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3-11-23 00:45:24

대학수학능력시험/사회탐구 영역/국사

파일:Semi_protect2.svg   가입 후 15일이 지나야 편집 가능한 문서입니다.
(~ KST )

사회탐구 영역 선택 과목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7차 윤리 한국
지리
경제
지리
세계
지리
국사 한국
근·현대사
세계사 경제 법과
사회
정치 사회
·
문화
'09
개정
생활과
윤리
윤리와
사상
한국
지리
세계
지리
한국사 동아시아사 세계사 법과
정치
'11
개정
한국사 영역
(필수 영역화)
'15
개정
정치와
'22
개정
통합사회
}}}}}}}}} ||

1. 개요2. 상세
2.1. 특징 및 난이도2.2. 기출과 공략법2.3. 국사는 진짜로 부담스러운 과목인가?
2.3.1. 6차 교육과정2.3.2. 7차 교육과정
2.4. 등급컷의 변천역사2.5. 유명한 인터넷 강의 강사들

1. 개요

7차 교육과정이 적용된 2005 수능~ 2013 수능 시기에 존재하였던 사회탐구 영역선택 과목 시험으로서의 국사에 대해 다루는 문서다. 해당 시기의 교과목 자체에 대한 내용은 한국사 문서의 7차 교육과정 문단을 참조하기 바란다.

2. 상세

단순 암기량만 놓고 보면 세계사가 국사에 비해서 많지만, 세계사는 큼직큼직한 주요 개념 위주로 문제를 출제하는 데 비해 국사는 더 세밀한 부분에서 출제하는 경향이 있다. 대충 공부했다간 작정하고 낸 지엽적인 문제에 등급이 떨어지며, 간단히 요약하자면 국ㆍ영ㆍ수(당시 기준으로는 언수외)와 동급 분량이 하나 더 늘어난다고 보면 된다.

교과서는 국정교과서로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교과서를 전국 공통으로 사용한다. 국사 과목을 선택하기로 마음 먹었으면 적어도 이 교과서를 각주나 심화학습 자료를 중심으로 읽어보는 게 좋다.

국사 선택자들은 대개 문화사 부분을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대부분 학교에서 정치사~사회사까지만 나가면 대충 1년이 끝나기 때문에 진도를 못 나가기 때문이다. 정작 문화사를 공부해보면 시험에 나오는 유물이나 사상이 계속 나오는 걸 알 수 있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 부터 들어봤던 문화재들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동안 묻지 않던 서예사, 음악사까지 출제해 수험생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고 있다.

국사 공부는 암기, 역사적 감각이 병행되어 근성을 발휘해야 한다. 특히 문화사는 더더욱 암기가 필수적인 부분이다.

국사는 수능 체제의 가장 큰 피해자인데 중요한 것은 이미 다 물어봤던지라 이제는 그냥 점수만을 위한 시험으로 구성되면서 점점 이미지와 난이도가 산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국사(현재의 한국사)의 경우 옛날이나 지금이나 기본 6시수 편제인데 (교과서 처음부터 끝), 보통 2년 편제로 잡아두나 집중이수제를 시행하는 학교의 경우 주당 5~6시간 수업으로 한 학기만에 끝내야 한다.[1]

