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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4 18:31:07

절(불교)

불교 사찰에서 넘어옴
파일:ㅂㄱㅅ.jpg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경주시 불국사
파일:대한불교조계종 상징.svg
절의 지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원이삼점(圓伊三點)[1]

1. 개요2. 설명3. 문화재4. 절의 건조물
4.1. 주의사항 (공통)4.2. 일주문(一柱門)4.3. 당간지주4.4. 천왕문4.5. 해탈문4.6. 누(樓)4.7. 전(殿)4.8. (塔)4.9. 석등4.10. 승탑4.11. 선방4.12. 종각4.13. 요사채4.14. 노전채4.15. 각(閣)
4.15.1. 삼성각4.15.2. 독성각4.15.3. 칠성각4.15.4. 산신각4.15.5. 용왕각4.15.6. 가람각
4.16. 종무소4.17. 염불당4.18. 인법당
5. 그 외
5.1. 입지5.2. 역사성5.3. 기타
6. 유명한 절 및 부속 건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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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절\ [寺\]은 불교 건축물로, 승려가 상주하며 불상을 모시고 불자들이 종교 의식에 참여하기 위해 모이는 곳을 말한다. 사찰(), 사원()이라고도 하며, 드물게 정사()라고 하기도 한다.

2. 설명

절이란 말 자체는 순우리말이며, 그 유래는 확실하지 않지만 신라 최초의 불교 신도였던 모례(毛禮)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학설[2]과 범어 क्षेत्र (kṣetra)를 한역하였다가 줄여 부른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3]이 있다. 한자어로 절을 가리켜 사찰(寺刹), 도량(道)이라고도 한다. 도량은 한자 그대로는 '도장'이라고 읽어야 하는데, 절을 가리킬 때에는 도량이라고 읽는다. 다르게 읽는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원음인 '댱'이 '쟝[장\]'으로 구개음화될 때 오히려 /ㄷ>ㄹ/ 교체를 겪은 듯싶다. 중국 오나라 발음이 들어왔다는 카더라도 있다. 가람이라는 단어도 있는데 이 단어는 범어( 산스크리트어) 상가라마(Sangharama)를 번역한 승가라의 준말로 승려들이 살면서 기도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사찰 건축물들의 배치를 가람배치라고 하며, 사찰의 시대와 성격을 나타내주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보통 탑과 금당의 배치에 따라 가람배치를 구분하는데, 시대별로 따져보면 탑과 금당 중 어느 쪽을 더 중요시하는가 등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대한민국의 절은 산속에 자리잡고 그곳에 은둔하며 불경을 공부하는 수도원의 성향이 짙은데, 이는 역사적인 이유로 도심 사찰이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 숭유억불 정책으로 인해 도심 내부나 평지의 절들은 대다수가 향교로 용도가 변경되거나 폐허가 되었고 살아남은 일부는 산으로 이전했다. 서울만 해도 사대문 안쪽에는 절을 만들 수 없었고 이런 숭유억불 철폐의 상징적 의미를 가진 사찰이 조계사다. 강남의 봉은사처럼 원래 옛날에는 산사였다가 도시가 확장하면서 시가지와 붙어버린 경우도 전국에 몇 있다. 반면 불교가 국교였던 조선 이전 삼국 시대와 남북국, 고려 시대에는 중국이나 일본처럼 수도와 주요 도심 내부에 대규모 국찰이 여러 곳 있었고, 중요한 교통의 요지에는 을 겸하거나 운영하는 사찰이 설치되었다. 이런 사찰들은 맹수나 도적을 막기 위해 요새화하기도 하였다. 당장 옛 수도였던 경주시 부여군에 가 보면 황룡사 사천왕사, 정림사 같은 대규모 절들의 터가 산중턱이 아니라 옛 도시 중심지에서 가까운 평지에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대한민국의 절은 대부분 도심에서 적어도 어느 정도 떨어진 위치에 있는 것이 대부분으로, 이런 산사는 중국이나 일본 등 다른 불교 문화권과 구분되는 특징을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등재되기도 하였다. 유네스코 홈페이지의 설명 물론 절들이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산에 있다는 점은 일반인들이 일상적으로 찾아가기 힘들다는 의미다. 조선왕조가 절을 산으로 몰아낸 것 자체가 직접 불교를 때리지 않고, 신도들이 찾아가기 힘들면 점차 안 가게 될 테니 이렇게 저절로 불교 교세를 축소시키기 위해서였다.

현대에 와서는 생활불교를 주장하는 일부 종단이나 포교당은 도심에 설치하기도 하지만 그 위치가 영 안 좋거나 규모가 개척교회 수준인 경우가 허다하다. 게다가 많은 한국인들에게는 제대로 격식을 갖춘 역사와 근본이 있는 절은 당연히 산에 있다는 고정관념이 박혀있기 때문에 이런 도심 군소 절은 은근히 님비로 기피받기도 한다. 게다가 유명 산사와 같은 기본 가람배치를 갖추지 못한 도심 속 절은 뭔가 허술한 인상도 준다. 그나마 도심포교만 하는 진각종 등은 나은 편. 다만 거꾸로 원래는 산속에 위치한 사찰이었다가 도심이 확대되면서 자연스럽게 도심 안으로 들어오게 된 사찰도 있는데, 봉은사가 그런 경우이다. 봉은사가 위치한 수도산은 원래 조선 시대에는 도성 바깥에 위치한 야산이었고 봉은사도 선정릉 보호를 명받은 능침사찰로써 기능을 유지했던 것이 이후 서울 시역(市域)이 확장되면서 도심에 편입되어 도심 속 사찰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경주의 분황사도 조선 시대 경주읍성 권역 바깥에 있다 뿐이지 경주 시내와 그리 먼 거리도 아니고, 무엇보다 분황사의 부지는 애초부터 서라벌 도심 안이었다.

