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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 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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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al of Honor
명예 훈장
형상
정장(순서대로 · [1]· 공군[2])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Medalsofhonor2.jpg
약장
파일:명예 훈장 약장.svg
제정 해군: 1861년 12월 21일
육군: 1862년 7월 12일
공군: 1965년 4월 14일
선정 대상 의무 이상의 부름을 넘어 생명의 위험에 처한 눈에 띄는 용감함과 대담함을 보여준 인물
시상자 미국 대통령
상위 훈장 없음
하위 훈장 수훈십자장
해군십자장
공군십자장
해안 경비대십자장

1. 개요2. 역사3. 수여 자격 및 심사과정4. 명예 훈장과 수훈십자장5. 외양6. 혜택 및 법적 보호7. 통계8. 수여자
8.1. 실제 수여자8.2. 창작물에서
9. 기타10. 미군의 포상제도 목록11. 미국의 포상제도 목록12. 외부 링크

[clearfix]

1. 개요

명예 훈장(Medal of Honor)[3] 미국 의회의 명의로 미국 대통령 미군 소속 장병에게 수여하는 훈장으로,[4] 미국의 최고 등급 무공훈장이다.

그 훈격은 아래의 훈장과의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으며, 미합중국 군인 신분으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로 여겨진다. 미군에 소속되지 않은 신분에서는 명예 훈장의 심사 대상이 될 수 없으므로, 민간인인 미국 시민권자 또는 영주권자나 외국인에게는 수여될 수 없다(수여 자격 및 심사과정 문단 참조).[5] 육·해·공군이 각각 고유한 디자인의 명예 훈장을 수여한다.

2. 역사

미합중국 최초의 무공 훈장은 미국 독립전쟁 조지 워싱턴이 만든 군사훈장 배지( 퍼플하트 훈장의 전신)로, 이후 그 외 훈장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가 남북 전쟁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대통령이 관련 법안에 서명하면서 명예 훈장이 만들어졌다.

공훈 기준으로 첫 번째 명예 훈장을 받은 군인은 1861년 2월, 미 육군 7 연대 조지 N. 베스컴 중위와 60명의 부하들이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인 아파치에 포위되자 당나귀를 타고 160km를 달려와 포위를 뚫고 한 명의 사망자도 없이 부대원 모두를 생환시키는 데 공헌한 버나드 어윈 하사(31세)로 명예 훈장이 제정된 이후 소급하여 수여되었다.

명예 훈장이 정식으로 제정된 이후 첫 번째 명예 훈장을 수여받은 이들은 남북 전쟁 때 대열차추적(Great Locomotive Chase, 앤드류 습격대)에 참여했던 대원들이었다. 이들은 미리 전보선을 끊어 남부연합군이 습격을 알지 못하게 한 후 열차가 역에 정차할 때를 노려서 기습했다. 이 습격에 참여했던 이들은 후에 남부군에 체포되었는데, 이를 주도한 제임스 J. 앤드루스(James J. Andrews)와 7명이 처형되었고 민간인이었던 앤드루스와 캠벨을 제외한 나머지 19명이 명예 훈장을 수여받았다.

남북 전쟁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수여 기준을 충족한 장병들에게 수여되었고, 신미양요 때도 15명의 미합중국 해군 소속 장병들이 받았다.

본래 명예 훈장이 미국의 유일한 무공 훈장이었는데, 이러한 점 때문에 지나치게 남발되는 경우가 많아져 이후 하위 무공 훈장들을 제정하면서 수여 기준이 올라갔다.

3. 수여 자격 및 심사과정

이 심사하는 과정만으로도 미국 특유의 문민통제 삼권분립을 엿볼 수 있다. 각 부처의 결정권 순위대로 번갈아가면서 심사해서 어느 단계에서든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로, 군인들에게 국가의 이름으로 수여하는 훈장이라는 특유성에서 기인한다. 절차적으로만 보면 이곳저곳 기관의 순서만 바꿔주면 미국이 전쟁 선포하는 것과 비슷한 절차다.

4. 명예 훈장과 수훈십자장

몇몇 사람들은 수훈십자장과 그 동격인 해공군, 해안경비대십자장을 미군 최고 훈장으로 생각하기도 하는데, 실제 훈장으로서의 격은 '명예 훈장 > 수훈십자장/해군십자장/공군십자장/해안경비대십자장 > 은성무공훈장 > 동성무공훈장' 순이라고 보면 된다.

이런 착각이 일어날 만도 한 게, 수여자의 거의 70퍼센트 이상이 살아서 훈장을 받지 못했고[10], 전사하고 나서 한참 후에 영웅적인 희생과 전공이 재발견되어 추서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다보니 보통 살아서 바로 받는 최고의 훈장이 수훈십자훈장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이런 오해가 생기는 것이다. 거기다 명예 훈장은 그 디자인이 수훈십자장과 다르게 약장은 아예 다 똑같다.

두 훈장의 특성이 다른 것도 한 이유가 될 수 있다. 명예 훈장의 경우 뛰어난 무공도 당연히 훈장 수여 심사 항목이지만 그것보다 미합중국 군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분투하고 스스로를 희생한 것에 더 수여 심사의 기준을 맞췄다.[11] 한편 수훈십자훈장의 경우는 순수 무공이라는 것에 주로 초점을 맞춰서 수여된다. 수훈십자장도 서열 2위의 무공훈장인 만큼, 이거만 받아도 군생활 및 전역 후 생활과 여러 혜택이 많다. 명예는 말할 것도 없다.

2차대전 당시도 명예 훈장 수여가 그리 흔한 일은 아니었다. 태평양 전쟁사를 보면 엄청난 공적을 올려 당연히 명예 훈장을 받았겠거니 싶었는데 받지 못한 경우가 상당하다. 이들 중에는 명예 훈장 수여자를 압도하는 전공을 세우고도, 심지어 미국의 적과 전투 중에 자신의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자신의 직무 범위를 넘어 눈에 띄는 용맹을 보여준 군인인데도 수훈십자장밖에 못 받은 군인들도 있다.
위의 경우를 종합해 보면, 무공이 대단하더라도 그것이 본래의 임무에서 달성해야 할 목표였거나[13] 전투는 잘했지만 목표 달성을 실패했을 경우[14], 전투 과정에서 군인으로서의 명예를 실추시킨 사안이 있을 경우[15]에는 무공만 기려서 대체로 십자장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 반대로 무공이 애초의 전술적 목표범위 안이지만 그 행위가 상징적이거나[16] 전투에 패배하였더라도 최소한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거나 미군의 명예를 높인 경우[17] 라면 명예 훈장을 받는다고 볼 수 있다.

5. 외양

육군·해군·공군마다 고유한 디자인이 각각 있으며, 해군은 해병대·해안 경비대와, 공군은 우주군과 공유한다. 이는 수훈십자장도 비슷하나, 수훈십자장은 해병대는 해군십자장을 받지만 해안 경비대는 해안 경비대 십자장을 2010년 10월 15일에 따로 제정했다.

목에 거는 부분은 옅은 파란색을 띠는 비단으로 만들었고, 너비는 30㎜, 길이는 552㎜이다. 수여식 및 정장 패용시에는 목에 걸지만, 약장으로 패용할 수도 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50px-SpaceMOH.jpg

이와 별개로 우주 개발 시대가 열린 뒤에는 Congressional Space Medal of Honor라고 해서 우주인들을 위한 명예 훈장도 있다. 닐 암스트롱· 존 글렌· 앨런 셰퍼드· 프랭크 보먼 등 초대 수여자들부터가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인데, 아무래도 달나라 마실 가듯 우주전쟁하면서 다녀오고 하던 시대는 아닌지라 우주왕복선 시대에는 STS-51-L· STS-107 등 우주 개발 과정에서의 순직자들을 위한 추서 훈장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6. 혜택 및 법적 보호

염라대왕 면접하고 온 사람들이나 받는[18] 훈장인 만큼, 명예 훈장 수여자에게는 굉장한 혜택과 법적 보호가 주어진다.[19] 파일:doss MOH.png

7. 통계

출처
<rowcolor=#fff> 연도 전쟁 수여자
1861년 ~ 1865년 남북 전쟁 1,523명
1865년 ~ 1891년 인디언 전쟁 426명
1865년 ~ 1939년 평화로운 시기(Peacetime) 193명
1871년 신미양요 15명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 110명
1899년 제2차 사모아 내전 4명
1899년 ~ 1901년 의화단 운동 59명
1899년 ~ 1902년 미국-필리핀 전쟁 86명
1912년 ~ 1933년 니카라과 점령 2명
1914년 베라크루스 점령 56명
1914년 ~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 126명
1914년 ~ 1973년 무명용사 9명
1915년 ~ 1934년 아이티 점령 8명
1916년 ~ 1925년 도미니카 공화국 점령 3명
1939년 ~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 472명
1950년 ~ 1953년 6.25 전쟁 146명
1955년 ~ 1975년 베트남 전쟁 261명
1967년 USS 리버티 사건 1명
1993년 모가디슈 전투 2명
2001년 ~ 2021년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20명
2003년 ~ 2011년 이라크 전쟁 7명
2014년 ~ 현재 대 IS 군사 개입 1명
<rowcolor=#fff> 육군 해군 해병대 공군 해안 경비대 합계
2466명 749명 300명 19명 1명 3535명

8. 수여자

수여식 영상
1968년 9월 데이비드 맥너니 중사 외 네 명의 군인이 베트남 전에서의 무공으로 명예 훈장을 당시 린든 존슨 대통령으로부터 수여받고 있는 영상이다.

원칙적으로는 공을 세우거나 전사한 뒤 2년 내에 대통령에게 소식을 알리고 3년 내에 수훈되도록 하고 있지만, 시체조차 찾지 못한 전사자들이나 부대가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으면서 고군분투했던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오랜 세월이 흘러서야 훈장을 받은 이들도 많다. 또한 공적을 최대한 정확히 파악하여 수훈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아직도 제2차 세계 대전이나 6.25 전쟁에서의 영웅적 활약을 기려 명예 훈장이 수훈되는 경우도 많다. 물론 이 경우 수훈 당사자가 살아있을 확률은 거의 없으므로[25] 배우자나 그 가족이 대리로 수여받으며, 실제로 전사자의 아내가 가장 많이 메달을 전달받게 된다.

