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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1 21:08:23

변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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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국가과학원장
변영립
邊英立 | Pyon Yong Rip
파일:변영립.jpg
<colbgcolor=#004488><colcolor=#FFF> 출생 1929년 9월 20일
황해도 재령군
사망 2016년 11월 14일 (향년 87세)
학력 김일성종합대학 (학사)
최종 당적


1. 개요2. 생애3.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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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한의 정치인. 과학, 교육 테크노크라트.

2. 생애

1929년 9월 20일, 황해도 재령군에서 출생했다.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오랫동안 교육부문에서 종사했다.

1986년 12월, 8기 최고인민회의에서 정무원 교육위원장에 선출되었으며 1986년 12월 27일에 개최된 조선로동당 6기 12중전회에서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으로 보선되었다. 1988년 3월, 조선로동당 6기 13중전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승진했다. 1988년 7월, 김영식 문교부장관으로부터 남북 교육당국간 회담을 제의받았으나 변영립은 남한 정부가 남북 학생 교류를 방해하고 있다는 구실로 서한 접수를 거절했다. 1988년 8월에 남북학생회담에 참관하기도 하였다. 1989년 6월, 교육위원회 위원장에서 해임되었으며 1993년 8월, 국가과학원 부원장으로 다시 나타났다. 1994년 김일성 장의위원에 위촉되지 못했기 때문에 이때는 위상이 다소 낮아졌을 가능성이 있다.

1995년 2월, 오진우 장의위원을 지냈는데, 이때 장의위원 서열이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인 김락희와 비슷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통일부에서는 이때 변영립이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으로 강등당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후 북한 보도에서 변영립은 과학원 수학연구소 소장 등을 지내는 것으로 보도되었다. 그러다가 1999년 5월 27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 따라 최기룡의 뒤를 이어 신임 내각 교육상에 임명되었다. 1999년 9월, 리종옥 장의위원을 지냈다.

그렇게 교육상으로 재직하다가 2003년 8월, 1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및 상임위원회 위원에 선출되었으며 과학원장으로 이동하면서 교육상 자리를 김용진에게 물려주었다. 2008년 10월, 박성철 장의위원을 지냈다. 2009년 3월, 1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및 상임위원회 위원에 재선되었으며 과학원이 국가과학원으로 개편되면서 원장에 유임되었다. 하지만 2009년 9월, 국가과학원장 자리를 장철에게, 2010년 2월, 조선과학기술총연맹 중앙위원장 자리를 리자방에게 물려주는 등 은퇴 단계를 밟고 있었다. 그러다가 2010년 4월 9일, 최고인민회의 12기 2차 회의에서 최고인민회의 서기장인 최영림이 평양시 책임비서에 임명되자 그 뒤를 이어 후임 최고인민회의 서기장에 선출되었다. 이후 최영림은 12기 3차 회의에서 내각총리에 선출된다.

2010년 9월,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무려 정치국 위원으로 선출되는 등 말년에 권력 최상층부로 진입하였다. 2010년 11월, 조명록 장의위원, 2011년 1월, 박정순 장의위원, 2011년 12월, 김정일 장의위원을 지냈다. 2012년 2월, 김정일훈장의 1차 수훈자로 선정되었다. 하지만 고령이 문제였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2012년 4월 13일, 최고인민회의 12기 5차 회의에서 태형철에게 최고인민회의 서기장 자리를 물려주고 퇴임하였다. 아마도 4차 당대표자회에서 정치국 위원에서 물러났을 것으로 보이며 이후 동정보도는 없었다.

그러다가 2016년 11월 14일 사망하였으며, 15일에 김정은이 영전에 화환을 보내주었다. 사망 당시 후보원사, 교수, 박사의 학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7년 9월 28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서기장 직함으로 애국렬사릉에 안장되었으며 조선중앙통신은 "오랜 기간 교육,과학연구부문의 중요직책에서 사업한 그는 나라의 교육사업과 과학기술발전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였으며 생의 마지막시기까지 당의 위업에 무한히 충실하였다."라고 그를 칭송해주었다.

3.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