2.1. 특징 및 난이도

2003년 수능까지는 한국지리, 사회문화를 제외한 일반사회와 함께 사탐 필수과목으로서 문과 이과 예체능에 상관없이 모든 수험생들의 두통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주범. 특히 한국지리와 연동되어 지도 하나 던져주고 콕 찍어 "여기 특산물이랑 지형, 중요 역사적 사건 맞춰봐라" 는 식의 퓨전 문제가 많이 나왔다. 2004년 수능부터는 인문계열의 선택 과목 중 하나로 밀려났으며 사탐 중에서는 메이저 사탐을 제외하고는 꽤나 고정 수요가 있었던 과목이다. 다만 문제의 난이도에 비해서 1등급 컷은 상당히 높은 게 특징인데 이게 다 서울대학교 때문이다. 서울대학교에서 서울대를 지원하려는 인문계열 학생들에게[2] 국사를 사탐에서 필수과목으로 지정해놓았기 때문에 서울대를 지망하는 학생들이 선택을 하다보니 역덕후+서울대 지원 인재 크리로 등급컷은 높아지기만 하고 만점을 받아도 다른 과목보다 표준점수가 낮다. 덕분에 문과 고등학생들에게는 고위층의 사치 취급을 받으며 2학년 중반까지만 해도 선택률이 괜찮은 편이나 시간이 지나며 모의고사를 칠 때마다 점수는 조금씩 오르는데 석차는 떨어지는 괴현상 때문에 선택률은 갈수록 점점 감소한다. 게다가 고등학교 3학년 때 그나마 국사를 선택했던 사람들도 모의고사 문제 등을 풀면서(특히 악명 높은 ebs 시리즈) 기존 학교 시험 따위는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리는 난이도에 피를 토하며 결국 중간에 때려치게 되고 수능이 가까워질수록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부유물들이 다 떨어져 나가면서 예비 서울대생과 역덕후들과의 치열한 혈투가 전개되는데. 즉, 진짜 액기스들만 남아서 스타워즈, 그야말로 별들의 전쟁이 펼쳐진다. 국사 좀 할 줄 안다고 깔짝대면 그저 양민학살 당할 뿐.

그렇지만 사실 국사는 다른 과목에 비해 표준점수도 잘 안 나오기 때문에 꼭 1등급을 받아야 할 필요는 없다. 3~4등급 맞고도 서울대 가는 사람들도 꽤 있다. 물론 언수외를 잘 봐야겠지만. 즉, 서울대 갈 사람들은 어차피 다 같이 국사 선택자기 때문에 큰 불이익이 없고 연고대 이하는 사탐을 3과목만 반영하기 때문에 국사 빼고 다른 3과목 잘 보면 돼서 이것 때문에 피해보는 일은 드물다.

최근에는 국사 기피 현상을 감안해서인지 매년 교과서를 개정할 때마다 조금씩 내용을 빼고 있다.[3].

이 과목을 제대로 공부했다면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주관하는 인증시험인 '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을 좀 더 수월하게 볼 수 있고( 한국근현대사를 병행했다면 별도의 공부가 필요없이 3급 정도까진 무난하다.[4] 2008년 문제 기준으로는 2급 정도까지 가능했으나 2009년 2급 시험의 난이도가 대폭 상승했다. 이게 다 국가고시를 개별적인 국가공인시험으로 대체하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나중에 공무원 시험 등에서 출제되는 한국사 시험을 공부할 때 맨땅에 헤딩할 필요는 없게 된다.

그래도 역사과목이라는 특성상 한 번 제대로 공부해두면 정작 수능날 배신당하는 사태가 벌어지지는 않는다. 일반사회 과목과는 대조적인 특징.

2007년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역사 과목들에 수정이 이루어져 중학교의 경우 국사 과목은 해체되고 기존에 사회 과목 속에 들어있던 세계사 내용들이 넘어와 묶이면서 역사로 과목명이 바뀌었다. 중학교 때 전근대사를 배우고 고등학교 1학년 때 근현대사 위주로 통합된 역사 교육을 받으며 인문계 학생일 경우 2, 3학년 때 동아시아사와 세계사 중 1개를 선택해 배운다.

또한 고등학교의 경우 한국근현대사 과목과 통합되어 한국사로 과목명이 변경되었다.[5] 사실 국사란 명칭 자체가 국가주의적 관념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는지라. 중학교 역사 과목 중 한국사 파트는 전근대의 한국사 내용을 다루는 데 비해[6] 고등학교 한국사 과목은 내용의 2/3가 근ㆍ현대사이며 세계사ㆍ동아시아사와 연관하여 다루고 전근대사 부분은 대략적으로만 서술한다.