총 3465번 수훈되었으며 수여자는 3446명이다. 19명이 2중 수훈을 받았다는 뜻으로, 이 중 5명은 같은 행동으로 서로 다른 군의 명예 훈장을 중복 수여받았고 나머지 14명은 다른 행동으로 두 번 수여받았다.[26] 육군이 가장 많은 수여자를 배출했고 해안 경비대는 1명의 수여자를 배출한 것이 전부이다.[27] 아무래도 해안 경비대는 영해에서 해안 경비 임무를 수행하고 해외에 파병되더라도 전투 임무는 해군이 맡고, 해안 경비대는 비전투 임무를 수행하기에 이런 훈장을 받을 정도로 험한 일은 드물다. 만약 해안 경비대나 주립 민병대가 몇십 명씩 무더기로 명예 훈장 받을 일이 있다면 그건 분명 미국 본토가 공격받는 상황일 것이다.

8.1. 실제 수여자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명예 훈장/수여자 목록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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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각종 매체를 통해 잘 알려진 수여자 위주로 나열했다. 수여받은 사람의 수가 총 3,535명이나 되는 만큼 문서 길이가 너무 길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 이름이 없다고 해서 훈장을 받을 만큼 훌륭한 사람이 아니란 말은 아니고 이 훈장을 받았다고 해서 반드시 무공이 뛰어났던 사람이라는 것도 아니다. 명예 훈장은 창설 초기에 있었던 남북 전쟁 당시 이것 외에 이렇다 할 무공 훈장이 없어 좀 잘 싸웠다 싶으면 수여 대상이 되어 창설 초창기에 남발된 면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운디드니 학살사건에 가담한 20명의 장병들에게도 명예 훈장이 수여되었고, 그 훈장은 현대에도 유지되고 있다. 다만 20세기 들어 중간 단계의 훈장들이 여럿 생기고, 훈장 수여 규정이 엄격해져서 그 가치가 올라가 제2차 세계 대전 즈음에는 군 내·외의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훈장이 되었다. 물론 미국이 참전한 전쟁 규모나 미국이 동원한 병력 수를 생각하면 이 수여자 수도 많다고 할 수 없다. 수여자들의 내역을 읽다보면 하나하나를 영화화해도 부족할 것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 텐데, 실제로 핵소 고지, 위 워 솔저스, 블랙 호크 다운, 론 서바이버, 더 퍼시픽, 아웃포스트 등의 영화가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알레이 버크급 구축함 문서도 참조. 미국의 군함들이 워낙 많아 그 군함들에 붙일 만한 이름들이 바닥났고, 군함에는 전사자나 전쟁 영웅들의 이름을 붙이는 전통이 있다보니 명예 훈장이 수여된 사람들의 상당수(특히 해군·해병 출신)는 최신 전투함들의 함명으로 선정되고 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Whittlesey1.jp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George_McMurtry.jp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Nelson_Holderman.jpg
찰스 휘틀시 육군 중령[28] 조지 맥머트리 육군 대위 넬슨 홀더먼 육군 대위
제1차 세계 대전 종전을 앞두고 77 보병 사단 308연대와 306·307연대 잔존병 500여 명을 이끌고 5,000명에 가까운 독일 제국군 육군에 포위되어 필사의 항전을 벌여서 독일군 전선을 크게 무력화시켰다. 영화 '로스트 바탈리온'과 사바톤의 노래 'The Lost Battalion'이 이들의 활약을 그리고 있다.
파일:external/www.badassoftheweek.com/york.gif
앨빈 C. 요크 육군 상병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미군 중 가장 많은 훈장을 받은 사병으로 뫼즈-아르곤 공세 당시 자신을 포함한 17명의 분대가 프랑스 샤텔셰에리 북쪽 223고지에 위치한 독일군의 기관총 진지 무력화에 나서 무력화에 성공했으나 고지에 위치한 다른 기관총 진지에서의 기습으로 분대장을 비롯해 9명이 죽거나 다치고 분대에 이등병 7명 밖에 남지 않자 단신으로 기관총 진지 무력화에 나서 자신의 M1917 엔필드 소총으로 진지 내의 독일군과 교전을 벌였고 그 과정에서 20명이 넘는 독일군을 사살했다. 소총의 총알이 다 떨어질 무렵 독일군 6명이 총검돌격을 해오자 재빨리 M1911 권총을 꺼내 6명 모두 사살하는데 성공했으며 그 와중에 기관총 진지를 지휘하던 독일군 장교가 그의 뒤로 우회해 그에게 권총을 발사했으나 모두 빗나가자 장교는 자신의 부대가 입은 피해상황을 고려하여 그에게 항복의사를 전달해왔다. 이 전투에서 그는 혼자서 32정의 독일군 기관총을 무력화했으며 최소 28명을 사살하고 132명의 포로를 생포했으며 그의 맹활약 덕분에 소속 부대였던 미 328보병연대는 목표였던 샤텔셰에리 북쪽의 철도 장악에 성공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0px-Lt._General_James_Doolittle%2C_head_and_shoulders.jpg
제임스 둘리틀 육군[29] 중령
둘리틀 특공대의 지휘관이다. 살아서 돌아온 뒤 대령을 건너뛰고 준장이 되어[30] 명예 훈장을 수여받았다. 중장으로 예편했지만 노년을 보내던 중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명예 공군 대장으로 진급시켰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50px-MacArthur_Manila.jpg
더글러스 맥아더 육군 원수
남방작전 당시 공격받은 필리핀에서 분전하던 도중 호주로의 철수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명예 훈장이 수여되었다. 다만 방어전에서 보여준 여러 실책 때문에 사실상 그곳에서 분전한 모든 미군 장병들을 대표해서 수여받은 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아버지이자 육군 중장까지 지낸 아서 맥아더 주니어도 명예 훈장 수여자라 부자가 각각 명예 훈장을 받은 기록이 나왔다.
파일:Jonathan_M._Wainwright.jpg
조나단 웨인라이트 육군 대장
1941년 12월 8일 일본군의 남방작전 중 처음으로 공격받은 필리핀을 무려 6개월 동안 지연전을 벌여 필리핀에서 병력을 소모하게 만들어 발목을 끝까지 붙잡아두었고, 탈출마저 거부한 채 병력들을 지휘하다 1942년 5월 8일 항복을 해 1945년 8월까지 전쟁 포로로 잡혀있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5일과 17일에는 각각 대장으로 진급, 명예 훈장을 받아 인정받은 장군이자 명장이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25px-Daniel_Inouye%2C_official_Senate_photo_portrait%2C_2008.jpg
대니얼 이노우에 육군 대위
2012년 12월 사망하기 전까지 정치 생활 내내 존경을 받았던 인물이다. 의대를 다니고 있었지만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하와이에서 진주만 공습에 이은 행정명령 9066호로 수용소에 끌려갈 위기에 육군에 자원 입대하여 제442연대전투단 소속으로 이탈리아 전선에 투입되었다. 처음엔 의무병이었지만 전쟁이 길어지며 현지임관으로 장교가 된 뒤 독일군 기관총 방어진지 제압 작전에서 한 팔을 잃고도 소대를 잘 지휘한 공로가 인정받아 상이 기장과 청동십자훈장을 받았고, 2000년 빌 클린턴 대통령의 추천을 받아 명예 훈장을 수여받았다. 최종 계급은 대위. 1963년 1월 하와이 주의 1대 연방 상원 의원에 당선된 후 2012년 12월 작고할 때까지 연방 상원 의원으로 9선의 기록을 달성하여 미국 역사상 네 번째, 非백인계 인종으로는 제일 오래 중앙 정계에 몸담은 기록을 가진 인물이다. 2012년 12월 작고한 뒤 장례식에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수많은 정계 인사들이 장례식에 참석했고 랩터의 추모 비행이 있었다. 미국에서는 이후 알레이 버크급 플라이트 IIA: 기술 실험 버전의 세번째 함정으로 예정된 DDG-118[31] 펜타곤 산하 아시아 태평양 지역 연구소, 미국국립군의관의과대학 간호대학원 및 다니엘 K. 이노우에 국제공항의 명칭을 이노우에의 이름을 따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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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디 슈가트 육군 중사 게리 고든 육군 상사
두 명의 델타 포스 저격수. 영화 블랙 호크 다운으로 유명한 모가디슈 전투에서 2번째로 추락한 MH-60 페이브 호크 콜사인 슈퍼 64의 생존자인 조종사 마이클 듀랜트를 보호하기 위해 상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청해서 민병대와 무수한 군중들 사이에 뛰어들었다. 당시에 ' 슈퍼 64' 가 추락한 위치 근처에 집들이 여러 채 있어서 반군들이 엄폐해서 사격하기 매우 좋았으며 건물과의 간격이 매우 좁아서 절대적으로 수비하기에 불리했지만 슈거트와 게리 고든은 반군 1000명 이상을 상대로 무려 2시간 이상 버텨낸다. 필사적으로 버텼지만 결국 끝도 없이 몰려오는 모두를 당해내지 못하고 전사했다. 타군인 미 해군에서도 그들을 기려 신형 군수지원함 2척에 그들의 이름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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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머피 해군 대위
네이비 씰 대원으로, 영화 론 서바이버에 나오는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레드 윙스 작전의 정찰 임무를 수행 중 탈레반과의 교전에서 심한 부상을 입고도 산악 지형이라 본부와의 통신이 되지 않자 동료들의 구출을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개활지로 이동, 통신을 시도하여 지원군을 요청하는데 성공하고 이후 교전 끝에 전사했다. 알레이 버크급 구축함의 62번함 DDG-112에는 마이클 머피의 이름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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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바토레 쥔타 육군 하사
이탈리아계 미국인. 아프간 전쟁에서의 네 번째 수여자이자 베트남 전쟁 이후 최초로 생존자로서 명예 훈장을 받은 사람이다. 2007년 10월 25일 아프가니스탄에서 매복에 걸려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 탈레반에 끌려가는 동료를 구해냈다. 미국 내의 반응도 아주 뜨거웠는데 스티븐 콜베어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비롯해 여러 텔레비전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2011년 하사 계급까지 달고 전역하여 콜로라도 주립 대학교에 재학 중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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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피 보잉턴 해병 대령
플라잉 타이거즈에 잠시 몸담은 적도 있는 해병대 항공대 최고의 에이스(28대 격추). 보잉턴의 활약은 자서전 <Baa Baa Black Sheep>과 동명의 TV 드라마로 극화되었다(1970년대 후반 MBC TV에서도 방영). 하지만 모난 성격이라 이리저리 치고받기도 했으며 이런 성격 때문에 플라잉 타이거즈의 지휘관 클레어 센놀트 대령과 불화가 생겨서 팀을 나왔다. 원래 1944년에 명예 훈장 수훈이 결정된 상태였지만 하필 태평양 전쟁 말기를 일본군에 포로로 잡힌 상태에서 수용소 생활을 하다가 일제 패망 이후에 풀려났기에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수훈한 훈장을 해리 S. 트루먼에게서 받았다. 최종 계급은 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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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도메로 로페즈 해병 중위
인천상륙작전 항목 첫 번째 사진에서 맨 위쪽에 참호를 넘고 있는 군인. 유일하게 실전 경험이 없던 중위이며, 상륙 후 주둔하고 있던 북한군을 공격하기 위해 첫 번째 수류탄을 투척한 뒤 곧바로 두 번째 수류탄을 투척하려 했으나 적군의 자동화기에 가슴과 오른 어깨를 피격당해, 막 투척하려던 수류탄을 땅바닥에 떨어트렸다. 자신의 몸으로 그 수류탄을 덮어 대원들을 구했지만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그 전공을 기려 사후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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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바실론 해병 중사
제2차 과달카날 전투에서의 활약으로 수훈. 얇게 퍼진 해병대 1개 보병대대의 방어선 전면으로 일본 육군 연대급 병력 3000여 명이 밀려오는 중과부적의 상황에서 전투 도중 고장난 기관총을 수리하거나 아군 기지까지 포화를 뚫고 돌아가 탄약을 메고 다시 돌아오는 등 미친듯이 활약을 펼쳤으며, 적들의 시체가 시야를 가로막자 적진으로 뛰어가서 시체담을 무너트리고 다시 돌아와 기관총을 갈기거나, 빈 총 무게만 무려 15㎏이 넘는 수랭식 브라우닝 M1917을 들고[32] 일본군을 죽이기도 했다. 확인된 것만 37명 이상의 적을 사살해 생존한 채로 명예 훈장을 받고 전쟁채권 홍보 등으로 엄청난 부를 거머쥐었으나, 사무직으로 남는 것을 거부하고 해병 신병교육대 교관을 거쳐 다시 최전선 파병을 지원하여 제5해병사단에 배치되었지만 이오지마 전투 초반에 전사했다. 전사할 당시 계급은 중사. 후에 바실론의 이름을 딴 기어링급 구축함이 진수되었다. 더 퍼시픽의 주인공으로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패피 보잉턴 대령과 함께 명예 훈장과 해군 십자장을 모두 받은 해병대원으로, 당연히 부사관으로는 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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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 머피 육군 소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16세의 나이로 자원입대하여 이탈리아 전선, 프랑스 전선에서 용감히 싸워 은성무공훈장 등 여러 훈장을 받았으며, 현지임관으로 소위가 되었다. 1945년 1월 26일 홀츠마이어 전투에서 1개 소대 병력으로 독일군 2개 대대 병력의 공격을 격퇴하였으며, 특히 격파된 아군 M10 GMC 자주포 포탑 위에 단신으로 뛰어올라가 포탑의 대공기총으로 독일군을 격퇴하면서 화력유도까지 해내는 공을 세워 명예 훈장을 받고 중위로 진급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자신의 전투를 영화화한 영화 'To Hell and Back'에 본인 역을 스스로 맡는 등 영화배우로 전업하여 활동하였고,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참전용사들의 PTSD 치료를 위한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다가 1971년 비행기 추락 사고로 45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현재까지 미 육군 장병 중 가장 많은 훈장을 수훈한 사람이자 최단기간에 이등병에서 장교까지 올라갔다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전후의 일이긴 하지만 유일한 명예 훈장 수훈 프리메이슨이란 기록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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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 로메샤 육군 하사 타이 카터 육군 상병
베트남 전쟁 이후 살아서 명예 훈장 수여자가 2명이나 나온, '캄데쉬 전투'의 수여자들이다. 2009년 10월 3일 캄데쉬 전투 당시,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의 대규모 공격을 막아내고 소초 정문을 탈환하여 기지를 탈환한 전과를 이룬 로메샤 하사와 총성이 빗발치는 상황에서도 중상을 입은 동료를 구한 카터 상병은 그 공을 인정받아 명예 훈장을 수여받았다. 그러나, 로메샤 하사는 전역한 뒤 자신이 명예 훈장을 받을 자격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자신이 복무한 미 육군 제2보병사단[33]에 자신의 명예 훈장을 기증하였고 자신이 겪었던 캄데쉬 전투에서의 상황을 묘사한 회고록을 출간하였다. 카터 상병은 명예 훈장을 수여받은뒤에, PTSD에 걸리게 되어 결국에는 하사 계급으로 중간에 전역하였고 현재는 자신과 같은 상황을 겪은 퇴역군인들을 치료하고 있다고 한다. 이 둘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 아웃포스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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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코타 마이어 해병 병장[34] 윌리엄 스웬슨 육군 대위[35]
다코타 마이어(1988년 6월 26일 ~)는, 아프가니스탄 전쟁 중 2009년 9월 8일에 아프가니스탄 쿠나르 지방 간즈갈 계곡의 전투에 참여하여 탈레반 50명의 기습을 받았다. 이 기습으로 동료 미 해병대원 4명이 사망했고, 36명의 아프간 정부군이 발이 묶였다. 마이어 병장은 말리는 상부의 지시를 무시한 다음, 동료인 로드리게스 차베즈 하사가 험비 운전을 하며 그 안속에서 마이어 병장은 험비의 상부에 있는 기관총을 잡고 5회 왕복을 하며 동료 미군의 시신 4구와 아프간 정부군을 구출했다. 이 과정에서 마이어 병장은, 4회째 왕복에서 오른팔에 총상을 입었다. 이후 마이어 병장은 전역하였고, 건설회사에 근무하던 중에 2011년 9월 15일 명예 훈장을 수여받았으며 오바마 대통령과 함께 백악관에서 맥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다. 이때 당시에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걸었고, 장난전화로 착각한 마이어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고 한다. 잠시 그 이후, 실제 상황임을 알게 된 마이어 병장은 담담하게 "대통령님과 맥주 한 잔 마시고 싶습니다." 라고 했다.[36] 그는 역대 최연소 수여자이고,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 중 생존한 미군으로는 3번째, 미 해병대에서는 첫 번째 수여자였다. 동료인 차베즈 하사는 명예 훈장을 받지는 못했지만, 두 번째로 급이 높은 'Navy Cross[37]'를 수여받았다.