일반 현대식 건물 형태로도 많이 만드는 교회나 성당 건축에 비해서, 절은 전통 한옥의 형태나, 적어도 한옥 흉내는 내서 만드는 곳이 대부분이다. 아무래도 기독교에 비해 한국에서 존재했던 역사가 길다보니 유명하고 중요한 절들은 보통 신라 원효, 자장, 의상 등까지 거슬러 올라가 1천년이 넘는 기원을 가지고 있고, 현대에 새로 만드는 절이나 기존 절에서 새 건물을 만들 때도 한옥 형태로 만드는 등, 한국인들 사이에서 절 건축에는 한옥이 어울린다는 인식이 보편적으로 자리잡고 있다.

아래에 소개된 절을 구성하는 건축물들을 다 갖추지 못한 작은 절이나 개인/소수의 승려가 개인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지은 작은 절은 암자, 혹은 토굴이라고 부른다. 요즘은 무교의 신당을 암자라 부르기도 해서 현재 도심에 ○○암이라고 씐 건물들 혹은 시설은 대부분 무속인들의 신당이다. ( 만다라 문양이나 빨간색과 흰색 깃발이 있는 암자) 근래의 도심사찰은 포교당, 포교원, 혹은 (도심)선원 등의 말을 쓴다. 원래 불교의 암자는 대부분 근접한 큰 사찰을 본사로 두고, 큰 절에 소속된 말사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공식적인 암자의 다수는 도심사찰인데, 이중에는 대형 빌딩에 입주한 곳도 있다.

말사는 본사에 소속된 절로, 현재 한국 조계종에서는 지역 교구마다 중심 사찰을 정해 본사로 하나씩 두고, 가까운 지역의 다른 절들을 형식상 소속된 말사로 두는 식으로 관리한다. 조계종 소속의 모든 본사들을 총괄하는 곳은 서울 종로에 있는 조계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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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죠지(増上寺/증상사)[4] 도쿄 타워

대부분 산사 위주인 한국과는 정반대 일본에서는 "절 갯수가 편의점 갯수를 압도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도심지대에 굉장히 흔한 편이다. 실제로 '편의점보다 더 많은 종교시설'이라고 말하면 각각 한국에서는 개신교회를, 일본에서는 절을 언급하는 사람이 많다. 물론 이런 팩트만 갖고 한국을 개신교 국가로, 일본을 불교 국가로 단정지을 순 없지만, 이러한 문화적 차이가 시사하는 바는 꽤 크다. 그렇다고 일본에 산사(야마데라)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엔랴쿠지(延暦寺), 곤고부지(金剛峰寺) 등 각 종단의 본산급 사찰들은 대부분 히에이산, 고야산처럼 깊은 산 속에 위치해 있다. 일본 신토에서 지금처럼 신을 모시는 고정된 신사를 짓고 신도들이 찾아가서 참배하는 형태를 갖춤도, 불교에서 절을 짓고 신도들이 참배하는 신앙양태에 영향받은 것이다. 불교 전래 이전에는 신토에서도 그냥 특정지역을 성역으로 지정하고, 특별한 날에 신이 강림하도록 하는 형식이었다.

중국 도교도 불교 영향을 받았다. 물론 불교 전래 이전에도 자체적인 교단 조직/기관을 갖추었지만, 중국에 불교가 전래된 이후 불교의 영향을 받으면서 구조가 비슷해졌다. 한국 무교의 신당도 마찬가지로 영향을 받으면서 불상을 모시거나 절과 비슷하게 꾸미는 경향이 생겼고, 절 내부로 들어가 삼성각 등으로 자리잡기도 했다. 물론 절에 소속되지 않은 신당도 많다. 오히려 현대에 접어들면서 절 주변에 장승이나 솟대를 설치하는 일은 거의 없어졌고, 현재 조계종의 종헌상 승려가 무속인과 결탁해 사찰/신도 운영을 하면 승적박탈이다.

3. 문화재

오늘날 한국에는 산이나 풍광이 좋은 곳에는 수백 년에서 길게는 천 년 이상의 오랜 역사를 가진 절이 있는 경우가 많은 반면 도심지에는 그 정도의 역사를 가진 절이 거의 없다. 물론 서울 조계사 봉은사처럼 도심지에 있는 절도 드물게 있긴 한데 이렇게 도심지에 있거나 접근성이 좋은 곳에 있던 절들은 왕실이 특별히 보호하는 능침사같은 역할을 하는 절이 아닌 이상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거의 다 파괴됐다. 지금은 강남 한복판에 있는 절인 봉은사도 실상은 선정릉의 능침사였기 때문에 존속할 수 있었는데 1960~70년대만 해도 그 주변은 거의 논밭이었던 것이 후에 강남이 개발되면서 완전히 탈바꿈하게 된 사례다.

