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8-29 03:03:59

오루츠 레이스

바바 우르지에서 넘어옴
파일:external/www.learningpracticalturkish.com/barbarossa-oruc-portrait.jpg
오루츠 레이스(Oruç Reis, 1474 ~ 1518)

1. 개요2. 생애3. 대중매체에서

1. 개요

오스만 제국 알제 총독 겸 해적.

바르바로사 하이르 앗 딘의 형으로 동생의 위업에 못지않게 지중해 세계에서 악명을 떨친 대해적이었다.

2. 생애

오르츠 레이스는 아이딘 레이스, 바바 오루츠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아버지가 오스만 제국 시파히 출신이었다. 은퇴한 아버지의 화물 운송업을 돕다가 형제들과 함께 해적업에 발을 들이게 되었지만, 동생인 일랴스와 구호기사단의 습격을 받아 일랴스는 전사하고 자신은 로도스 섬으로 끌려갔다. 이후 3년동안 보드룸 요새에 갇혀 있었으나, 동생인 흐즈르가 함대를 이끌고 와 구출되었다.

이후 우르지는 따로 해적일을 벌이던 흐즈르와 힘을 합쳐 로마 교황청 및 제노바 공화국의 배들을 약탈하며 명성을 쌓아, 기독교인들에게 '붉은 수염' 바르바로사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후 알제를 근거지 술탄을 칭하는 한편 아루즈(ʿArūj; 터키어로 Oruç)는 바바 아루즈(Bābā ʿArūj)라고 불리었고,[1] 또한 아루즈와 그 동생인 하이르 알딘 흐드르 파샤(Khayr al- Dīn Khïḍïr Pasha)는 동지중해를 오가며 이베리아 반도에서 쫓겨난 무슬림이나 유대인의 망명에 도움을 주었다.

이후 스페인의 침공이 우려되자 술탄직을 포기하고 오스만 제국의 황제 셀림 1세의 신하로 들어가 알제리를 바쳤지만, 알제 총독에 임명되어 이전까지의 권한을 거의 그대로 보유하게 되었다. 1516년, 스페인 당국은 그를 소탕하기 위한 대군을 파견하였다. 우르지는 스페인 대군에 맞서 용감히 싸웠지만 틀렘센 인근에서 전사하였다. 다만 그 세력은 동생 흐즈르가 고스란히 물려받았으며, 이후 그가 바르바로스 하이레딘 파샤라 불리며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해적 가운데 최고의 지위[2][3]까지 오르는 발판이 되었다.

3. 대중매체에서

알제리 영화 마지막 여왕 (알 말리카 알 아키라)에서 알제를 점령하는 오루츠를 더룬다.

대항해시대 5에서는 알제에 도착한 주인공 일행에게 잉글랜드의 사략함대라고 사칭해 주인공 일행에게 머스킷 총 5정을 얻어내는데, 이 일로 인해 주인공 일행이 한때 반역 행위로 잉글랜드에 체포되었다가 풀려나는 대신 알제의 해적들을 토벌하게 된다. 또한 오스만 함대가 일부러 서지중해를 공격하면서도 안티키테라 기계를 발굴하기 위해 양동 작전을 벌였는데, 그리스 앞바다에서 안티키테라 기계가 있는 침몰선의 인양을 지휘하면서 피리 레이스에게 해전 이외에 흥미없다면서 될 수 있는 한 다른 일에 끼어들지 않는다면서 이런 것이 도움이 되냐거나 불확실한 일로 양동 함대까지 동원한 것이냐고 하는 등 불만있는 모습을 보였다.

대항해시대 오리진에서는 뜬금 동생이었던 하이르 앗 딘의 모델인 하이레딘 레이스와 대립하는 인물로 나온다. 심지어 본인의 다른 이름인 아이딘 레이스와도 별개의 인물로 나뉘었다. 하이레딘 이전 알제의 해적이자 지중해 최강의 해적이었으나 하이레딘의 등장으로 밀려나 기존 위치를 되찾으려는 행보를 보인다.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3: 결정판에서 새로 추가된 역사적 전투 캠페인에서 등장한다. 내용은 알제에서 스페인 군대를 막아내고 오스만 제국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 다만 상술되었듯이 실제로는 스페인의 공격을 우려한 오루츠 레이스가 주도해서 오스만의 신하가 되고 스페인군과의 전투도 그가 주도하다 전사했는데, 작중에서는 오스만과의 연락보다 스페인의 침공이 더 먼저인데다 오루츠는 막을 대책이 없다며 당황하고 하이르 앗 딘이 알아서 오스만에 도움을 청하는 등 고증 오류가 많다. 아무래도 훨씬 유명한 쪽은 오루츠보다는 하이르 앗 딘이기에 그를 띄워 주고 싶었던 듯.

만화 원피스에 등장하는 초신성 우루지의 모티브가 이 인물이라고 작가가 52권에서 밝혔다.


[1] 바르바로사(Barbarossa)라는 별칭도 바바 아루즈를 잘 못 알아들은 유럽계 사료의 실수로 보는 경우도 있다. [2] 북아프리카 대총독 겸 오스만 해군 총사령관. 다시 말해 오스만의 신하였던 바르바리 해적들을 모두 거느리는 지위인 동시에 콘스탄티노플에 정박하고 있는 오스만의 정규 해군까지 통솔하는 자리로, 어설프게나마 조선 왕조로 비유하면 한 마디로 삼도수군통제사라고 볼 수 있다. [3] 사실 삼도수군통제사는 권한은 커도 어디까지나 일개 관료에 불과하지만 하이레딘이 앉은 자리는 사실상 오스만 제국 황제 휘하의 독립 군주나 마찬가지였다. 당시는 중세 봉건시절이었으니 당연하겠지만. 그 유명한 예니체리도 비슷한 입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