윌리엄 스웬슨(1978년 11월 2일 ~)은 2002년에 미 육군 OCS로 임관한 장교이며, 마이어과 함께 간즈갈 계곡 전투에서 싸웠던 육군 대위다. 스웬슨은 당시 전투에서 구출 작전을 주도했고 그로 인해 명예 훈장 후보에도 올랐으나 탈락했다. 이유는 수뇌부에게 개겨서 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당시 상부에 화력 지원을 요청했으나 묵살당했고, 이를 비판했기 때문이었다. 간즈갈 계곡 전투에서 윌리엄 스웬슨 대위의 활약은 마치 이순신 장군이 녹둔도에서 여진족을 무찌르던 군공을 연상케 하는데 몇 명 되지도 않는 병력을 이끌고 탈레반과 맞서 싸워 승리하고 20여 명의 병력들을 성공적으로 구출해냈다. 이렇게 활약하고도 수뇌부에게 밉보인 스웬슨은 당연히 수훈에서 탈락했다. 훈장도 받지 못한 채 2011년에 전역을 했고, 그 이후 미혼인데다 무직인 상태로 살아왔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 스웬슨을 알던 종군기자가, 이후 마이어의 수훈과 그 전공에 의문을 품고 추적해 이러한 사실을 폭로했다. 마이어도, 자신의 저서에서 종군기자의 주장에 동조하였다. 해병대에서는 크게 반발했지만, 캘리포니아의 하원의원이 리언 패네타 국방장관에게 편지를 써서 제대로 조사가 이루어져서 2013년 10월 15일에 그는 명예 훈장을 받을 수 있었다. 마이어 역시 해당 전투에서 적지 않은 공을 세웠기 때문에 수훈은 유지되었다. 참고 1 참고 2 위키백과 스웬슨 대위 항목 역시 참고해도 좋다. 스웬슨은 2014년에 현역 신분으로 복귀하여, 다시 군인으로 근무하고 있다. 현재는 중령 계급이다. 보직은 미 육군 10산악사단 32보병연대 1대대장으로 근무중이며, 현재 명예 훈장을 수여 받은 유일한 현역 장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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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H. 카니 육군 상사
남북전쟁 중 와그너 요새 공략 중 기수가 저격을 받아 쓰러지자 대신 깃발를 들고 돌격하였으며 연대장인 로버트 굴드 쇼 대령의 전사에도 불구하고 부하들을 성공적으로 퇴각시킨 공훈으로 받았다. 퇴각 당시에 총 4곳에 총상을 입었지만 목숨을 건졌다. 카니 상사는 미군 최초의 흑인이자 유색인종 부사관이며 또한 최초로 유색인종으로서 명예 훈장을 받은 인물이기도 하다. 카니 상사가 소속되었던 부대 또한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부대인 매사추세츠 54연대였는데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영광의 깃발이다. 영화 중에서 모건 프리먼이 맡은 역할이 카니 상사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이다. 또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공주와 개구리의 주인공인 티아나의 아버지 역시 카니를 모티브로 했다. 사족으로 맨 마지막에 나오는 쇼 대령과 부대원들이 조각된 기념비는 실존하는 것으로 보스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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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슈아 L. 체임벌린 육군 대령
남북전쟁 중 게티즈버그 전투에서의 활약으로 수훈. 제20 메인 의용보병연대를 지휘하면서 전투 2일차에 북군 전열 좌익에 위치한 고지 리틀 라운드 탑을 남군 2개 연대 병력과 수 차례 교전하면서 방어하다가, 부대의 탄약이 떨어지자 허를 찌르는 착검돌격을 개시해 올라오던 남군 전열을 붕괴시키고 점령 시도를 완전히 좌절케 한 공로로 훈장을 수여받았다. 리틀 라운드 탑 전투 자체가 워낙 드라마틱한 순간이고, 이 곳을 남군에게 뺏겼다면 전장 안에 포진한 북군 전체가 뒤를 찔리게 될 게 뻔했기에 게티즈버그 전투를 다루는 매체에선 항상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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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스트 에반스 해군 중령
보기 드문 아메리카 원주민 계열 출신이다. 플레처급 구축함 USS 존스턴 함장으로 태평양 전쟁 참전하여 레이테 만 해전 사마르 해전에서 전사했다.