그래서 현재 한국에 남아있는 절의 대부분은 산 속에 있는 절, 산사로서 존재하는데 깊은 산 속에 있기 때문에 여러 형태의 파괴의 손길에서 벗어날 수 있어 보존됐고 덕분에 현대에 와서 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었다. 대한민국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현황을 보면 현재 기준 14건의 세계문화유산 중 5건( 석굴암 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 경주역사유적지구, 백제역사유적지구,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에 다수의 절이 포함돼있는데 이 절들의 현재 모습이 절터 아니면 산사인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전국 각지에 있는 산들을 보면 설악산이나 지리산 등 누구나 아는 이름난 산은 물론이고 그렇지 않은 일반 산에도 한 두개의 절은 꼭 있을 정도인데 상원사 정도로 아주 깊은 산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면 대부분은 산 어귀나 등산로 입구, 중간쯤에 있어서 일반 신도나 관광객, 등산객들도 많이 찾는다. 접근성이 좋은 절에서는 템플 스테이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에 따라 파생됐던 문제 중 하나가 절, 또는 절의 문화재를 찾는 목적이 아니라 순수하게 등산을 목적으로 국립공원을 찾는 사람들에게 그 절이 국립공원 내에 있다는 이유로 절 주변 등산로를 지나가는 사람에게 통행료(문화재 관람료)를 강제 징수했던 문제이다. 대표적으로 케이블카를 타거나 울산바위에 가는 것인데도 관람료를 내야 했던 설악산 신흥사, 노고단을 가기 위해 지나가는 길( 노고단로)에서 매표소까지 차려놓고 통행료를 받았던 지리산 천은사가 이 문제로 욕을 많이 먹은 대표적인 곳이고 속리산 법주사, 계룡산 동학사 등 각지의 이름난 산과 절에는 비슷한 문제가 거의 다 존재했다.
1962년부터 문화재 관리비용 충당을 목적으로 가야산 해인사에서 처음으로 문화재 관람료를 징수하기 시작했고 그 이후 여러 산들이 국립공원에 지정되면서 국립공원 입장료와 별개로 징수하였으나 개별징수의 불편을 이유로 차츰 통합되어 87년부터 모든 국립공원에서 국립공원 입장료와 문화재 관람료를 통합징수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사찰 측은 통합징수의 법제화를 요구하였으나 각각 관리주체가 되는 법률이 다른 관계로 법제화까지 이루어지지는 못하고 행정지침 수준에서 합의하여 시행되게 되었다.
1990년대 들어서 문화재 관람의사가 없이 등산이 주 목적인 국립공원 탐방객들에게 문화재 관람료를 강제 징수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기 시작하여 다시 분리징수하는 방안이 제시되었으나 사찰 측의 강한 반발로 무산되었으며, 이후 끊임없는 민원과 집단 소송이 제기되었다. 그래서 강제 징수한 문화재 관람료를 부당이익으로 보고 반환소송을 하여 승소한 사례들이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이 논란에서 빠지고 싶었는지 2007년부터 국립공원 입장료를 폐지하였으나 사찰들은 여전히 사찰 입구가 아닌 등산로 입구에서 독자적으로 문화재 관람료 징수를 계속했다.
상식적으로 오래된 문화재의 보존에는 지속적으로 비용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하나 문화재 관리가 징수의 명목이라면 마땅히 그 수입은 문화재청과 같이 문화재를 관리하는 책임기관이 취합하여 적재적소에 배분하는 것이 타당하다. 전국 유명 산의 등산로 요지에 있는 대형 사찰들의 수입은 연간 10억 원을 넘으리라 추정하지만, 정확한 금액이나 사용내역에 대해서 전혀 공개하지 않는다.

게다가 이 입장료 문제에 반감이 심한 다른 이유도 있다. 하다 못해 사찰의 입구에서 징수하는 형태라면 형식상으로나마 사찰 입장료 및 관람료라고 이해할 여지가 있는데, 특히 등산하러 전국에서 많이 찾아가는 명산에는 대놓고 등산객 주머니를 노리겠다는 듯이 그냥 도로만 있는 곳에 매표소를 설치하고 요금을 받는 형태가 있어서 마치 날강도 취급을 받게 된 것.

사찰 측에서는 이에 대해 "원래 사찰의 사유재산이던 산을 국가가 강제로 개방하여 국립공원으로 만들었으니 이건 우리가 받는 정당한 출입료"라는 입장이다. 그 근거로 일반적으로 절의 입구부터가 사찰의 사유재산이고 그 바깥의 산은 국가 소유라는 인식과 다르게 바깥의 산도 사찰의 사유지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 다만 이에 대해서도 '그럼 정부와 협상해서 정부에서 돈을 받고 사유지 개방을 하는 협상을 하면 되지 않느냐'는 의견과, 조선시대때는 사유지로 인정받지 못했던 산을 일제시대때 사유지로 인정받았다는 역사를 지적하며 그 소유권이 정당하게 취득한 것이냐는 반박을 하는 입장이 있다.

2023년 5월 문화재보호법이 개정되면서 국가지정문화재(국보, 보물) 소유자가 관람료를 감면할 경우 정부나 지자체가 비용을 지원해줄 수 있게 돼 현재는 거의 모든 절에서 관람료가 사라져 이런 방식으로 통행료나 관람료를 걷던 문제는 해결됐다. 다만 국가지정문화재가 없는 절에서는 경우에 따라 여전히 관람료를 내야 할 수도 있다.

4. 절의 건조물

4.1. 주의사항 (공통)

4.2. 일주문(一柱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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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부안군 내소사 일주문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 일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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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합천군 해인사 일주문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사 일주문[5]

절이 시작되는 곳으로 재가(세속 세상)과 출가(부처님의 세상)를 구분하는 경계선 정도의 의미를 지닌다.

기둥을 일렬로 한 줄 세워 지붕을 얹은 것을 일주문이라고 하는데, 옆에서 보면 기둥이 하나로 보인다. 앞에서 보면 기둥이 2개(혹은 4개)인데 옆에서 보면 기둥이 하나로 보이게 만든 이유는, 불계와 속세가 만나는 경계에서 양자가 아직 분리되지 않은 미분별과 비분리의 상태를 그대로 반영하기 위해서이다. #

일본에서는 이러한 일주문의 형식을 고려문(高麗門)이라고 부른다. 한반도에서 건너온 양식이라는 것. 일본은 해탈문이 적은데, 고려문이나 일주문의 흔적이 나오기도 하는 모양. 해탈문에는 절의 이름이 쓰여진 현판이 걸린다. 보통 남쪽 가장 외곽에 위치한 경우가 많아서 남문이라고 불리기도 한다.[6]

상징적인 문이라 문 좌우가 담으로 연결되는 경우도 거의 없고[7] 문짝도 원래 없이 항상 열려있는 구조가 대부분이다.