한때 국사-한국사가 필수과목에서 해제되는 것을 놓고 큰 논란이 있었으나 여론에 힘입어 2012년도부터 다시 필수과목으로 변경되었다. 그런데 이는 교육과정 체제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원래 7차 교육과정과 7차 교육과정을 개정한 2007 개정 교육과정[7]까지는 고1까지를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 기간으로 설정하고 국사를 고1 때 배우도록 편제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당선 직후부터 추진된 2009 개정 교육과정[8]부터는 이 공통기간을 중3까지의 9년으로 축소했다. 이에 따라 이전 국사 과목의 계승자인 한국사 역시 당연히 필수에서 제외된 것이다. 이는 고등학교 1~3학년의 전 기간을 수요자 중심(학생)의 선택 체제를 지향하는 2009년 개정 교육과정의 특성상 측면이 있었다. 물론 한국사는 1년만에 필수 과목으로 지정되었다. 이는 2009년 개정 교육과정에서 유일하게 고등학교 필수 과목으로 지정된 단일 과목이다.

2.2. 기출과 공략법

교과서에서 중요한 부분들을 외우고 시작해야 한다. 교과서에 없거나 인지 못할 정도로 세세한 부분에 담겨있는 개념이 생각 외로 자주 나온다. 중요 개념을 학습한 다음 모의고사나 여러 시험을 통해 짜잘한 개념 익히기에 나서야 한다. 중학교 때는 정치사 위주로 배웠으나, 고등학교 올라와서는 분야별로 더 깊이 있게 들어간다.

예를 들어 나선정벌은 고등학교 교과서에는 없으나 중학교 교과서에는 있다. 이 말인 즉슨 나온다는 소리. 감은사지 3층 석탑이나 안동 이천동 석불 등은 교과서에는 없지만 출제될 만한(그리고 모의고사와 수능에서 출제된 적도 있는) 사료이니 확인해 볼 것. 아니 애초에 교과서에는 각종 관직들이 하는 일이 거의 서술되어 있지 않다. 예를 들어 2008학년도 수능 11번에 출제된 '고려의 법 제정 기관인 식목도감의 경우 당시의 현행 교과서에는 '도병마사와 함께 재신과 추밀의 합의 기구' 라는 점 정도로만 서술되어 있다.

2010년 고3 3월 모의고사에서는 종묘 사진이 출제되었는데, 교과서에 없는 사진 같지만 있는 사진이다. 어디 있는지 찾아보면 웃음만 나올 것이다.[9]

또한 연계로 인해 학생들이 필수적으로 사용하는 수능특강, 파이널 모의고사 등에도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내용과 자료들이 상당수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기본 개념을 요약해 놓은 쪽의 옆에 달린 주도 은근 자주 나온다.

요즘에는 유물, 사상 자체보단 유물 사진이나 관련 사료를 제시하고 당시 시대상(정치, 경제, 사회)을 묻는 유형이 유행한다. 가령 무신정권기와 상감청자의 연관이나 유명한 인물들(정약용, 퇴계 이황, 송시열 등)이 쓴 책의 문구를 하나 던져주고 알맞은 시대 상황 찾아내기 정도는 되어야 국사에서 어느 정도의 점수는 보장할 수 있다.

최근에는 단순히 교과서에 나온 개념을 물어보기보다 평소에는 중요하게 봐두지 않은 지엽적인 부분이나 교과서에 없는 응용 사료나 지도 등을 내서 교과서 개념을 토대로 해석하게 하는 문제가 조금씩 나온다.

다만 말장난으로 학생을 넘기려는 문제 같다면 조금 단순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충주 항목에 수록된 국사 문제, 2009년 9월 모의고사 고려청자 문제 보기 등이 이에 해당한다.