작은 호위항공모함을 필두로 한 구축함 호위구축함 정도로만 이루어진 소함대에게 야마토급 전함을 포함한 일본 해군 주력함대가 달려드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명령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함선인 존스턴 포함 3척의 구축함, 1척의 호위구축함과 함께[38] 일본 함대를 향해 돌격해 모가미급 중순양함 쿠마노의 함수를 어뢰로 날려버렸고, 대파된 쿠마노를 피하려던 스즈야도 미군의 공습에 대파되게 하는 전공을 세웠다. 이후 공고와 야마토의 포에 큰 손상을 입혔지만, 응급수리로 함 기능을 어느정도 복구한 후 호위항공모함을 노리고 접근하는 아가노급 경순양함 야하기를 비롯한 구축함 4척에게 단신으로 덤벼들어 시간을 끌었다. 유감스럽게도 일본군의 공격으로 USS 존스턴이 격침되고 퇴함 후 실종되고 말았지만, 에반스의 돌격은 태피 3의 다른 함선들에게도 용기를 주었으며, 에반스의 용기를 이어받은 태피 3 장병들은 용감하게 싸운 끝에 더글러스 맥아더를 비롯한 필리핀의 수많은 미군들을 구하고 일본을 무찔렀다. 사후 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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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 W. "투 톨(Too Tall)" 프리먼 육군 소령
대위 시절 베트남 전쟁에서 헬리콥터 조종사로 활약했다. UH-1 휴이를 몰았다. 미군과 북베트남군 사이에서 벌어진 첫번째 전투인 이아드랑 전투[39]에서 자신과 편대장이 실어나른 육군 대대가 집중 포화를 받자 포화를 14차례나 뚫고 들어가 보급품을 운송하고 부상자 30명을 외부로 실어날랐다. 착륙 지점은 전투가 벌어지던 곳에서 불과 200여 m밖에 떨어지지 않았기에 프리먼의 헬리콥터도 사격에 노출되었고, 이 때문에 프리먼 대위는 팔과 다리에 총 4차례나 총상을 입었다. 부상을 입은 후 비행 부적합 판정을 받은 뒤에는 공병으로 전과했다. 프리먼의 편대장이었던 브루스 크랜들(Bruce Crandall) 소령 역시 같은 전투에서 활약하여 명예 훈장을 받았다. 훈장 추천 시기가 늦어서 당시에는 받지 못했지만 명예 훈장의 추천 시기 제한이 없어지면서 2001년 7월 16일에 수여받았다.

관련 영화로 위 워 솔져스가 있다.[40] 영화에서 상부의 명령을 묵살하고 위험을 무릅쓴 헬리콥터 기동을 하는 파일럿이 나오는데 그게 바로 에드 프리먼 소령이다. 전투 이전에 진지에서 야구를 하다가 주인공인 무어 대령을 만나는데, 고증에 맞게 무어 대령보다 키가 머리 하나만큼 커서 무어 대령이 올려다봐야 했으며 콜사인도 "투 톨(Too Tall, 멀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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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카폰 육군 대위
천주교 군종 신부. 6.25 전쟁에서 명예 훈장을 받은 이들 중 거의 유일한 비전투요원이자 사제. 한국 전쟁 군종 신부로 참전하여 아군은 물론 적군까지도 가리지 않고 돌봤으며, 부상당한 적군에게도 대놓고 투항하라고 권유할 정도로 간 큰 인물. 운산 전투에서 포로가 된 뒤 같이 포로가 된 장병들의 탈출도 돕고 몰래 미사를 집전하고 부상당한 병들을 돌보았다. 종교 자체를 불허하는 중공군과 북한군에게 심한 멸시를 받았고 자신의 배식도 본인은 별로 먹고싶지 않다며 둘러대고 동료 포로들에게 나눠주며 정신적 버팀목이 되어주다가 세균에 감염되어 떨어진 체력과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신부이자 장교로서 모범이 된 인물이다. 동료 포로들도 그를 계급이 아닌 신부님으로 불렀다고 전해진다. 60여 년이 지난 2013년에 명예 훈장이 추서되었으며 미국 가톨릭에서는 카폰을 순교자로 인정해야 한다며 카폰 대위의 시성에 필요한 기적도 조사되는 등 시성 운동도 하고 있다고 한다.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이 신학생 시절 번역한 카폰 신부의 전기가 출간되기도 했다. 2021년 3월 5일 미국 국방부 산하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이 하와이주 국립태평양묘지에 안장된 신원미상의 참전자 유해 중에서 카폰 신부의 유해를 찾아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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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워터스 육군 소령
카폰과 마찬가지로 육군 군종 신부다. 베트남 전쟁 닥토 전투에서 공수작전 도중 부상당한 공수부대원들을 피신시키고 자신은 아군 항공기의 오폭으로 전사하여 사후 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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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몬드 도스 육군 상병
위의 카폰, 워터스와 함께 비전투요원으로서 훈장을 받은 사람.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신자였기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 육군에 입대했지만 집총을 거부하고 대신 의무병과에 지원했다.[41] 그는 지휘검열이 있는 토요일에도 예배에 참석해야 한다며 상관의 명령을 거부하거나 전투병과로 보직 변경을 하라는 지휘관의 설득을 거부해 군대 내에서 골칫거리 취급을 받았다. 미 육군 77사단 307보병연대 1대대 소속으로 오키나와 전투에 투입되었는데 전투 내내 일본군의 집중 공격을 받으면서도 쓰러진 전우들을 일일이 확인해 생존자들을 아군 진지로 들어 날라 75명의 생명을 구했다.[42] 그중에는 일본군이 대놓고 수류탄을 던지는 참호 앞까지 가서 생존자 7명을 구한 것도 있었다. 넓은 의미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해당하지만 의무병으로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전우를 구한 행동으로 명예 훈장을 수여받았다. 2016년에는 그의 활약에 대한 영화인 핵소 고지가 개봉했다. 전세계 제7일안식교단에서는 성인급으로 추앙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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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맥고너글 해군 중령
6일 전쟁 당시 리버티 사건에서 이스라엘 해군 어뢰정과 공군에게 피격당한 기술연구함(사실은 NSA와 공동운용하는 정보수집함) USS 리버티의 함장이었다. 이스라엘이 뒤늦게 구호지원을 제의했지만 쌩까고 자신도 부상을 당한 채로 USS 리버티를 지중해 미 해군기지까지 무사히 자력 항해하였다 살아서 명예 훈장을 받는다는 사실은 백악관 초청이 당연한 용자의 상징이지만, 이 사건 자체가 기밀이었기 때문에 해군부에서 조촐한 수여식만 거행했다.[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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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F. 딘 육군 중장
한국 전쟁 당시 미 제24보병사단 사단장(소장 계급)으로 포로가 되었다가 귀환한 장군이다. 미 육군 24보병 사단장으로서 대전 전투를 이끌었다. 인민군의 엄청난 공세에 맞서 수많은 전차를 부수는 등 분전했지만 버텨내지 못하고 본대와 떨어진 뒤에도 부상을 입고도 사단장으로서 로켓 포와 수류탄을 들고 싸우는 등 절박하게 본대와의 만남을 위해 애썼지만 끝내 전북 진안에서 주민의 밀고로 인민군에게 포로로 잡히고 말았다.

한편 미군에서는 실종 전사한 것으로 추정하였다가 1950년 10월말 북진 중 평양 부근에서 포로로 잡은 북한군 병사의 진술로 미군에서도 이때 북한군에 포로가 되었을 가능성을 인지하였다고 한다. 6.25 전쟁사 제4권 금강-소백산맥선 지연작전 166P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그렇지만 미군은 포로의 진술보다는 당시 상황을 놓고 봤을 때 전사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판단을 하였는지 1951년 2월 16일에 명예훈장이 추서되었으며 부인과 자식들이 대리 수상을 하였다.

