 아끼다가 나중에 정변으로 쫓겨나면서 그 석상이 부서지고 모스크바에서 석상의 잔해가 만지면 아들을 낳을 수 있는 영물로 남았다나 뭐라나? 여담으로 위소보가 소피야와 밀당을 하면서 하는 말들이 황당무계한데, 선교사를 시켜서 만약 소피야에게 계속 중국의 북방을 침범하면 러시아로 쳐들어가 러시아 남자들을 모두 죽여 앞으로 침상에 중국 남자만 올릴 수 있게 만들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이걸 들은 선교사가 세상에 중국과 러시아 두 나라만 있는게 아닌데 러시아 남자를 다 죽인들 소피야 공주가 중국 남자하고만 동침할 이유가 어딨겠냐고 묘한 부분에서 현실적으로 어이없어하는 것이 압권.
소비야 공주가 등장하는 파트에서 김용 선생의 중화중심주의를 엿볼 수 있는데, 중국의 교활함과 나찰국의 순진함(?)을 대비시키며 은근한 디스를 한다. 위소보의 농담 같은 정치적 조언 하나로 스트렐치의 난이 일어나게 만드는 묘사는 그 한 예.
참고로 작중에서 한자로 음차된 러시아어 대사가 몇 개 있는데, 얼핏 음차된 한자를 보면 괴이하기 짝이 없지만 중국어 발음으로는 나름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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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랍소(赫拉笑; hèlāxiào)
хорошо( 하라쇼). 중국어 발음으로는 '허라샤오' 정도. 위소보가 소피야를 따라 러시아에서 일으킨 혁명이 성공하자 소피야가 연신 "혁랍소! 혁랍소!"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
오랍(烏拉; wūlā)
Ура( 우라)! 중국어 발음으로는 우 라! -
연특(年特; niántè)
нет(니엣). 중국어 발음으로는 니엔터! 정도 되어서 괴리감이 조금 있다. 소피야가 스트렐치들을 선동할 때 스트렐치들이 흥분해서 외친 말인데, 소피야의 연설에 동조하는 내용이었지만 위소보는 이 말 밖에 못 알아들어서 반란이 실패한 줄 알고 쫀다.
3.2. 대항해시대 시리즈
대항해시대 오리진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와 아르한겔스크에서 고용 가능한 S급 항해사로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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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는 건녕공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