꾸준한 노력 덕에 모의평가나 수능에서 정답률이 50% 근처를 왔다갔다 하는 문제들이 조금씩 나온다. 게다가 '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이 등장한 후 왠지 문제들이 검정시험 형식화 되어가는 것 같다.

근현대사 내용이 별도 단원에서 각 단원 내부로 스며든 교과서를 공부한 학생들이 응시한 2009년 수능부터는 그동안 출제되지 않던 한국근현대사 부분에서도 1~2문제 가량이 출제되며 출제분량을 더욱 증가시켰다. 이러다 보니 사실상 국사 응시자들의 상당수가 근현대사도 같이 응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상대적으로 쉽게 느껴지는 정치사는 변별력을 맞추기 위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단순히 하나의 시대나 주제로 내는 문제 대신 정치 상황 등을 주고 그 당시 사회, 경제, 문화계의 동향을 물어보는 것 같은 단원 통합형의 문제가 서서히 늘고 있다.

6월과 9월에 치르는 평가원 모의고사는 수능보다 더 지엽적인 부분에서 문제를 내는 경향이 있었으며 분명히 교과서에 있는 내용이 90% 이상이지만 체감 난이도가 최상이 되는 문제가 간간히 출제된다. 1줄이나 1단어씩 나와있는 걸 시험마다 출제하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현상. 물론 이래저래 읽고 꼼꼼히 공부하면 답을 추려낼 수 있긴 하지만 단어 하나 잡아내서 답을 찾아내는 식의 문제가 계속 나오는 건 확실히 다른 과목과 비교해서 비정상적인 현상이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보단 난이도가 어렵다.

윤리에서 고난도 문항으로 자주 나오던 이기론과 관련된 내용이 여기서도 나온다. 다만 윤리와는 달리 실제로 문제로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2.3. 국사는 진짜로 부담스러운 과목인가?

2.3.1. 6차 교육과정

국사 과목이 진짜로 부담스러운 과목이라는 말이 많지만 한때 문과에서는 공부를 잘 못하는 학생에게 최후의 수단으로 권하는 과목이었던 적도 있었다. 또한 이과 및 예체능 계열 학생들에게도 공통사회 중 가장 친숙한 과목이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6차 교육과정의 수능 체제를 알아야 하는데, 당시 수능에서는 원서접수 시 인문계/자연계/예체능 중 한 계열을 선택해서 접수를 했다. 모든 과목은 계열별로 채점을 해서 등급과 표준점수, 백분위를 매겼다. 국어와 영어, 제2외국어[10]는 채점만 계열별로 할 뿐 같은 시험지로 시험을 보았고(현재와 같은 선택형이 아니었다는 것), 수학과 탐구는 문과/이과/예체능별로 각각 다른 시험지를 풀었다.

그런데 당시 탐구영역은 사과탐이 통합되어 있어서[11], 계열예 관계 없이 공통사회와 공통과학은 전원 필수였다. 예체능은 이 공통범위만 시험을 보고, 문과는 공통사과탐에 사탐 심화과목[12]을 1개 선택하고, 이과는 공통사과탐에 과탐 심화과목[13]을 1개 선택하는 것이었다.

이 중 공통사회는[14] 윤리, 한국사, 한국지리, 일반사회(정치, 경제, 사회문화 과목의 기본적인 개념들)[15]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런데 국사 과목은 비록 분량이 많다고는 하지만, 이 내용을 초등학교 때부터 계속 배워온 내용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생각만큼 분량이 감당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국사 파트에서 만점 및 최상위권 득점을 욕심내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 공부를 한 학생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내용을 위주로 시험에 나왔던 데다가[16], 지금과는 달리 외우는 걸 잘 못 했더라도 주어진 자료에서 힌트를 찾아 추론만 해도 대충 찍어서 맞출 수 있는 수준으로 출제가 되었기 때문에 부담을 크게 가질 필요가 없었다.