그 후 생사여부를 계속 조사 중 1951년 12월 18일 북한군이 오스트레일리아 종군기자 월프레드 버쳇를 초청해서 인터뷰를 시키면서 딘 장군이 생존해 있고 자신들이 포로로 잡고 있다는 것을 공개하면서 딘 소장의 상황이 명확하게 알려지게되었고 휴전 협정이 체결된 이후, 유엔군과 공산군이 일반 포로들을 교환한 빅 스위치 작전(Operation Big Switch)에 의해 1953년 9월 4일 석방되어 귀환하였다.[44] 여담으로 도피 중 한국 민가에서 얻어먹은 김치나 마늘장아찌가 입에 맞았는지 나중에 미국에서도 종종 만들어 먹었다고 하며 전북 진안에는 딘 루트로 불리는 딘 장군의 도주 루트가 둘레길, 트래킹 길로 조성되어 있다.[45] 이후 미국으로 귀국 후 제6야전군 부사령관으로 몇 년 재직한 후 중장 진급과 동시에 퇴역하여 여생을 조용히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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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카일 카펜터 해병 상병
아프간 전쟁에 해병대 제1사단 소속 자동소총 사수로 참전하여 2010년 전투 중 동료에게 수류탄이 날아오자 몸을 던져 수류탄 공격을 막아내고 동료와 함께 중상을 입은 채 살아남았지만(온전히 몸으로 덮은 것은 아니었다고) 얼굴과 오른팔에 중화상을 입어 한 눈을 잃었는데 이후 눈물겨운 재활과정이 언론에 보도되며 미국 전체가 감동받았다. 해병대에서 의병 제대한 뒤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교에서 체육교육을 공부했으며, 2014년 6월 19일 백악관에서 명예 훈장이 수여되었다. 생존하여 명예 훈장을 받은 인물로서 역대 최연소 기록을 세웠다. 멘탈이 대단한지 자신의 흉터 덕분에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드립을 쳤고 수여식에서 오바마가 이를 언급하기도 했다.[46] 2022년 결혼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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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바이어스 해군 상사
DEVGRU 소속. 바이어스 상사는 아프가니스탄 동부 라그만 주에서 탈레반에 의해 운전사와 통역사와 함께 납치된 딜런 조지프 박사의 인질 납치 첩보를 입수한 미국이 편성한 구출팀에 소속되어 작전에 참가하였다. 맨 처음 건물로 침투한 니컬러스 체크 중사는 머리에 총상을 입고 현장에서 즉사하였으나 바로 뒤에 있던 바이어스 상사는 탈레반과 교전을 시작하고 인질이 갇힌 독방까지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이에 갑자기 달려드는 탈레반을 확인하고 맨손으로 제압한 후 총격전 중에 인질을 보호하기 위해 자기 몸으로 인질을 가려 보호하며 무사히 구출하도록 했다. 계 대원으로는 6번째이자 DEVGRU 대원으로는 첫번째로 명예 훈장을 수여받았다. 오하이오 출신의 바이어스 상사는 1979년생으로 현재 [age(1979-01-01)]세이며 1998년 해군에 의무병으로 입대 후 2002년 BUD/S 수료후 네이비 씰 대원으로 활동하다 2011년 DEVGRU 오퍼레이터가 되었으며 복무기간 동안 총 11번의 파병을 다녀왔다. 오바마 대통령은 수여식에서 "바이어스 상사는 적을 맨손으로 제압하면서까지 동료들이 작전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왔고 전광석화와 같은 임무수행능력으로 인질과 동료들의 목숨을 구했다"고 하였다. 20년간 해군에서 근무한 뒤 2019년 원사(Master Chief Petty Officer)로 전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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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러스 A. 먼로 해안 경비대 하사[47]
전무후무한 해안 경비대 출신의 명예 훈장 수여자다. 통신부사관으로, 과달카날 전투의 제1차 마타나카우 전투에서 루이스 풀러 중령의 해병 7연대 소속 1대대가 전멸할 위기에 놓이자 일본군의 십자포화가 빗발치는 가운데 상륙주정을 이끌고 들어가서 기관총으로 일본군과 교전을 벌이다가 전사했지만 그 덕에 해병대가 무사히 철수할 수 있었다. 미군에서도 부심으로 유명한 해병대가 진정한 은인이라며 떠받들 정도니 말 다했다. 해군에서도 먼로의 이름을 딴 구축함을 진수했고, 해안 경비대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48] 국토안보부 워싱턴 D.C. 남동부에 있는 해안 경비대 본부 신청사의 명칭을 '더글러스 A. 먼로 빌딩'으로 정했으며, 레전드 급 경비정에다 그의 이름을 붙여서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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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스톡데일 해군 중장
중령 시절 베트남 전쟁에서 A-4 스카이호크를 조종하다 북베트남에서 격추된 뒤 포로수용소에서 모진 고문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정신력을 잃지 않고 버텨내며 끝내 살아 돌아온 공로로 수여.[49] 이후 중장으로 퇴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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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셜 우드로 윌리엄스(Hershel W. Williams) 해병 상병
별칭은 허셜 "우디" 윌리엄스(Hershel "Woody" Williams). 미합중국 해병대 화염방사병 출신으로 1943년 미해병대에 입대하여 제2차 괌 전투에 참전한 후 1945년 2월 21일 이오지마 전투에도 참전해 약 32㎏에 달하는 화염방사기를 들고 일본군의 기관총 진지로 돌격해 화염방사기로 진지를 공격하고, 연료가 떨어지면 다시 뒤로 물러나 연료통을 교환한 후 다시 위험을 무릅쓰고 적진으로 돌격하는 행동을 무려 4시간 동안 반복총 7개의 진지들을 파괴했다.[50] 전후 이오지마 전투에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1945년 10월 5일 백악관에서 해리 S. 트루먼에게 명예 훈장을 수여받았다. 명예 훈장을 받은 이후에도 미해병대에서 계속 복무하다가 1969년 전역했으며 최종 계급은 준위장 4호(CW4)였다.

이오지마 전투를 넘어 제2차 세계 대전에서의 활약으로 명예 훈장을 수여받은 참전자들 중 마지막 생존자였던 그는 퇴역 이후에도 강연, 비영리 단체 우디 윌리엄스 재단(Woody Williams Foundation) 설립 등 현역·퇴역 군인들을 위해 다양한 곳에서 활동했다. 2018년 2월 4일에는 슈퍼볼 LII에 나와 그를 포함한 15명의 명예 훈장 수여자들을 대표하여 심판·선수들 앞에서 코인 토스를 하기도 했으며[51] 2020년 3월에는 본인의 이름이 붙은 원정이동기지선 USS 허셜 "우디" 윌리엄스의 취역식에 참석하여 수병들 앞에서 연설을 하기도 했다. 그가 태어난 웨스트버지니아 주에 있는 해안 경비대 무기고와 앞 문장에 언급한 2017년 8월에 진수·2020년 3월에 취역한 미합중국 해군의 2번째 루이스 B. 풀러급 원정이동기지선은 그의 이름을 붙여 그가 남긴 업적을 기리고 있다.

2021년 증손자가 자신을 뒤이어 미 해병대 훈련소를 수료한 것을 지켜본 후 현지 시간으로 2022년 6월 29일, 98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 데이비드 버거 해병대사령관은 미합중국 해병대에는 많은 영웅들이 있지만 우디 윌리엄스는 오직 한 명뿐이라는 글을 트위터에 적어 그를 추모했으며 해병대는 F/A-18 2대, F-35 2대를 보내 '추모 편대 비행'을 해주어 고인의 마지막을 배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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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L. 하워드 육군 대령
미 육군 그린베레 출신으로 사병에서 시작해 대령으로 전역한, 그리고 전역 시 현역에서 가장 많은 훈장을 수여받은 군인이었다. 하워드는 베트남전에 54개월간 참전하는 동안 8개의 퍼플하트[52], 4개의 동성 훈장, 은성훈장, 수훈 십자상, 그리고 명예 훈장을 수훈한 인물이다. 중사 계급으로 MACV-SOG에 소속되어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등 미군이 작전한 거의 모든 전역에 투입되었다. 또한 명예 훈장 수훈 추천을 3번을 전부 다른 작전에서 펼친 활약으로 추천되었으나, 캄보디아에서 비밀임무에 종사하고 있을 때의 전투였기 때문에 처음 2번의 추천은 다운그레이드되어 은성훈장과 수훈 십자상이 수훈되었다. 마지막의 북베트남 전역에서 실종 아군 수색구조 임무에서 헬리콥터에서 투입된 직후 2개 중대에 포위당해 소대장이 부상당하고 자신도 부상당한 상태에서 소대장 위치까지 기어가 응급처치를 한 뒤 낙오된 소대장을 끌고 소대가 위치한 지점까지 끌고 간 다음 구조 헬리콥터가 도착할때까지 항공지원을 받아가며 3시간 반 동안 방어를 지휘해 결국 탈출에 성공했다. 이 공로로 하워드는 명예 훈장과 퍼플하트를 수여받았다. 사망할 당시, 하워드는 가장 수훈한 훈장이 많은 명예 훈장 수여자였다.
헨리 E. 어윈(Henry Erwin) 공군 상사: 추천 후 최단 시간 내에 명예 훈장을 수여받은 인물.
2차 세계대전 당시 미 육군 항공병으로, 1921년 태생이며 1942년에 입대했다. 직책은 육군 항공대 B-29 폭격기의 통신 담당 승무원이었다. 1945년 4월 12일, 폭격기 편대의 선두기에 탑승했는데 표적 표시용 백린연막탄[53]을 투하하라는 지시를 받고 연막탄의 안전핀을 제거하고 낙하산에 매달아 투하하려 했는데, 신관 이상으로 연막탄이 조기격발되어 기체 안에서 터져버렸다. 1100도 불길을 뿜는 연막탄은 제멋대로 움직이며 어윈의 얼굴을 강타했고, 어윈은 그대로 양쪽 눈의 시력을 잃고 한쪽 귀가 타버리고 코가 뭉개지는 중상을 입었다. 그 후에는 백린 연기가 기체 안을 가득 채워 조종사가 자기 앞에 있는 계기판을 못 볼 지경이 되어 추락만 남은 상황이 되었다.
어윈은 이 폭탄을 내버리면 승무원실의 바닥을 녹이고 폭탄창으로 들어가 다른 폭탄들을 유폭시킬 것이라 생각하였고, 이에 불붙은 백린탄을 맨손으로 감싸들고 기체 맨 앞의 부조종사석의 창문으로 향했다. 비행기 중간에서 폭탄을 들고 가던 어윈은 항법사의 책상이 앞을 가로막자 폭탄을 한쪽 옆구리에 끼고 다른 손으로 스프링 잠금장치를 풀고 책상을 밀어재낀 뒤, 양 눈이 멀고 불 붙은 폭탄을 맨손으로 든 상태에서 한 손으로 길을 더듬어가며 마침내 부조종석까지 도달했고, 폭탄을 기체 밖으로 던진 뒤에야 쓰러졌다. 연기가 걷히자 조종사는 비행기가 바다를 향해 다이빙 중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조종간을 당겨 바다 위 90m 지점에서 간신히 비행기를 구했다. 승무원들은 어윈의 불 붙은 옷을 잘라내고, 응급처치를 했으나, 불 붙은 백린은 산소만 있으면 다 탈 때까지 꺼지지 않기 때문에 어윈의 몸에 묻은 백린 조각들은 계속 타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 와중에도 어윈은 의식이 있어서 극심한 고통의 와중에도 도리어 승조원들을 걱정하고 있었다고 한다. 간신히 이오지마까지 도착한 기체에서 어윈은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의사들은 어윈이 아직 살아있다는 데 놀랄 지경이었다.
몇 시간의 수술 끝에 일단 목숨은 건졌지만, 어윈의 상태는 워낙 위중해서 언제 사망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이후 훈장이 수여되기 까지의 상황도 매우 드라마틱한데, 지휘관이던 커티스 르메이 장군은 새벽에 훈장 추서를 요청하는 전화를 자다 깨서 받았으나 상황을 설명받자 그 즉시 명예 훈장을 추천하고, 전속부관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이 용사가 죽기 전에 훈장을 가져 올 것" 을 지시했다. 어윈이 오래 살지 못할 것은 분명해 보였고, 때문에 부관은 하와이의 호놀룰루에 명예 훈장 재고가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 즉시 수송기 편으로 호놀룰루로 날아갔다.
그런데 그 재고라는 게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던 훈장이었다. 부관은 그 박물관의 훈장을 훔쳐서 다시 특별 수송기 편으로 가져왔고, 그 동안 괌으로 후송된 어윈은 4월 19일 괌의 병실에서 훈장을 수여받았다. 놀랍게도 어윈은 이 혹독한 참사로 죽지 않았고, 향후 30개월 동안 41번의 대수술을 받아 시력을 회복하고 한쪽 팔을 쓸 수 있게 되었는데, 후유증으로 상시 선글라스를 끼고 살아야 했다. 이후 1947년 공군으로 전군하여 상사(Master Sergeant)로 장애 제대했다.
전역 이후에는 앨라배마 버밍엄에 있는 재향군인 병원에서 상담원으로 근무하였으며, 2002년에 자택에서 노환으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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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A. 몬수어(Michael A. Monsoor) 해군 하사
1981년 4월 5일생으로, 해군 군사경찰(Master At Arms)로 군생활을 시작해 특전 쪽으로 전과, 2006년 9월 29일에 이라크에서 작전 중 전사했다. Mk.48 LWMG 문서의 맨 처음 사진이 그의 실전 투입 중 찍힌 모습이다. 사후 명예 훈장을 받았으며, 줌왈트급 구축함 2번함 DDG-1001이 그의 이름을 딴 USS 마이클 A. 몬수어 함으로 명명되었다.