한국의 사찰들은 보통 일주문에 이 절이 어느 산 어느 절인지 이름을 쓴 편액을 걸어놓는다. 보통 가로 1줄[8]로 'ㅇㅇ산 ㅁㅁ사'라는 형식으로 절만이 아니라 절의 진산(鎭山) 격인 산의 이름을 앞에 함께 쓰는 관습이 있다. 절을 지켜주는 산신을 우대하는 의미라고 한다. 불교임에도 민간신앙인 산신을 언급하는 점에서 불교가 민간신앙과 섞여 민중에 녹아들었음을 보여주는 사례. 위 범어사 일주문에도 ' 금정산 범어사(金井山 梵魚寺)'라고 한자로 쓴 편액이 있다.

이 곳에 들어서면 법당을 향해 합장 반배를 한다.

4.3. 당간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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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바깥에 설치되며 행사가 있을 때 당(幢)이라 불리는 깃발을 걸어두는 용도로 쓰이며 신성한 영역에 들어왔음을 알려주는 의미도 있다.

4.4. 천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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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통도사 천왕문 경기도 부천시의 석왕사 천왕문[9]
사천왕을 모신 문. 해탈문에 이은 2번째 문. 이 때문에 중문이라고 불리는 곳도 있다. 문에 들어가면 사천왕 조각상이 왼쪽에 2좌( 서방광목천왕, 북방다문천왕), 오른쪽에 2좌( 동방지국천왕, 남방증장천왕) 있는 구조다. 사천왕은 동서남북 네 하늘을 지키며 불법을 수호하는 역할이므로 보통 우락부락하고 강인한 근육질로 묘사하며 자세도 위압적이다. 크기도 3~6m로 사람에 비해 거대하게 만든다. 마구니, 잡귀를 발로 밟고 있는 경우도 있다.

고대의 절들을 보면 회랑으로 금당 주변을 막아놓기 때문에 반드시 이 중문을 지나야 했다. 한국에서는 사천왕이 있는 천왕문이 웬만한 제대로 된 절에는 거의 반드시 입구에 세워져 있지만, 현 일본이나 고대 한반도에서는 이천왕이나 금강역사 2좌가 있는 금강문을 세운 사례가 일반적이다. 예외적으로 구례의 화엄사, 하동의 쌍계사에는 금강문과 천왕문이 둘 다 있다. 둘 다 있는 경우 먼저 금강문을 지나 오르면 천왕문이 등장한다.

이 곳에서도 법당을 향해 합장반배를 한다.

4.5. 해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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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통도사 불이문 강원도 고성군의 건봉사 불이문
해탈문(解脫門) 혹은 불이문(不二門)은 절의 3문 구조 중 마지막 문이다. 불이(不二)는 말 그대로 둘이 아닌 오직 하나의 진리, 즉 해탈을 의미하기에 해탈문이나 불이문이나 같은 뜻이다. 본래는 경사진 곳에 문을 만들어 들어갈 때는 서서 들어가고, 나올 때에는 몸을 숙이면서 나오는 구조인데, 부처님께 숙이면서 들어오라는 의미와 어두운 곳을 지나고 밝은 빛을 본다는 뜻을 지닌다.

4.6. 누(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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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사 범종루 전라남도 구례군 화엄사 보제루
3개의 문을 통과하면 이전 문들보다 규모가 큰 건물이 나온다. 1층은 나무기둥만 있고 실제 공간은 2층인 건물이며, 방문객은 나무기둥만 있는 1층을 걸어서 통과하게 해 놓은 곳이 많다.[10] 여길 통과하면 본격적으로 절의 건물들이 모여있는 마당이 시작된다. 건물 이름은 범어사 보제루나 부석사 범종루처럼 'xx루' 형식이다. 절이 아닌 촉석루 같은 누각은 경치 감상용이라 문이 없지만 절에 있는 누는 모임을 가지는 공간이라 문을 달아놓는다.

범종은 이 누 옆에 종루 혹은 종각을 두고 거기 달아놓는 게 기본이다.

4.7. 전(殿)

부처님의 상이나 보살의 상을 모셔 놓은 건물을 전이라 하고, 그 외에 보살보다 아래의 존재를 모시는 각종 건물들은 각이라 한다. 불상을 모셔놓은 전이 그 절에서 가장 크고 중앙에 위치해 있다. 금당이라고도 한다.

절에서 주불로 어떤 부처를 모시느냐에 따라 중앙이 되는 전의 이름이 다르다. 석가모니를 모신다면 대웅전, 아미타불(무량수불)을 모신다면 극락전 극락보전 아미타전 무량수전ㆍ안양전(安養展, 안양은 극락의 다른 표현), 약사여래를 모신다면 약사전, 대일여래(비로자나불)를 모신다면 대적광전ㆍ대광명전ㆍ비로전이라고 부른다. 특이한 사례로는 건물에 석가모니의 일생을 담은 팔상도를 그려 팔상전이라고 하는 것이 있다.

그 외에도 관세음보살을 모신 관음전ㆍ원통전, 지장보살과 명부시왕, 지옥의 현왕[11]을 모신 지장면ㆍ명부전, 아라한을 모신 나한전, 절을 처음 세운 스님을 모신 조사전 등이 있다.

여기서 절의 규모나 성격에 따라 일부 전각이 있는 곳도 없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 절의 중심격인 대웅전이나, 윤회 교리의 핵심인 사후세계를 다루는 명부전은 거의 반드시 존재하는 편이다.

전이 없고 불상을 모시지 않은 절도 있는데,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 그렇다. 불상은 부처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인데 적멸보궁은 그 부처에게서 나온 사리가 있는 곳이므로 불상을 굳이 두지 않는 것이다. 경상남도 양산시에 있는 통도사가 바로 이런 사례이다. 그러나 이런 원칙을 지키지 않고 진신사리를 모셨다고 하면서도 불상을 두는 사찰들도 현대에 생겼다. 진신사리를 불상 내부에 복장 형식으로 보관하는 경우도 있다.