따라서 이 때는 공부를 포기하다시피한 문과 하위권뿐만 아니라, 사탐에 많은 시간을 들이기 힘든 이과와 예체능 학생들에게도 국사는 상당히 선호도가 높았었다.

2.3.2. 7차 교육과정

전국의 학생들이 공통과목에 한해서는 다같이 시험을 봐야만 했던 6차와는 달리, 7차에 들어오면서 탐구영역 제도에 많은 대격변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 변경된 제도는 200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부터 적용되었다. 첫째, 사탐과 과탐이 분리되어 이제부터 문과는 사탐만을, 이과는 과탐만을 치게 되었다. 둘째, 더 이상 평가원 측에서 강제로 필수 지정하는 과목은 없어지고, 탐구영역 과목 선택은 오로지 학생의 자유에 맡겨지게 되었다. 이는 곧 국사 과목에 과거로부터 존재해왔던 수능포기자들과, 사탐에 상대적으로 시간을 많이 쓸 수 없는 이과생 및 예체능계 학생들이 증발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서울대가 국사를 선택과목에 넣어야만 원서를 쓸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게 되었는데 다른 대학들 중에는 국사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한 곳이 단 한 군데도 없었기 때문에, 국사에는 서울대를 지망하는 상위권 학생들이 필연적으로 몰리게 되었다.

그런데 평가원은 이러한 입시환경의 변화를 제대로 캐치하지 못한 채, 2005 수능 국사를 과거 어중이떠중이가 다 모이던 시절과 같이 쉬운 난이도로 내는 오류를 범하고 만다. 이 때문에 국사는 1컷이 50점 만점이 되어 버리고, 2컷이 48이 되는 사태가 일어났다[17]. 결국 평가원 측은 그 이후로 국사 과목의 난이도를 점점 올리게 되었다.

물론 지금도 생각없이 무조건 외우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점수를 획득할 수 있는 과목이기는 하다. 이해력과 독해력, 분석력이 낮은 하위권 문과 학생들에게는 그나마 일정 점수까지는 노력과 근성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과목이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가 두꺼운 이유는 초등학교(엄밀히 얘기하자면 4학년 2학기 때 배운 옛 도읍지와 문화재, 5학년 2학기 때 배운 고조선과 삼국의 건국 이야기, 6학년 1학기 사회책 전체 내용)에서 배웠던 내용부터 중학교(중2ㆍ중3)ㆍ고등학교에서 새로 배우는 내용까지 모두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 수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생각없이 외워야 하는' 범위가 매우 넓고 깊으니까 문제. 그리고 그것들을 일일이 외운다고 해서 시험에 나올 거란 보장도 없다. 그렇게 자세히 파고들어갈만한 파트가 한 두 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교과서 자체도 위에서 언급된 대로 마개조당했기 때문에 심지어는 중학교에서까지 부담스럽고 어려운 과목으로 통하게 된 것이다. 더구나 집중이수제가 시행되었던 세대들의 경우, 집중이수제로 인해 크고 아름다운 책을 한 학기에 다 떼어야하는 참사를 겪느라 국사를 기피하게 된 측면도 있다. 문제는 한 학기에 국사를 집중이수제로 끝낼 경우, 특히 1학기에 걸리면 최악의 참사는 이미 예정된 현실이었다는 것.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3월과 온갖 잡다한 행사가 다 들어 있는 5월을 날리고 나머지 기간 중에 크고 아름다운 책을 다 떼어야 하니 정상적인 수업이 될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서울대학교에서는 2004년 이래로 국사를 필수 선택과목으로 계속 지정해버리는 바람에 수능 선택과목 국사 선택자는 나날이 줄어들고, 문제는 나날이 쪼잔해지고 산으로 가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2.4. 등급컷의 변천역사

2009학년도 대수능 9월 모의평가에서 1등급 예상 컷이 42점까지 내려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교과서 외의 사료들을 극악처럼 꼬고 기원전 4000년경만 주고 신석기 시대를 추론하여 그것에 대한 정확한 이해까지 요구하는 문제를 까지 요구해서 많은 학생들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했다. 그러나 본수능은 1등급 컷 47점으로 비교적 평이하게 출제되었다.

