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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마니 술탄국 بهمنيان سلطان Sultanat-i Bahmaniā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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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속기간 | 1347년 ~ 1527년 | |
수도 | 굴바르가→비다르 | |
국가원수 | 샤[1] / 술탄 | |
주요 군주 | 피루즈 샤(1397~1422) | |
언어 |
페르시아어 다키니어[2] 마라티어 칸나다어 텔루구어 |
|
종교 | 이슬람 시아파 | |
민족 | 튀르크인, 인도 아리아인, 드라비다인 | |
성립 이전 | 델리 술탄 왕조 | |
멸망 이후 | 데칸 술탄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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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인도의 델리 술탄 왕조가 허약해진 틈을 타 1347년 알라우딘 하샨 샤가 중부 데칸 지역에서 세운 이슬람 왕국으로, 1527년까지 존속했다.2. 역사
델리 술탄 왕조가 약해진 틈을 타 당시 아프간계 장군이었던 알라우딘 하샨 샤가 굴바르가를 기점으로 건국했다. 이 굴바르가는 당시 알라우딘에 의해 '아사나바드'란 이름으로 변경되었다. 바흐마니 술탄국은 당시 데칸 지역에 존재했던 힌두교 소국들을 정벌하면서 세력을 키워나갔다. 1358년 알라우딘이 사망할 때 바흐마니 술탄국의 영토는 북쪽으로 와인강가 강에서 남쪽으로는 크리슈나 강까지, 그리고 서쪽으로는 다울라바트, 동쪽으로는 봉기르에 이르는 넓은 지역을 차지했고 중부 인도의 최강국이 되었다. 알라우딘은 왕국을 굴바르가, 다울라바트, 베라르, 비다르 이렇게 4개의 지역으로 나누고, 각 지역에 총독을 두어 관할하도록 했다.알라우딘이 죽은 뒤에 그의 큰아들 무하마드 샤 1세가 즉위했는데, 이때부터 남인도의 힌두교 국가인 비자야나가라 제국과 다투게 되었다. 바흐마니 술탄국의 가장 위대한 명군으로 피루즈 샤 바흐마니를 꼽는다. 피루즈는 《 코란》의 율법이나 주석에 정통한 종교학자였으며 식물학, 기하학, 논리학 등 학문적으로도 대단한 술탄이었다. 그밖에 문화에도 지대한 관심을 가졌고 본인 스스로 뛰어난 서예가이자 시인으로 자신이 직접 즉흥적으로 시를 짓기도 했다. 또 그는 어학에도 능통하여 페르시아어, 아랍어, 튀르키예어, 칸나다어, 텔루구어, 마라티어 등 엄청나게 많은 언어들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었으며, 이 덕에 다양한 국적을 가진 하렘에 있는 자신의 여인들과도 원활하게 대화할 수 있었다고 한다.
피루즈 술탄은 당시 델리 술탄 왕조가 많이 약해지자, 그곳의 많은 지식인들을 섭외하여 데칸을 인도 문화의 중심지로 삼았다. 또한 현명한 왕은 모든 국가의 지식인과 덕이 있는 사람들을 가까이 해야 한다며, 이란이나 이라크 지역의 지식인들까지 자신의 궁정으로 섭외했다. 그는 이러한 지식인들로부터 다른 외부 지역들의 정보를 수집했다. 이처럼 피루즈 술탄은 지식인들을 우대했고, 그 자신도 이러한 지식인들의 세계에 발을 담고자, 그들과 직접 어울려 밤늦게까지 토론을 벌이는 등의 행동들을 했다고 한다. 스스로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읽었으며 힌두교, 시아파 등을 가리지 않고 모든 종교를 포용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피루즈 술탄은 이렇게 내치에 힘을 쓰기도 했으나, 외부적으로도 바흐마니의 영토를 늘리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 그는 케랄라 지역의 곤다 라자 나라싱 라이를 물리치고 베라르 지역을 점령한 다음 그의 딸과 결혼했다. 그는 결혼한 뒤에 자신이 점령했던 케랄라 지역을 다시 장인이 된 나라싱 라이에게 넘겨주는 충분히 대인배 모습을 보여줬다. 다만 비자야나가라 제국과의 전쟁은 마냥 쉽게 흘러가지 않았다. 한차례 데바라얄 1세를 물리친 경력이 있었지만, 비자야나가라는 여전히 강대한 나라였고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크리슈나 강과 고다바리 강 사이에 있는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두 나라는 서로 다툼을 벌이게 되는데, 여기서 바흐마니군이 패배했다.
이 전쟁의 패배로 인해 피루즈 술탄은 동생인 아흐마드 샤 1세에 의해 왕위를 빼앗기게 되었다. 새로 술탄위에 오른 아흐마드 샤 1세 역시 비자야나가라에게 칼을 갈고 있었으며, 그 또한 결국 비자야나가라와 전쟁을 벌이게 되었다. 아흐마드 샤 1세는 일단 와랑갈을 빼앗았으며, 수도를 굴바르가에서 비다르로 옮겼다. 이로 인해 남인도의 세력 균형이 급속히 변화했고, 바흐마니 술탄국은 비자야나가라 제국을 제치고 중남부 인도의 최강대국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후 점차 세력이 약화되더니 1518년 다섯 개의 나라들이 독립하게 되었고, 1527년 결국 바흐마니 술탄국은 데칸 술탄국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3. 역대 국왕
- 1대 알라우딘 샤 1세 (1347년 ~ 1358년)
- 2대 무하마드 샤 1세 (1358년 ~ 1375년)
- 3대 무자히드 샤 (1375년 ~ 1378년)
- 4대 다우드 샤 (1378년 ~ 1397년)
- 5대 마흐무드 샤 1세 (1397년)
- 6대 기야트우딘 샤 (1397년)
- 7대 샴스우딘 샤 (1397년)[3]
- 8대 피루즈 칸 샤 (1397년 ~ 1422년)
- 9대 아흐마드 샤 1세 (1422년 ~ 1436년)
- 10대 알라우딘 아메드 샤 (1436년 ~ 1458년)
- 11대 후마얀 샤 (1458년 ~ 1461년)
- 12대 니잠 샤 (1461년 ~ 1463년)
- 13대 무하마드 샤 2세 (1463년 ~ 1482년)
- 14대 마무드 샤 2세 (1482년 ~ 1518년)
- 15대 아흐마드 샤 2세 (1518년 ~ 1520년)
- 16대 알라우딘 샤 2세 (1520년 ~ 1523년)
- 17대 왈리울라 샤 (1523년 ~ 1526년)
- 18대 칼리물라 샤 (1526년 ~ 152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