4.7.1.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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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절의 핵심인 건물. 다만 적멸보궁에서는 얘기가 좀 다르다. 자세한 정보는 항목 참조.

4.8. (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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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 경전 등을 보관해놓는 장소로 사용된다. 특히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셔놓은 곳들은 특히 적멸보궁이라고 부른다. 대한민국에는 5곳이 있다. 목탑, 석탑, 전탑들이 있으며, 한국의 절에서는 삼국시대까지만 해도 탑의 비중이 상당히 컸고, 고려 시대까지는 목탑이 많았으나 고려 후기부터는 목탑이 거의 사라지고 석탑만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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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전성기 신라 석탑 양식을 보여주는 불국사 석가탑의 모습. 균형과 비례가 매우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자세한 사항은 문서 참조.

4.9. 석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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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의미로, 또한 기능적 의미로 설치되며 보통 탑과 같이 불전 앞에 배치된다.

4.10. 승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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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를 상징하는 위 불탑과 달리 승려 화장[12] 사리를 안치하는 탑.

이것도 절에 있는 탑이지만 위 문단에서 설명한, 석가탑 같이 부처를 상징하는 과는 좀 다르게 생겼는데, 탑은 사각형이고 승탑은 팔각형(신라, 고려 양식)이나 종 모양(조선 전후 양식)이다. 옆에는 승려의 행적을 기록하는 비석을 거북이 조각(귀부) 위에 세운다.[13]

승탑 문서 참조.

4.11. 선방

승려들이 참선하는 곳. 선불교( 선종)가 발달한 지역(특히 한국과 일본 등)에서는 매우 중요한 곳이다. 이곳은 일반적으로 절의 관계자 외는 출입금지/사진촬영 금지이므로, 절에 갔을 때 함부로 들어가 실례를 끼치지 말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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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 선방에서 참선하는 스님들. # 선방의 특성상 평소에는 십중팔구 일반인 출입금지인지라 개인이 찍은 사진은 찾기 힘들며, 대부분 이렇게 특별한 경우에 한해 언론사에서 찍은 사진이 많다.

4.12. 종각

절에는 범종, 목어, 운판, 법고의 4가지 악기가 있는데 범종은 지옥의 중생들에게, 목어는 물짐승들에게, 운판은 날짐승들에게, 법고는 들짐승들에게 부처의 진리를 일깨우기 위해 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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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유일의 십(十)자형 완주 송광사 종루. @

4.13. 요사채

(寮舍-)
절의 살림살이를 총괄하는 곳. 신도와 거사/보살, 행자, 사미 등이 음식을 준비하는 부엌[14], 승려들의 숙소[15], 절의 창고 등을 한데 묶어서 부르는 말이다.

건물의 특성상 다른 사찰 건물과는 달리 화려함이나 엄숙함을 강조하는 종교건물 분위기보다, 사람들이 사는 가정집 모습. 그래서 다른 사찰건물과 비교해 다소 이질적인 느낌이 나며, 근래에는 그냥 양옥을 짓기도 한다.

일본 사찰은 비가 많이 오는 기후인 데다 대처승이 일반적이라, 절에서 살림을 차리고 살면서 편의를 위해 부처를 모신 법당과 요사채가 별개의 건물이 아니라 복도로 이어진 곳이 많다. 한국의 일본식 사찰 동국사에서 이런 구조를 볼 수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소규모 암자나 포교당이 아니면 별개의 건물로 떼어놓음이 일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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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룡사 요사채. #

4.14. 노전채

각종 공양행사의 진행과 기도를 맡는 노전스님(부전스님)이 머무르는 시설.

4.15. 각(閣)

불교 교리와 별개였던 토속신앙의 신을 모시는 곳을 각이라고 부른다.

절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불교이므로 불교 교리와 관련된 대웅전 등등 '전'들이 절 가운데 좋은 자리에 있지만, '각'들은 위치도 전보다 좀 구석이고 규모도 작은 편이다. 불교의 타 신앙 포용 차원에서 받아들여졌지만 어쨌든 불교적 세계관에서 보살보다 아래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종류가 다양해 이를 헷갈리는 사람이 흔하다. 이름에서부터 '전'보다 격이 낮은 '각'을 붙이는 데서 불교와 거리가 있음을 알 수 있는 건물.

보통 이런 토속신앙의 전각들은 대웅전의 뒤편 위쪽이나(일반적인 위치) 대웅전에서 조금 거리를 두고 위치하나, 절에 따라서는 종종 대웅전과 맞먹거나 더 좋은 자리에 있을 때도 있다. 전통적인 동양 건축의 위계질서에서는 안쪽이나 더 높은 곳에 있을수록 상위 대접을 받는 건축물이다.[16] 도심에 있는 포교당처럼 작은 시설에도 토속신령을 모시는 건물이 따로 없을 때가 있는데, 이런 곳에서는 대웅전 안에 신중단과는 별개로 토속신을 모시는 단을 차리곤 한다. 진각종 같은 밀교계 종단의 사찰을 비롯한 일부 종단에서는 따로 안 모시기도 한다.