이어 2010학년도 대수능 9월 모의평가에서 1등급 예상 컷이 45까지 내려가는 초유의 사태가 발발했다. 원인은 18번으로 교과서에 4줄 나와있는 불교 신앙을 맞추지 못한 수많은 학생들이 쓸려갔다. 그나마 1줄 나와있는 신앙의 성격을 안 외웠으면 못 푸는 문제(정답률 13%). 인터넷 강의에서 이름을 날리던 모 강사가 이전부터 오답으로만 나온다고 했다가 사과하는 일도 벌어졌지만 수능에서 나온다고 해도 오답으로만 나올 것이라고 여전히 신념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나오지 않았다. 수능보다는 지엽적인 걸 물어보는 평가원 모의수능 특성 때문에 벌어진 해프닝이였다.

이어진 2010학년도 수능 1등급 컷은 44이다. 조선 관직 관련 문제인 6번의 경우 주석 중 1줄에서 정답이 출제되었다. 실제로 교과서 날개 주석부분(교과서 97페이지 오른쪽)에 들어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뭇 학생들이 시험을 보고 망연자실했다. 그런데 이 문제는 모 사이트의 통계에 따르면 반 이상이 맞춘 것으로 추정된다. 뛰는 출제위원 위에 나는 역덕후들 또한 18번 문제는 명종 재위기간에 일어난 일을 고르는 문제로 정답이 교과서 160페이지 맨 마지막 줄에 있었다는 것을 과연 누가 알았을지 의문이 들 정도. 그렇지만 이것마저 정답률이 높다. 역시 서울대와 역덕후의 위엄은 장난이 아닌 것이다.

2011학년도 수능 등급컷은 45. 그럭저럭 평범하게 서술되어있는 곳에서 출제되었지만 정답률 20%[18]의 귀향형 문제가 출제되어 다시 한 번 국사 과목의 위엄을 보여줬다.

그리고 2013학년도 대수능 6월 모의평가에서 사상 최악의 불쇼가 펼쳐지는데... 드디어 국사 1등급 컷이 37점, 만점자가 15명이라는 희대의 사태가 벌어졌다.[19]특히 9번 문제는 지도를 직접 그릴 수 있는 정도까지 외우지 않으면 짤없이 틀릴 수준의, 차라리 학력고사에 가까운 문제였다. 10%대의 정답률을 자랑했던 16번 문제도 교과서 날개에 있는 글에서 살짝 나오는 인명까지 숙지해두어야 풀 수 있는 문제였다. 앞서 국사 선택자들이 얼마나 국사를 열심히 공부하고 시험을 치는지 서술한 바 있기에 이런 국사 선택자들을 대상으로 이런 헬게이트를 시전할 정도로 문제를 만들 수가 있냐는 반응이 대다수다. 애초에 국사 선택자들은 진정한 역덕후를 제외하면 서울대학교를 지망하거나 지망했던(즉, 지망했었으나 포기해버렸는데 사탐 바꾸기는 그래서 그냥 국사시험을 보는 이른바 '국포자') 사람들이기에 이들을 상대로 1컷 37점을 만들어버렸다는 것은 다른 과목이 이 난이도였으면 충분히 30점대 초반, 심지어는 20점대 후반까지도 만들어버렸을 정도라고 해도 이견의 여지가 없다. 국사 덕분에 2013학년도 대수능 6월 모의평가는 문과에서 언수외탐 2과목 만점자까지는 좀 있으나 언수외탐 3과목 만점자가 없다. 그야말로 난이도 조절 대 실패. 이후 치러진 9월 모의고사에서는 1등급 47점으로 다소 평이한 난이도로 출제되었으며 수능때에는 적당히 난이도 조절을 하여 1등급 컷이 45점으로 나왔다.[20]

