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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학전문학교 본관 (現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본관. 사적 제442호) |
대구광역시 중구청 블로그 참조
1. 개요
大邱醫學專門學校 (대구의학전문학교, 줄여서 대구의전)1933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의학전문학교로 인가된 구제전문학교이다. 당시 경북도립 대구의원에 부설되어있던 도립의학강습소를 모체로 창설되었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에서 단과대학인 대구의과대학으로 개편되었다가, 경상북도의 국립종합대학인 경북대학교가 설립되면서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으로 흡수되었다.
2. 역사
2.1. 태동
1910년 한일합방 후 대구동인의원이 공립 대구자혜의원으로 개편되었다. 이후 1923년 4월 평양자혜의원의 평남도립 의학강습소 설치에 대응해 대구에서도 대구자혜의원 내부에 사설 의학강습소가 1923년 7월 발족하여 1924년 4월 1일 경북도립 의학강습소로 공립 이관되었다. 1925년 4월 1일 대구자혜의원이 경북도립 대구의원으로 개편되며 의학강습소도 경북도립 대구의원 부속 의학강습소가 되었다.1926년부터는 의학전문학교와 마찬가지로 4년제 형태를 취했다. 이때부터 대구의전 설립 추진이 본격화되는데, 마침 경성제국대학 의학부가 개강함에 따라 실습 병원이 사라진 경성의학전문학교가 이전한다는 소문이 돌아 대구에서 유치전에 나섰다. 그러나 총독부의 유아사 구라헤이(湯浅倉平) 정무총감은 경성과 평양의 의학전문학교로 충분하다는 견해를 피력하여 대구의전 설립운동은 좌초하게 된다.
화재로 소실됐던 경북도립 대구의원의 새 건물이 1929년 준공되면서, 대구의학강습소도 비로소 의학전문학교 못지 않은 실습 병원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1929년 7월 평남도립 평양의학강습소가 총독부의 인가를 받자, 대구에서도 적극 나서 1929년 12월 6일 대구의학강습소가 조선총독부의 인가를 받았다. 이어 1930년 3월 총독부의 인가를 받은 의학교로서, 평양의학강습소와 대구의학강습소는 조선내에 한정해 통용되는 의사 자격을 제2회 졸업생들부터 부여하기 시작했다. 대구의학강습소 시기 졸업생은 제1회 29명, 제2회 29명, 제3회 11명, 제4회 14명 등 총 83명이었다.
2.2. 정립
1933년 3월 공립학교 관제 개정에 따라 조선총독부는 평안남도 도립 평양의학전문학교와 함께 경상북도 도립 대구의학전문학교를 인가하여 대구의학전문학교가 개교하였다. 1933년 11월 경북도립 대구의원 길 건너편의 부지를 구입하고 본관(현재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본관)을 비롯한 시설을 갖추었다.[1]구제전문학교인 의학전문학교 승격 당시의 교직원 구성은 교수 16명, 생도감(生徒監) 1명, 조교수 4명, 서기 1명, 강사 8명, 조수 6명 등이었으며 재학생 수는 한국인 76명, 일본인 177명 등 총 253명에 달하였다. 당시 고등교육 전반과 마찬가지로 전문기능에 속하는 의료요원 교육의 기회 취득에 있어서도 소수집단이었던 일본인이 거의 2배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의학전문학교로 개편된 뒤 1933년 3월의 졸업생은 조선인 16명, 일본인 49명이었으며, 시간이 갈수록 일본에서 대구의전의 입학시험에 응시하는 학생 수가 늘어나 조선인 대 일본인의 졸업생 비율은 1:3 이상으로 확대되었다
2.3. 해방
1945년 광복시까지 모두 14회에 걸쳐 838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대구의전은 광복과 함께 고병간(高秉幹)이 교장으로 취임하고, 1945년 10월 1일 단과대학인 대구의과대학으로 개편되었다. 그 뒤 1951년 10월 대구농과대학( 구제전문학교였던 관립 대구농업전문학교( 고등농림학교)의 후신)•대구사범대학(사범학교인 대구사범학교의 후신)과 합쳐져 경북대학교가 발족하면서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으로 통합되었다.3. 출신 인물
자세한 내용은 경북대학교/출신 인물 문서의
대구의과대학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
이 건물은 구 도립대구병원(사적 제443호, 현 경북대학교 의과대학병원 본관)건물과 마주보며 배치되어 있다. 3층의 붉은 벽돌(조적조) 건물로 남향하며, 정면 중앙부에는 4층으로 된 사각탑(Turret)을 두고 옥상에는 옥탑을 설치하였다. 평면은 ‘산(山)’자 모양으로 중복도(中複道)식이며, 현관 포치(Porch)를 중심으로 좌우대칭형이다. 건물의 외관 구성에 나타난 특징은 정면 중앙부 돌출 유리벽의 곡면처리 및 창 사잇벽과 옥상 파라팻부의 수평돌림띠는 정면성을, 옥상부의 사각탑과 창 사이의 수직벽은 수직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전체적으로 안정감과 웅장함을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