* 어니스트 코우마(Ernest R. Kouma) 육군 상사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 참전한 군인이다. 계급은 당시 중사로, 1950년 8월 31일 낙동강 전선에서 M26 퍼싱을 타고 교전하던 도중 다른 보병들은 후퇴하고 그가 탄 퍼싱이 혼자 후미를 지키고 있었다. 곧이어 북한군 보병들이 그의 전차를 공격하였고, 어니스트는 전차포와 기관총을 이용해서 교전했다. 이 때의 교전은 퓨리와 비슷한 수준으로, 북한군이 전차에 올라타자 직접 해치를 열고 기관단총을 쏘거나 포탑을 돌려서 북한군을 쳐 떨어뜨리는 일까지 있었다. 어니스트의 전차는 약 9시간 동안 교전하면서 250여명의 북한군을 사살했다. 어니스트의 전차에서 전사자는 없었다. 이후 1951년 5월 19일에 어니스트를 비롯한 장병들에게 트루먼 대통령이 직접 명예 훈장을 수여했다.
전사 후 피첸바거는 영웅적 행위로 공군십자훈장을 수여받았지만 살아남은 찰리 중대원들과 파라레스큐 전우들은 그 훈장이 그의 행위에 합당한 훈장이 아니라고, 즉 부족하다고 판단하였다. 그들은 피첸바거가 군인으로서 최고 영예인 명예훈장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미국 정부에 끊임없이 요청해 32년 만에 그에게 명예훈장을 추서케 하였고, 그의 부모님이 대신해서 훈장을 수여받았다. 훗날 밝혀진 바에 따르면 당시 미군 내에서는 장교를 중심으로 수여해야 훈장의 권위가 오른다는 잘못된 인식이 강했다고 한다. 그래서 미국에서 오늘날까지도 명예훈장을 받은 공군 사병은 피첸바거를 포함해 모두 3명 뿐이다.
피첸바거가 훈장을 수여하기 까지의 과정을 다룬 영화로 더 라스트 풀 메저가 있다.[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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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페인(Thomas P. Payne) 육군 원사
9·11 테러를 보고 크게 분노하여 2002년 미 육군에 입대, 제75레인저연대에서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작전에 여러 차례 참전한 후 OTC 선발과정을 통과하여 델타 포스 대원이 되었다. 중사 시절이던 2015년 10월 22일 이라크에서 대 ISIL 작전 도중 ISIL이 불타는 건물에 가둬놓은 인질들을 구하기 위해 적의 사격에도 불구하고 건물로 진입하여 인질 37명을 구출하였다. 그가 직접 구출한 인질 37명을 포함하여 그 작전에서 구출된 인질은 75명에 달하며, 이 공로를 인정받아 2020년 9월 11일 명예 훈장을 받았다. # 현재 원사로 계속 델타 포스 복무 중이며, 최근에는 오스틴 스콧 밀러 ISAF 사령관[55] 경호 팀 중에 있는 것이 목격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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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프 퍼켓(Ralph Puckett Jr.) 육군 대령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군인. 한국전쟁 참전 당시 계급은 중위였다. 1950년 11월 25~26일 미 육군 특수부대인 제8군 레인저 중대에서 병력을 지휘하던 랠프 퍼켓 중위는 청천강 북쪽의 전략적 요충지인 205고지 점령 과정에서 중공군에 맞서 활약했다. 작전지 이동 도중 중공군의 공격을 받자 가까운 탱크에 올라 최전선으로 이동했고, 205고지 점령 과정에서 적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자신이 지휘하는 레인저 대원들과 함께 고지 전면 개활지에서 적의 총격을 유도하는 등 용맹하게 활약했다. 이 과정에서 미군과 한국군의 3배에 달하는 중공군의 반격에 퍼켓 중위는 수류탄 파편을 맞고 중상을 입는 부상을 포함한, 3번의 부상을 연이어 입었음에도 대피를 거부하고 작전을 지휘했다. 결국 11월 26일 03시에 자신을 버리고 후퇴하라는 명령을 부하들에게 내렸으나 2명의 부하가 명령을 거부하고 그를 안전지대에 옮기는 데에 성공하여 생존할 수 있었다. 이후 그가 활약한 205고지 점령 작전 역시 성공적으로 완수되었다. 2021년 5월 21일, 조 바이든 대통령이 명예 훈장을 수여했으며[56], 수여식에는 외국 정상으로는 최초로 문재인 한국 대통령이 참석하였다. # 당시 퍼켓 주니어는 고령으로 거동이 힘들어 휠체어를 타고 들어왔지만 훈장을 받기 전 수여 사유를 말하는 2분 50초의 적잖은 시간을 두 다리로, 허리를 곧게 피면서 당당한 자세로 서있는 노익장을 과시했다. 휠체어를 끌던 보조역을 맡던 여장교가 보행보조기를 가져다 놓은 것을 옆으로 치우고 부축을 권해도 그저 미소로 거절했다. 이렇게 서있던 이유는 당시 수여식에 온 두 국가원수에 대한 존경을 표하기 위해서라고. 그래도 고령으로 인해 앞 뒤로 크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지만 바이든 대통령과 여장교가 양 팔을 부축하면서 훈장 수여까지 끝까지 서있을 수 있었다. 당연히 훈장을 목에 거는 순간 현장에서도 우레와 같은 박수로 화답했다.