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기도하러 오는 무당들이나 시주를 많이 하는 노보살/노처사들이다 보니, 현대 절들은 다른 전각들에 비해 작던 기존의 건물을 크게 재건축하거나 처음에 절을 지을 때부터 상당히 크게 짓고, '각'이 아닌 '전'을 붙여 칠성전, 삼성전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다만 오래된 전통사찰에도 칠성전이라는 표현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딱히 틀린 건물 이름은 아닌 듯하다. 참조글:(전략)박효열의 연구에 따르면, 전각명이 칠성전으로 등장하는 가장 앞선 시기의 자료가 유기(1707~1785)의 <호은집> 권2에 나오는 "철성전 상량문"(<한국불교전서> 제9책, 조선시대편 3, P.719)이라 하며, 그러다가 구한말 보정(1861~1930)의 <다송문고>(<한국불교전서> 제12책, 보유편 2, P.756)에서는 칠성전에서 격이 떨어진 칠성각으로 등장한다면서 칠성각이라는 호칭은 거의 20세기에 이르러서야 사용된 것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후략) 출처: 김일권 저, <우리 역사의 하늘과 별자리>P.186

4.15.1. 삼성각

아래 설명할 독성각, 칠성각, 산신각 셋을 하나로 묶은 개념이다. 독성(나반존자), 칠성신, 산신령의 3위를 같이 모신 전각이다. 종종 산신령 대신 용왕이 들어가기도 한다. 물론 삼성각이 있는 절이라면 앞의 셋은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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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 갑사 삼성각. @

4.15.2. 독성각

천태각이라고도 부르며, 독성(나반존자)만 모신 전각이다. 독성은 홀로 수행하는 성인이란 뜻이다. 나반존자는 석가여래와는 별개로 홀로 득도한 성인이라 하는데, 문제는 불경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 심지어 중국이나 일본에도 없다.

일설에 따르면 단군이라고도 하는데 최남선이 처음 주장했다. 중국 천태산에서 도를 닦은 사람이라고도 하고, 말법시대에 미륵이 오기 전까지 강한 신통력으로 중생을 돌본다는 전승에 기초해 불경의 인물 중 가장 비슷한 빈두로존자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반존자 신앙의 시작은 현재 연구된 바로서는 1693년이 처음이고, 대중화된 것은 1800년대부터이다. 존재야 어쨌건 한국에서 두드러진 신앙인 건 사실이다.

나반존자를 비롯한 나한들은 성인임에도 성격이 매우 무섭고 엄격해, 예불 시 재물은 물론이고, 기도할 때도 신도의 자세가 불성실하면 여러 가지로 안 좋다고 한다. 다른 학설에는 '토속신앙의 천신이 불교화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4.15.3. 칠성각

칠성당, 북극보전이라고도 한다. 북극성 북두칠성에 해당하는 칠성신만 모신 전각이다. 절에 따라 칠성탱에 칠성신앙을 불교화한 칠성여래( 치성광여래)를 중심으로 모시기도 한다. 이 경우 중심적인 부처는 칠성신이 아니라 북두칠성 신앙과 관련이 있는 북극성을 상징하는 치성광여래다. 칠성신은 치성광여래 근처에서 옛날 관복 차림을 한 신령이나 부처 7위이다. 자세한 것은 북두칠성 항목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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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강남구 봉은사 북극보전. @

4.15.4. 산신각

산신령( 호랑이)을 모신 곳.[17] 산령각, 산왕각이라고도 하며, 산신령만 모신 전각이다. 다만 종종 산신각이면서 산신령 외에 독성이나 칠성도 같이 모시는 곳도 있는데, 이런 데서는 3위를 한 데 모시지 않고 독성이나 칠성신 중 1위만 산신령과 같이 모셔놓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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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사 산왕각. @ 현대에는 상당히 드문 여 산신령을 모셔고 있다.

4.15.5. 용왕각

용왕당, 용왕단이라고도 한다. 용왕을 모신 건물로, 내륙지방의 절보다는 해안지역의 사찰에서 종종 볼 수 있다. 내륙지방에서는 절 근처에 영험하다고 알려지거나 유명한 샘이나 우물, 강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용왕은 불교의 호법신 성격이 강하다보니 용왕각보다는 관음전만 짓거나 관음전 안에 용왕을 합사한 곳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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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월암 용왕단. @

4.15.6. 가람각

국사당, 국사단, 우호당이라고도 하며 절을 지키는 것을 전담하는 신인 가람신을 모신 건물이다. 가람신의 성격상 기존 토속신앙의 신이라 하기도 힘든지라 일반적으로 신도들의 발길도 상대적으로 적고, 절을 지키는 일이란 게 신중이나 산신과 겹치다 보니 가람각까지 갖춘 절은 오래되고 규모가 큰 절이라도 상당히 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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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가람각. #. 일본 칠복신 중 하나인 대흑천이라는 설이 있다. @

4.16. 종무소

사찰의 행정과 관리, 안내를 담당하는 곳으로, 전통적인 시설은 아니다. 보살이나 거사들이 있으면서 기도/불사 접수, 템플스테이 안내 등을 맡는 사무실이 바로 종무소다. 위에서 말한 요사채와 같은 건물에 있기도 한다.

4.17. 염불당

염불수행을 집중적으로 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건물. 근대까지도 만일회 등의 염불결사가 융성하여 여러 사찰에 흔하게 지어졌으나, 근현대 선종이 중심이 되면서 많이 줄어들었다가, 2000년대에 들어 신도들을 중심으로 염불이 점차 중시되는 풍조가 퍼지면서 다시 조금씩 주목받고 있다.

흥국사 대방은 염불당에 요사채 기능을 합쳐 염불수행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어져 있다. 대방과 염불당은 보통 동일시되나, 다르게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4.18. 인법당

한자로는 因法堂 혹은 人法堂이라고 쓴다. 큰 법당을 별도로 갖출 수 없는 사찰에서 한 건물 안에 요사채와 법당이 같이 있거나, 승려의 거처 한쪽을 법당으로 쓰는 작은 절을 말한다. 일본 불교에서는 동국사에서 볼 수 있듯이 법당과 요사채가 이어진 곳이 상당히 흔하지만, 한국 불교는 암자가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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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쌍계사의 말사인 국사암의 인법당.

첨탑을 가진 절도 있는 모양이다. 동대문구 이문동에 있는 암자로, 교회가 망해서 절로 바꿨다는 카더라 통신이 있다(…) 현재는 아쉽게도 첨탑이 철거되었다.