2.5. 유명한 인터넷 강의 강사들


[1] 중간고사, 기말고사 시험 범위가 약 200페이지씩이다. 이시절만큼은 아니지만 2015 개정 교육과정의 선택과목 체제 전환으로 인해 1년 편제로 운영하는 학교가 거의 다수다. [2] 참고로 4선택 시절은 아니지만 3선택 시절 이공계는 골 때리는 112가 있었다. 뭐냐하면 과탐 3과목을 모두 반영하는데 3과목중 II과목(물II/화II/생II/지II)이 꼭 하나 있어야 하며, II는 I과목(물I/화I/생I/지I)과 같은 계열의 과목이 겹치면 안 된다. 여기에 II는 무조건 1개. (2개/3개도 안된다) [3] 그래도 그 차이는 근소한 수준. [4] 수능 기준으로 2등급 안쪽이면 지금의 한국사검정시험 난이도 기준으로는 1급도 무난하다. [5] 정확히는 2007 개정 교육과정이 처음 발표될 때까지만 해도 중학교의 연장선상에 있는 과목이니까 그냥 '역사'라는 과목으로 만들어져 있었으나, 교과목 표만 본 많은 일반인들이 고등학교에서 국사가 사라졌다고 하도 난리를 치는 바람에 부랴부랴 2009 개정 교육과정 총론을 발표하면서 교과 내용은 그대로 둔 채 한국사라고 교과명 간판만 바꿔 달았다. 덕분에 이 교과서에는 이름은 한국사인데 세계사에 해당되는 중단원들이 배치되어 있고, 동, 서양사 전공 저자들도 저술에 참여하였다. [6] 이전에는 중학교 국사에서 정치사 위주로 배우고 고등학교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분야로 나눠 더 깊이 있게 들어가는 방식이었다. [7] 2007년 발표된 4차 부분 개정 교육과정. [8] 2009년 12월 총론 및 일부 교과의 각론이 발표되고 이어서 2011년 8월에 나머지 교과의 각론이 발표된 5차 및 6차 개정 고시된 것. [9] 문화 단원의 표지, 연표랑 같이 있는 부록에 나온다. [10]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제2외국어를 반영하는 이과는 거의 없으므로, 이과생들은 보통 시험을 치지 않는다! [11] 이름도 사회탐구·과학탐구영역이었다. [12] 세계지리, 세계사, 정치(당시 이름은 그냥 '정치'였으나 실제로는 현행의 정치와 법과 구성이 비슷함), 경제, 사회문화 [13] 물리II, 화학II, 생물II, 지구과학II [14] 참고로 공통과학의 내용은 개정 전 7차의 물화생지I과 거의 똑같다. [15] 2013~2021년 사이의 9급 공무원 일행직 선택과목으로서의 사회 과목과 구성이 얼추 비숫하다. [16] 한국사 응시인원이 대부분 상위권인 현재와는 달리, 전술한 바와 같이 전국 학생들이 누구나 시험을 치는 과목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단순히 수로만 따지면 중하위권이 더 많으니까. 등급컷이 적절히 조정되므로 지금처럼 문제를 굳이 변태스럽게 꼴 필요가 없었다. [17] 한편 6차 수능에서 전국 학생들의 필수 과목으로 지정되었던 윤리와 한국지리에선 아예 2등급 블랭크가 발생했다. [18] 5지선다의 출제형식을 감안할 때 맞춘 학생들도 찍어서 맞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얘기다. [19] 여담으로 당시 2등급 컷은 원점수 기준 30점, 3등급 컷은 22점이었으며 평균 점수는 사과탐을 통틀어서 제일 낮은 점수인 15.8점이었다. 참조 [20] 하지만 당시 사탐 과목중 표준점수 최고점이 두번째로 높은 74점이었으며 6평때보다는 덜하지만 그래도 만만찮았다는 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