8.2. 창작물에서

9. 기타

10. 미군의 포상제도 목록

11. 미국의 포상제도 목록

12. 외부 링크


[1] 해병대 해안 경비대 포함 [2] 우주군 포함 [3] Congressional Medal of Honor와 혼용되지만, 정식 명칭은 그냥 명예 훈장이다. 군이 아니라 국가 전체가 인정하는 면을 강조하기 위해 국민을 대변하는 의회가 수여한다고 Congressional이라고 붙인다. [4] "the President may award, and present in the name of Congress", DOD MANUAL 1348.33, VOLUME 1 MANUAL OF MILITARY DECORATIONS AND AWARDS: MEDAL OF HONOR, pp.8. 참조. [5] 과거 외국인을 모병하여 입대와 동시에 시민권을 부여하는 MAVNI 제도가 있었으나, 2018년 이후 사실상 중단되었다. [6] 미합중국 육군, 미합중국 해군, 미합중국 해병대, 미합중국 공군, 미합중국 우주군, 미합중국 해안경비대 중 한 부처. 주방위군으로 번역되는 내셔널 가드(National Guard)도 원칙적으로 미육군과 미공군 소속 예비군이므로 명예 훈장을 받을 수 있다. 대서양 횡단비행으로 유명한 찰스 린드버그도 주방위군 육군 항공대 소속(미주리 주방위군 35사단 110관측대대)으로 명예 훈장을 받았고,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도 2001년 사후 추증이지만 뉴욕 주방위군 소속으로 미국-스페인 전쟁의 참전 공로로 명예 훈장을 받았다. 그 밖에도 주 방위군에서 전쟁에 소집되어 명예 훈장을 받은 사람이 여럿있다. [7] 가장 극단적인 예로 후술할 헨리 E. 어윈 상사의 예가 있다. 만약 어윈 상사가 투하하려던 백린 신호탄이 정상적으로 제조된 물건이었다면 극심한 부상을 무릅쓰고 자기 희생을 해야 할 필요는 처음부터 없었을 것이다. [8] 이 경우 훈장 추천 사유 발생일로부터 3년 이내에 추천되어야 한다는 기간 제한이 뒤따른다. [9] 이 경우 지휘관의 추천 제한 기간을 넘긴 후보자를 추천한다. 미국 NCIS(드라마)에서, 수여 후보자가 게이라는 이유로 지휘관이 추천서를 묻었으나 후보자의 희생이 언론에 보고되자 상원의원 한 명이 직접 추천서를 작성하여 제출하는 장면은 여기에 근거한 것. [10] 실제로 살아서 명예 훈장을 수여받는 사람은 그 사람이 살고 있는 각 주 내에서는 물론이요, 미국 내에서도 살아있는 전설 대우를 받을 정도. 실제로 방송에서 만약 명예 훈장 수여자의 모습이 나오면, 그의 이름이 방송 자막에 따로 표시된다. [11] 예를 들자면 부상을 입었어도 후송을 거부하고 계속 용감히 싸웠다거나, 후퇴하는 아군의 후미를 지키기 위해 혼자 남아 적군과 맞선 것 같이 말 그대로 미군으로서의 '명예'를 지킨 행위를 높게 친다. 비교적 덜 알려진 수여자를 중심으로 보면, 2차대전의 미드웨이 해전 당시 포격으로 중상을 입었음에도 자리를 지키면서 통신시설을 복구하도록 하고 자신은 전사한 조지 캐넌 중위, 타라와 전투 당시 혼자서 여러 일본군 총좌를 파괴하고 그 와중에 총상을 입었음에도 동료 병사까지 구출한뒤 다시 공격을 이어나가다 전사한 윌리엄 보들론 해병 중사, 사이판 전투 당시 큰 부상을 입었음에도 직접 기관총을 잡고 일본군에 맞서 부하들을 지키다 결국 전사한 윌리엄 오브라이언 육군 대령, B-29 폭격기 안에서 백린탄 오발로 기체가 추락할 위기에 처하자 말 그대로 자신의 몸을 태워(!) 동료 전우들과 기체를 구한 헨리 어윈 육군 항공대 상사(수십 차례의 수술 끝에 생존) 등이 그 예이다. [12] 마틴 러스, 《브레이크 아웃》(나남출판) 참조. [13] 미드웨이 해전 중 운명의 5분에 관련된 조종사들의 경우 항공모함 격침이 전술적 목적이었으므로 당연히 해야 할 임무 달성 범위 안이었기 때문에 대단한 무공임에도 불구하고 십자장에 그쳤다고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을 격추한 조종사들 역시 애초부터 야마모토를 잡는 것이 목적이었으므로 십자장에 그친 것이라 볼 수 있다. [14] 장진호 전투의 올리버 스미스 소장 역시 대단히 훌륭히 전투를 치렀지만 결과적으로는 패배였고, 장진호 전투만의 이유는 아니지만 이북에서 완전 철수라는 결과가 뒤따라왔으므로 명예 훈장을 못 받았다고 봐야 한다. [15] 미드웨이 해전의 존 월드런 소령의 경우 공격 이동 중 상관인 링 중령에게 대놓고 항명 및 하극상을 벌였고 이를 모든 부하들이 듣고 있었으므로 무공이 뛰어난 것만 반영하여 십자장에 그쳤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링 중령이 엄청난 관심간부였고 장성 빽을 믿고 안하무인으로 날뛰는 바람에 항공모함 전체에서 경원시되는 인물이었고, 그 '빽'이었던 미처 제독은 링을 보호하려고 보고서 조작을 시도하다가 스프루언스의 분노를 사서 짤렸다, 미처 제독이 사람 보는 눈은 없었지만 능력은 있으니 복귀시키자고 태평양함대 사령관인 니미츠 제독이 건의했음에도 스프루언스는 미처 제독을 계속 불신했고, 1년 넘게 한직을 전전하다가 니미츠가 '전임자인 파우널 제독을 동승시킬 것, 실망스러운 행동을 할 경우 변명 듣지 않고 즉각 지휘권 박탈 및 보직해임'이라는 초강경한 조건을 건 뒤에야 스프루언스의 동의를 얻어 다시 승함할 수 있었을 만큼 제대로 찍혔었다. 다행히 그 전투에서 전공을 올렸기에 망정이었지 안 그랬으면 괘씸죄로 다시는 지휘권을 받을 수도 없었을 지경. 결과적으로 링 중령의 관심간부짓에 항명 안 했으면 일본 해군의 항공모함 4척은 무사히 살아돌아갔을 거라는 것까지 생각하면 미드웨이 해전의 승리를 불러온 항명이었다. [16] 대표적으로 진주만 기습 이후 일본 본토 공습을 가한 돌리틀 중령의 경우, 단순히 보면 본래의 작전계획대로 본토를 공습 성공한 것으로만 볼 수 있지만, 이 공습 자체가 거의 자살특공에 가까운 임무였고, 결과적으로 미국을 결집시키고 희망을 주어 분위기를 반전시켰다는 데 커다란 상징적인 의의가 있으므로 명예 훈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17] 6.25 전쟁 당시 윌리엄 딘 소장의 경우 전투에 패배하고 포로로 잡히는 치욕까지 겪었지만, 후퇴를 최대한 하지 않고 사단장이 직접 진두지휘해서 전차를 격파하는 등 분전한 결과 적의 공세 지연이라는 전략적 목표 자체는 달성하였고, 그 결과 국군이 재정비하고 미군이 투입될 시간을 벌었던 데다가, 당시 사단장이 전사했다고 판단하여 추서 차원에서 명예 훈장을 받았다. 마찬가지로 2차세계대전 필리핀 전역의 조나단 웨인라이트 장군 역시 결과적으로는 패배하여 포로 생활까지 했지만, 맥아더 대신의 희생양으로서 끝까지 분전하여 일본군의 애초 작전계획을 최대한 지연시켰으며, 그 결과 미군에게 시간을 벌어주고 호주로의 공세를 단념시킨 데 공이 크므로 명예 훈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18] 거기에 위기에 처한 전우나 민간인 여럿을 같이 데려오면서 자기가 살아야 할 정도니 살아서 오는 군인이면 그의 무공담을 바탕으로 영화 한 편 정도 만들어도 이상하지 않다. [19] 이 혜택 규모가 미국답게 어마무시한 것 때문에 인터넷에서 최고 무공훈장 태극무공훈장 수여자의 혜택과 비교하며 우리나라의 시궁창스러운 군인대우 정책을 까는 글이 자주 보인다. 실제로 무공훈장을 제외한 다른 훈장은 혜택이 전혀 없으며, 무공훈장조차 수훈시 사후 국립묘지 안장, 항공료 30% 할인, 지정된 보훈병원 사용료 60% 할인이 끝이라 아래에 줄줄히 나열되는 혜택과 비교하면 정말 초라하다. 이것은 대한민국 헌법 제11조 3항에 명시된 "훈장 등의 영전은 이를 받은 자에게만 효력이 있고, 어떠한 특권도 이에 따르지 아니한다." 라는 문구 때문이기도 하고, 훈장 자체가 너무 쉽게 남발되어 훈장의 가치가 바닥을 치기 때문이다. [20] 말이 민간인이지 전쟁에서 이 훈장을 받았다는 건 거의 전쟁영웅이기 때문에 군 입장에선 그야말로 전설급 인물일 것이다. [21] Space-A는 어디까지나 그 근본적 목적이 군사 목적인 프로그램이고, 편의를 봐줘서 이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규정에 맞기만 하면 이용은 가능한데, 군인 우대 항공표를 파는 단체들에서는, Space-A를 이용하다가 표가 취소되거나 해서 문제가 발생해서 휴가 미복귀 손해 같은 상황이 터저도 우린 책임 못 짐. 애초에 이 목적으로 쓰지 말라니까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휴가 목적으로는 진짜 시간 널널하게 주어진 경우에나 써야 함"이라는 설명도 있다. [22] 그냥 군인에게도 좋은 좌석을 넘기는 경우가 많은데 평생 한 번 만날까말까 한 명예 훈장 수여자라면 말할 것도 없다. 오히려 명예 훈장 수훈자한테 1등석 자리를 양보한 적이 있다는 게 주변인들한테 자랑할 거리가 된다. [23] 특히 미국의 사관학교는 상위권 성적도 성적이지만 사관학교 졸업 후 어지간한 전쟁범죄나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이상 영관급 고급장교까지 갈 수 있는 엘리트 코스로 유명하여서 입학하기가 엄청 힘들다. 그런 사관학교를 의지만 있다면 프리패스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24] 이것도 경우에 따라 다르다. 속옷으로나 입을 런닝티 차림에 명예 훈장을 패용해도, 그게 하계 스포츠 행사가 열리는 자리였다면 오히려 '야 저 아저씨 센스 있구나' 하며 박수를 쳐줄 것이다. [25] 애초에 수여자 중 다수는 수여자로 결정되기 전 이미 전사한 경우가 많다. [26] https://www.cmohs.org/recipients/lists/double-recipients [27] 1943년 5월 27일 더글라스 먼로 신호중사가 과달카날 전투에서의 활동으로 훈장을 받았던 것이 해안 경비대의 유일한 수훈 사례이다. [28] 1921년 11월 뉴욕에서 아바나로 가는 배 안에서 실종되었다. 자살했을 것이라는 게 정론이나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다. [29] 정확히는 육군 항공대 소속으로 훗날 공군이 창설되자 공군으로 전군했다. [30] 둘리틀의 진급은 진짜 말도 안되는 수준으로 파격적이었다. 소령에 진급한 지 몇 개월 안 되어 둘리틀 작전에 투입하기 위해서 중령이 되었고 그걸 성공했다고 바로 준장이 된 건데 소령에서 준장으로 올라간 게 같은 나이라는, 실로 괴물같은 고속승진을 한 것이다. [31] 미 해군 함선 중에서 일본계 함명으로는 강습상륙함 이오지마 이후 오랜만에 나오는 사례. [32] 이로 인해 손에 화상도 입었다. 참고로 빈 총 무게 기준으로 15kg이지, 전투시엔 냉각수가 차 있는 데다가 탄띠까지 장전한 상태라 20kg은 가볍게 넘겼다. [33] 아프가니스탄 파견 전, 동두천의 캠프 케이시에서 근무한 주한미군이다. [34] 왼쪽 가슴에는, 상이군인에게 수여하는 퍼플 하트 훈장도 있다. [35] 좌우의 인물은 미국 육군부 장관인 존 매큐와 미국 육군참모총장 레이먼드 오디어노 대장이다. 스웬슨도 굉장한 장신으로 오바마와 키가 거의 같다. [36] 명예 훈장 수여를 알리기 위해 백악관에서 마이어가 일하는 곳으로 전화를 했는데, 마이어 병장은 지금은 현장에서 일하는 중이며 업무 시간에 다른 짓을 하면 수당을 받을 수 없다며 점심시간에 다시 전화하라고 했다. 이에 백악관에서는 그의 점심시간에 맞추어서 다시 마이어에게 통화를 했으며, 통화를 마친 마이어는 다시 일을 하러 갔다고 한다. 