5. 그 외

5.1. 입지

풍수지리학에 따르면 한국의 옛 절들은 거의 명당 자리에 세웠다고 하는데 믿거나 말거나. 다만 절 터는 무덤 자리에 좋은 음택명당이나 일반인이 살기 좋은 양택명당이 아니라 수행자들에게 좋은 명당이라, 일반인이 살거나 무덤을 만들기에는 지나치게 기가 세서 오히려 해를 입는다고 한다. 그러니 괜히 조상 잘 모시고 싶다고 절에 불지르지 말고, 영 탐나면 절의 스님들과 상의해 위패나 잘 모시자.

풍수가들에 따르면 조선조에 종종 절을 불사르고 그 자리에 바로 무덤을 쓴 사례 치고 후대에 재액으로 집안이 망해, 결과적으로 버려진 무덤이 안 된 곳이 없다고 한다. 이건 권선징악 수준의 카더라 통신이지만, 이런 성격의 소유자치고 안 망하는 게 이상할지도 모른다. 조선조 폐사된 연기사 터는 무덤을 쓴 사람( (전라감사라고 한다)이 관군을 동원해 사찰에 살던 승려 수백 명을 삶아 죽이고 절자리를 차지했다는 전승도 있다. 현재 그 무덤은 대가 끊어졌는지 돌보는 이가 없어, 완전히 퇴락하여 수풀이 우거졌다. 인과응보라면 인과응보일까. 연기사에 있던 사천왕상은 현재 영광 불갑사에 있는데, 대한민국에 현존하는 사천왕상 중 손에 꼽을 정도로 예술적인 사천왕상으로 꼽힌다. 절 입구를 지키는 사천왕상이 저 정도인데 사찰은 얼마나 아름다웠을지를 생각하면, 한국 종교사/미술사/건축사적으로 연기사가 폐사되었음은 엄청난 손실이다.

절에 불지르고 무덤 쓴 가장 유명한 인물이 흥선대원군이라는 야사가 있다. 풍수가들의 말에 따르면, 절 자체를 태운 것은 아니고 절이 기운이 흐르는 곳에 위치해 기운을 막아서 불태웠다고도 한다. 지나가던 스님이 있었는데 일설에는 이때 백운학이라는 승려 겸 관상가가 흥선대원군이 고종을 세우는 데 관련된 예언을 했다고 한다. 참고로 백운학은 관상을 잘보기 위해 스승 일허선사의 조언에 따라 한쪽 눈을 희생했다고 전해진다. 이 지나가던 스님이 흥선군에게 '당신 밑으로 10대가 잘먹고 잘사는 명당을 줄까, 아니면 당신이 임금의 아버지가 되고 3대 만에 망하는 명당을 줄까?' 라고 했더니 야심찬 남자인 흥선군은 후자를 선택했다는 것. 결국 흥선군은 현재의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가야산에 있던 가야사를 찾아가 두둑하게 시주하고, 시주에 흡족한 스님들이 외출한 틈을 타서 가야사를 홀라당 불태운 후에 자신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소를 썼다. 결국 자신의 아들은 고종황제가 되었지만 조선왕조의 운명은… 참고로 남연군의 이 야심찬 묘는 후에 오페르트 도굴 사건의 화를 입기도 했다.

5.2. 역사성

좀 오래된 절들의 창건 이야기를 들어보면 삼국시대나 남북국시대의 유명한 승려가 처음 창건했다는 이야기가 많다. 그 중에서도 원효, 의상, 자장율사, 도선이 많다. 하지만 다른 사료와 교차 검증이 가능한 소수를 제외하면 대부분 허구에 가깝다. 일단 원효대사 등이 아무리 열심히 절을 창건했다고 쳐도 이런 이야기가 전하는 절이 전국에 많아도 너무 많다는 점에서 대부분은 자칭일 수밖에 없다. 유명 승려들의 이름을 빌려서 절의 위상을 높이려는 것. 물 건너 일본도 비슷한지 역사가 좀 된 고찰에는 십중팔구 불교를 크게 발전시킨 쇼토쿠 태자가 처음 창건했다는 설화가 붙어 다닌다.

한반도에 불교가 전래된 역사가 오래된지라 사찰 이름을 딴 지명이나 역명도 제법 많다. 도시철도 광역철도 봉은사역, 망월사역, 범어사역, 학동증심사입구역 등을 비롯해 일반 철도의 개태사역, 다솔사역( 경전선 복선화 공사 완료에 의해 2016년에 폐역), 백양사역, 불국사역( 동해선 복선전철화 공사 완료에 의해 2021년에 폐역) , 성주사역, 직지사역, 흥국사역, 희방사역( 죽령터널 이설공사 완료로 폐역), 울산(통도사)역 등이 그러하다. 지금의 북한 강원도 고산군 석왕사역이 있는데 여긴 원래 이름이 석왕사역이었으나 북한 정권 치하에서 광명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다만 이 중 다솔사역과 희방사역, 불국사역은 폐역되었고 개태사역과 성주사역, 직지사역, 흥국사역 등은 여객 취급을 하지 않아 일반인이 접근하기 힘들다. 자세한 내용은 역 관련 정보/종교·추도시설명이 들어간 역 참조.

북한으로 넘어가 버렸지만 석왕사는 사찰 이름을 딴 면(행정구역)도 있었다. ( 함남 안변군 석왕사면) 하지만 사찰이름에서 따온 행정구역은 여럿 있고 한국쪽에도 있다. 대표적으로 진관사에서 유래된 진관동, 불국사에서 유래된 불국동, 부석사에서 유래된 부석면 등이 있다. 또한 얀양시, 불광동 등도 사찰명 유래로 전해지고 있다.

조선시대 초기까지만 해도 가내수공업의 형식으로 사찰별로 다양한 특산품들이 있었으나 사대부들이 특하면 사찰로 쳐들어가 깽판은 기본에 특산품을 요구하며 박해하는 데다 불도 질러대서 현대에는 이런 식으로 어느 절이 어느 특산품이 유명하다거나 하는 개념은 맥이 많이 끊어졌다. 하지만 지금도 사찰 전통식품류나 차, 절 전통 발효식품 등은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으며, 대구광역시에선 고려~조선시기 스님들이 각 절의 특산품을 물물교환하던 승시(僧市)를 복원해 행사화한 팔공산 승시축제를 열고 있다.

5.3. 기타

어지간한 규모의 절이라면 진입문에서 일주문까지의 거리가 상당하며, 대체로 경관이 좋은 숲길, 공원, 주차장 등으로 조성되어 있기 때문에 관광지로도 인기가 있다. 신흥사 설악산소공원, 양평군 용문산관광지, 통도사 무풍한송길 등. 진입문이 저택의 대문이라면 일주문은 현관문격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일본의 사찰도 대체로 동일하다. 명성있는 절들은 외진 위치에도 불구하고 방문객이 많기 때문에 식당이나 특산품 가게 등이 다수 영업하고 있다.

사찰이 무너지기를 기도하는 사람들도 있다. 행사 동영상 하여튼 민폐 다른 종교를 까내리지 않으면 자신의 신앙심을 증명하지 못하는 자는 다른 사람을 까내리지 않고는 자신의 우월성을 증명하지 못하는 하찮은 이와 다를 바가 없다. 종교가 당신을 빛나게 하는 게 아니라 당신의 행위가 종교를 빛나게 함을 잊지 말자.

21세기 들어서는 음력 법회를 없앤 절도 생겼다. 이 경우 일반적으로 다른 종교처럼 일요일에 법회를 진행한다.

승려들이 모여서 결투도 하기도 한다.

6. 유명한 절 및 부속 건축물

6.1.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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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중국

파일:백마사 중국 2.jpg

6.3. 티베트

6.4. 일본

6.5. 대만

6.6. 몽골

6.7. 네팔

6.8. 싱가포르

6.9. 부탄

6.10. 인도

6.11. 스리랑카

6.12. 인도네시아

6.13. 말레이시아

6.14. 베트남

6.15. 태국

6.16. 미얀마

6.17. 라오스

6.18. 캄보디아

6.19.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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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운데에 있는 3개의 원을 이(伊)라고 하는데, 범어 표기에 쓰이는 실담 문자에서 모음 i를 나타내는 글자 𑗘(U+115D8)이다(사실 실담 문자의 i 모음자는 𑖂(U+11582)이며, 𑗘(U+115D8)는 일종의 이체자이다). 가로와 세로 어느 것에도 묶이지 않는 묘한 삼각형 형태를 이룬다.
이 3가지 원의 상징은 해석이 너무 많아 정답이 없다. 공·성·상(空性相)의 세 교리가 붙지도 떨어지지도 않는 것을 나타냈다고 보기도 하고, 불교의 삼보(불佛, 법法, 승僧)을 나타낸다고 보기도 한다. 개중에는 천지인이라고 해서 땅, 불, 물을 상징하는 색으로 칠하기도 한다. 아무튼 불교에서는 사물을 이분법으로 나누지 않고 3가지로 나눠 생각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2] 모(毛)를 고대 신라어의 관례대로 뜻인 로 읽어 털례→털→절로 바뀌었다는 것. 모례에 대해서는 묵호자 문서 참조. [3] 한역 剎多羅 → 剎 → 뎔 → 절. 나무위키에서는 한국어의 외래어/산스크리트어 문서를 통해 이 설을 명문화하였다. [4] 도쿄도 미나토구에 있다. 1590년부터 도쿠가와 가문의 보리사(菩提寺)로 지정된 사찰이며 에도 막부의 쇼군 15명 중 6명이 이곳에 묻혔다. 전 일본 총리 아베 신조의 장례도 이곳에서 치러졌다. [5] 202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6] 고대 한반도 사찰의 초입구 역시 일주문이 아닌 남문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고대 한반도 사찰의 가람 대다수는 남문도 중문처럼 측면 2칸 짜리의 일반적인 대문 양식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 한반도 사찰의 남문이 언제부터 서서히 일주문으로 변하여 갔는지는 여전히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7] 위의 송광사 일주문이나 선암사 일주문처럼 담이 연결된 예외도 있다. [8] 간혹 아래의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사 일주문과 같이 세로로 쓴 경우도 있다.
파일:전남-순천시_송광사_조계문-(1)-full-size.jpg
[9] 훈남 사천왕으로 유명한 천왕문이며, 천왕문과 범종루가 합쳐진 형태이다. # [10] 경사진 산에 지어진 산사라면 이 기둥뿐인 1층에 계단을 배치한다. [11] 현왕은 보현왕여래(普現王如來)를 말한다. 보현왕여래는 바로 염라대왕을 모시면 . 염라대왕은 다음 생에 부처가 되는데 이때의 직함이 보현왕여래다. 현왕은 망자를 3일 만에 심판한다고 하며, 현왕 신앙은 조선 후기에 상당히 유행하였다. [12] 승려의 화장은 다비식이라고 한다. [13] 나무위키에 문서가 있는 고승비의 예시로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비가 있다. [14] 부엌용으로 따로 건물을 떼어놓았다면 공양간이라 한다. [15] 숙소로만 따로 떼어놓았다면 승방(僧房)이라 한다. [16] 이 때문에 대웅전은 대부분 절의 가장 안쪽에 있고, 비슷한 위치나 더 뒤, 높은 곳에 있는 건물은 대적광전이나 산신각, 조사전 정도. 그마저도 조사전은 대웅전 근처라면 몰라도 대웅전 뒤쪽으로 가는 일은 절대 없다. 대웅전은 부처님의 전이고 조사전은 절을 세운 스님의 전이라 뒤집힐 수가 없기 때문이다. [17] 거의 모든 산신각의 산신탱화에는 호랑이 관련 묘사가 들어간다. 한국의 산신 신앙은 전국 어느 산에나 있던 한국 호랑이가 모티브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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