후에 백악관에서 열린 수여식에서, 오바마는 이 일화를 언급하며 "내 전화를 받아줘서 감사하다"는 조크를 했다. [37] 해군 십자상, 육군 수훈 십자상과 동일하다. [38] 존스턴과 함께 돌격한 함선은 같은 플레처급 구축함 호엘과 히어만, 존 C. 버틀러급 호위구축함 사무엘 B. 로버츠였다. 이 중 전투 종료까지 살아남은 함선은 히어만 혼자였다. [39] 영화 위 워 솔저스로 영화화되었다. [40] 멜 깁슨이 주연했다. [41] 당시 미군 의무병은 무장을 하지 않았다. [42] 정확히 75명은 아니다. 당시 동료 전우들은 100명 이상이라고 증언하였는데, 이에 반해 도스 본인은 50명도 안 될 것이라며 겸손을 보이자 트루먼 대통령이 75명으로 정했다고 한다. [43] 이 사건에서 이스라엘군이 리버티함의 승조원들 전부를 몰살시키려고 공격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한번에 격침시키려 하였으나 오폭이었던 척 어물쩡 사과하고 구조를 제안한 것인데, 평범한 군함도 아닌 '최첨단 도감청 장비를 갖춘 정보수집함'이라면 이런 속내를 일찍 파악했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이스라엘과 마찰을 빚기 싫은 미국 고위층에서 이를 싹 기밀로 묻어버렸으니 결국 현장 실무요원들만 죽어나갔다. [44] 딘 소장이 유엔군이 붙잡은 공산군 측 최고 계급의 포로인 리학구 총좌와 맞교환으로 귀환했다는 설이 있지만 휴전 협정 과정에서 오랜 진통 끝에 유엔군과 공산군이 원칙적으로 자유 의사에 따라 귀환을 원하는 포로들을 모두 상대방에게 송환하기로 합의를 했었다. 즉 양 측이 포로 인원수 및 계급 등 조건에 따라 포로 교환을 진행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유엔군에서 리학구라는 고위급 장교 포로를 수용하고 있지 않았더라도 딘 소장은 귀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덧붙여 미군 측 기록에도 리학구 총좌와 맞교환에 의해 귀환하였다는 근거자료는 찾기 힘들며 국내에서도 2000년대까지 딘 소장이 리학구 총좌와 맞교환에 의해 귀환했다는 기사 등이 전혀 없었고 2010년대 이후 이런 설이 생겨났다. [45] 개판 오분전의 급조된 파병 부대를 가지고도 지연전을 훌륭히 성사시켰고 수적, 질적이게 불리한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사단장이 몸소 전선에서 싸우는 등 그 공이 결국 포로가 됐음에도 적지 않았다. 더군더나 딘 소장은 인천상륙작전을 알고 있음에도 포로가 된 후 철저히 비밀을 유지했고 결국 한국은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로 남을 수 있었다. 한국 입장에서도 참 고마운 장군. [46] 인스타그램 아이디까지도 chiksdigscars, 즉 여자들은 흉터를 가진 남자를 좋아한다이다. [47] Signalman First Class. 국군에서는 번역시 이 계급을 하사로 보고 있지만 실질적인 위상을 감안하면 중사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하다. [48] 모친 역시 해안 경비대에서 중위로 전역하였으며 'The Hero's Mother', 'Old Lady(여사님)' 등의 별명이 붙었다. 먼로 중사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49] 포로로 살아온게 뭐 대수냐 싶을 수도 있지만…스톡데일의 항목에도 일부 나와있듯이 그는 북베트남의 비인간적인 포로 대우와 선전을 위한 각종 모략에도 불구하고 초인적인 힘을 내어 미군 포로들의 구심점이 되었고 결국 꺾이지 않고 살아 돌아와 미군의 기상을 보여주었기에 그 공이 결코 작지 않았다. 비슷하게 제러마이아 덴턴(Jeremiah Denton)은 눈을 깜빡임으로서 Torture이란 단어를 모스 부호를 통해 북베트남의 비인간적인 포로 대우를 알린 공로로 2등급 무공훈장인 해군수훈십자훈장을 수여받았다. 그래도 이해가 안 가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온갖 고문이란 고문을 다 받고 조국으로 살아돌아왔다고 생각하면 된다. [50] 화염방사병은 일본군 기관총 사수 입장에서 최우선 제거 대상인 걸 고려하면 목숨을 건 초인적인 행동을 4시간 동안 한 것이다. 그것도 일본군이 가장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싸웠던 이오지마에서였고, 4명의 동료들이 같이 투입되었지만 그들이 모두 전사해 홀로 일본군과 맞서 싸워야 했다고. 존 바실론과 맞먹을 정도로 엄청난 그의 행적에 방송 자막에서는 살아있는 전설 (Living Legend)이란 표현을 사용하여 그를 칭송했다. [51] 슈퍼볼 전 인터뷰 영상, 슈퍼볼에서 코인 토스를 하는 윌리엄스 [52] 부상은 14번 당했다고 한다. [53] 선두기가 떨어뜨린 백린연막탄의 연기와 불꽃을 보고 후방에서 따라오던 기체들이 폭탄을 투하한다 [54] 세바스찬 스탠, 새뮤얼 L. 잭슨, 윌리엄 허트, 에드 해리스, 크리스토퍼 플러머 등 대배우들이 열연했다. [55] 밀러 역시 델타포스 출신이며, 육군 대장임에도 불구하고 본인도 직접 M4 카빈으로 무장하고 다닌다. [56] 이때 바이든 대통령이 전화로 퍼켓 주니어에게 훈장 수여를 알렸는데, 퍼켓 주니어는 대수롭지 않게 괜히 야단피우지 말고 그냥 우편으로 보내달라며 털털한 반응을 보였고, 바이든이 야단피울 만한 가치가 있다며 설득한 끝에 수여식에 직접 참여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수여식에는 퍼켓 주니어의 손주 6명도 초대받았는데 미 전역에 흩어져 지낸 탓에 여행준비에 정신이 없었다는 후일담은 덤. [57]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귀국한 직후 1차 대전의 업적을 이유로 대장 진급과 함께 수여받았다. 실질적으로는 롬멜을 갈아버리고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대승을 거둔 전적으로 수여받은 셈, 물론 1차대전기에 캉브레 전투에서 수천 명의 포위된 병력을 구출한 것이나 적 1개 사단을 갈아버린 아미앵 전투 둘 다 명예 훈장을 수여받을 만한 공적도 맞지만 그 직후에 본인이 올린 흑인 장병들에 대한 훈장추천을 상부가 기각한 것에 대한 문제로 참모본부에서 폭력사태를 일으키는 바람에 군사재판은 면했지만 훈장도 못 받았었다. [58] 원 역사와 마찬가지로 더글러스 맥아더 역시 명예 훈장을 받았지만 시기가 다르다. 보너스 아미 사건 시기 즈음 참모총장일 때 우유 원정대 사건에서의 결단으로 미합중국의 명예를 지켰다는 이유지만, 우유 원정대 사건은 미국 정부에게 있어서 치욕적인 사건이기에(멀쩡한 참전용사들을 빨갱이라고 보고했다며 군 정보부의 관계자들 상당수가 군사재판에 회부되기까지 했다) 명목상으로는 1차대전의 군공으로 받은 것으로 대장 전역과 동시에 명예 훈장을 수여받았으며, 그 이후에는 민간 정치인으로 캔자스 주 상원의원을 거쳐 FDR 거국 내각의 전쟁부 장관직에 오른다. [59] 위에서 설명했지만 미군 소속이 아니라 원래라면 수훈을 못 받는다. [A] 2번 받는다. [A] [62] 월남전 참전 활약으로 한 번, 베트남에서의 인질 구출 임무로 또 한번 추대된다. [63] 이쪽은 무려 3개나 수여 받았다는 설정이다 [64] 이 사람은 대대도 아니도 중대 하나와 대대의 지원만으로 소련군의 공세를 막고 미군의 반격을 모두 해냈다. [65] 미국이 멀쩡히 존재하는 3D 스토리 한정. 최종 미션을 클리어하면 명예 훈장을 수여받고, 덤으로 미국의 부모들이 블라즈코웍즈의 이름을 따서 아이 이름을 지으며 영화배우와 사귀는 영웅이 됐다는 메시지가 나온다. [66] 어떤 한 부하군인의 의도치 않는 성차별 발언을 딛고 희생과 헌신 섞은 큰 공헌을 세웠다. [67] 제29보병사단 예하 166연대 소속 에이블 중대, 제101공수사단 소속 폭스 중대 등 여러 부대들을 이끌고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성공시키고 팔레즈 포위전에서 후퇴하는 독일군 300명을 사살하는 등 서부전선에서 미군의 승리를 이끈 공로로 받게 된다. [68] 2차대전 참전용사인 80세 노인으로, 퇴역 해병대 상병(Corporal)이다. 배우는 찰스 더닝(Charles Durning, 1923.2.28–2012.12.24). 시즌 2 에피소드 7, "Call of Silence"에 등장하며, 해당 에피소드는 요스트가 2차대전 당시 전투중 아군을 죽였다고 자수, 처벌을 요구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러나 그게 언제인지도 기억을 못 하고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여서 그냥 좋게 끝내려 했지만, 군대식으로 인식번호를 물어보니 군대식으로 바로 답을 하고, 해군장관이 요스트가 보낸 편지를 읽는 등 상황이 들어맞자 하는 수 없이 체포하려고 해군 법무소령 페이스 콜먼(Faith Coleman)이 해병대 헌병 둘을 대동하고 출동해 규정대로 수갑을 채우려 했는데, 수사관 앤소니 디노조가 콜먼과 케이트간의 실랑이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요스트의 넥타이를 옆으로 넘겨 명예 훈장을 보여준다. 그것을 보자마자 헌병들은 (착모중일 때에 한해 경례를 한다는 규정에 따라)바로 직립부동 자세로 경례했고 콜맨 소령은 (실내라서 정모를 벗고 있었기에 경례를 대체하는)부동 자세를 취했다. 당연히 수갑 착용도 면제받는다. 요스트가 살해했다고 자백한 전우는 이오지마 전투에서 전사한 동료 해병으로, 죽기 직전 지뢰를 밟아 두 다리가 날아가서 고통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고 마침 일본 육군 야습을 위해 바로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대원들을 살리기 위해서 어쩔수 없이 동료 해병의 입을 막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 과정에서 죽었던 것이다. 깁스가 기지를 발휘해 일본 육군 출신 참전자 노인을 데리고 와서 맥기를 시켜서 준비한 영상과 성냥들을 계속 태움으로 유황냄새를 풍기게 함으로, 재연을 통해 일련의 상황들이 요스트의 입에서 나오게끔 유도하여 무혐의로 종결된다. 설령 기소됐다 한들 명예 훈장 수훈자를 우대하는 특성상 법정에서 알아서 긴급 피난 등 위법성 조각 사유를 들거나 해서 무죄 판결해줬을 것이다. 그 일본인 노인은 근처 일식집 주방장이었는데, 사건 이후 요스트가 그 노인의 일식집에 와서 뒤풀이를 하며 다시 만난다. 일본인 노인은 이오지마 전투에 참전한 것은 아니고 과달카날 전역에 참전했다며 요스트에게 건배를 제의한다. 이를 알게된 요스트는 미소를 지으며 술잔을 받는데, 본인 역시 과달카날에도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요스트 본인이 수십년간 말하지 못했던 진실을 이야기하고, 법정에서 당당하게 무죄까지 받아 마음의 짐까지 덜며 훈훈하게 마무리됐다. [69] 배우 찰스 더닝 또한 2차대전 참전용사로 육군 사병으로 복무했으며, 노르망디 상륙 작전, 벌지 전투에 참전했고 전공으로 은성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 2012년 89세로 사망했고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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