立花 道雪
1513~1585
1. 개요
일본 전국시대의 무장. 규슈의 명문 오토모(大友)가의 가신. 원래 이름은 벳키[1] 아키츠라(戸次 鑑連/호차 감련).2. 생애
벳키 치카이에(戸次親家)의 아들로 태어났다. 벳키 가문은 오토모 가문의 가신으로, 원래는 오미와씨(大神氏) 일족인 우스키씨의 지파였으나 직계 혈통이 끊겨 오토모 가문의 2대 당주 오토모 치카히데(大友親秀)의 아들 벳키 시게히데(戸次重秀)가 계승했다 한다. 처음에는 치카모리(親守)·치카카도(親廉) 등의 이름을 쓰다가, 주군 오토모 요시아키(大友義鑑)의 이름에서 아키(鑑)를 하사받아 아키츠라로 개명했다. 1570년 오토모 가신이었던 타치바나 아키토시가 모리 모토나리와 연합하여 반란을 일으키자 이를 진압하였고 주군 소린의 명으로 다치바나 집안을 계승한다. (타치바나 가문은 오토모 가문의 6대 당주 오토모 사다무네(大友貞宗)의 아들 오토모 사다토시의 후손이다.)[2] 후에 불문에 귀의하면서 도세츠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 단, 도세츠 자신은 다치바나성을 자칭한 적은 없다.'뇌신(雷神)'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장수로 그 포스나 활약상은 동쪽의 우에스기 겐신에 버금가지만, 사실 여타의 매체에 잘 등장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젊은 시절 벼락을 맞아 하반신마비가 되었기 때문이다. 뇌신이라는 별명은 여기서 유래하기도 한다. 벼락을 맞고도 죽지 않은 사나이가 되어 엄청난 프리미엄의 전설이 따라붙었으며, 도세츠가 쓰던 와키자시는(길이 58.5cm) 뇌신을 베었다고 해서 '뇌절환(라이키리마루~雷切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3][4]
어떤 기록에는 '직접 칼을 휘둘러 무사 일곱을 베었다는 등의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젊은 시절에 벼락을 맞고 하반신 마비가 왔다는 것은 창작일 가능성도 있다고.
하반신 불수가 되었지만 전장에선 가마 위에 걸터앉아 지휘했다고 하며, 명실공히 규슈에서 제일가는 명장으로서 고작 800여명으로 5,000명이 지키는 성을 함락시키는 등, 명성에 걸맞은 활약을 펼쳤다.
가이에서 세력을 떨치던 다케다 신겐이 그 명성을 듣고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까지 했다.[5]
타카하시 쇼운을 제자삼아 쇼운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전수하고 항상 군사행동을 함께 했다.
1578년 소린이 시마즈에 정벌을 계획하자 이에 반대하였으나 소린은 이를 듣지 않고 시마즈를 침공한다. 결국 미미가와 전투에서 주가인 오토모가는 큰 패배를 당하면서 주요 가신들이 다수 전사하고 가세는 줄어들어 시마즈와 류조지 가에 압박당하는 처지가 되었는데, 당시 오토모 소린은 비장의 카드인 도세츠를 적극 활용했고 도세츠는 이에 부응하여 전투 경험이 없는 젊은이들만 데리고도 적의 성을 공략하고 야전에서 류조지 가를 물리치는 등의 활약을 펼쳤다. 류조지 다카노부가 오키타나와테 전투에서 전사하자 시마즈 가의 압박은 더욱 커졌지만, 류조지 가는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고 그 틈을 타서 치쿠고에서 류조지 가의 성을 차례차례 함락해나갔다. 그러나 치쿠고에서 류조지 가의 핵심 거점인 야나가와 성[6]을 공격하다 진중에서 병사했는데 도세츠의 시신을 운반할 때 적이고 아군이고 모두 숙연해하며 전투를 행하지 않았다.
도세츠에게는 딸 하나밖에 없었는데 그 딸이 바로 전국 시대의 몇 안되는 여성 성주(가끔 당주로 알려져 있는데 당주는 아니다)였던 타치바나 긴치요이다.
대를 이을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제자 다카하시 쇼운의 장자인 다카하시 무네토라를 데릴사위로 들여 상속자로 삼았다. 물론 장자를 양자로 보내는 것은 저쪽에서도 잘 없는 일이나, 쇼운은 도세츠를 존경하는 마음도 있고 시기상 도세츠에 대한 신뢰를 보여줘야할 필요도 있고 해서 아들을 보냈다고 한다.
아무튼 이 무네토라가 후에 임란중 벽제관 싸움에서 명군을 물리쳤던 다치바나 무네시게이다. 딸인 긴치요는 세키가하라 전투 중, 무네시게와 함께 무장하고 영지를 지켰다고 한다. 성격이 워낙 드세서 부부관계는 그리 좋지 않았던 듯하다.
3. 대중매체에서
3.1. 노부나가의 야망
100만인의 노부나가의 야망 |
노부나가의 야망 신생 |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에서는 항상 최상위권의 통솔치를 부여받는등 대우가 좋은편.
천하창세에서는 제 1시나리오 기준으로 통솔95 지략81 정치51 교양67의 능력치에 특기로는 창금3, 도발[7], 그리고 단 3명만이 보유한 개사기 특기 군신[8]을 가지고 있다. 캐릭터 성능 자체는 우에스기 겐신보다 딸리지만 1:1로 전법을 발동하고 붙으면 겐신을 처바른다. 우에스기 겐신의 특수 돌격(공격간격이 짧아진다)은 결과적으로 돌격 대미지를 높이는데, 다치바나 도세츠의 전법이 적의 공격을 되돌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레벨이 높아 자신은 거의 안 맞고 거의 다 되돌려준다.
오토모 가문을 제외한 규슈 소재의 다이묘 선택시, 규슈통일에 가장 큰 난관이 되는 무장.
혁신에서는 통솔107 무용89 지략86 정치54에 아시가루 적성 S이다. 기본 통솔력이 107로 전체 3위[9]이다. 아시가루 고유전법 '강습(強襲)'을 보유하고 있지만 소속가문인 오토모 가의 기술트리가 병기특화라 빛을 보기 힘들다.
천도에서는 통솔107 무용85 지략86 정치64로 전작에 비해 무용이 소폭 하향 된 반면에 정치력이 제법 상승했다. 특기는 아시가루 계열 특기로, 적 부대에게 피해를 줌과 동시에 사기를 낮추고 혼란상태로 만들어버리는 특기인 '귀창(鬼槍)'을 보유하고 있다. 삼국지 12에서 신장 전생 시나리오를 해봤으면 분명히 타치바나 도세츠의 일러스트 인데 이름이 벳키 아키츠라라서 의아할 수 있다.
창조에서의 능력치는 통무지정 순으로 95/87/87/64. 전법 또한 본인과 딸만 가지고 있는 '뇌신'으로 코스트 3개를 소비하여 주변 적군의 속도와 수비력을 약화시키는 전법이다. 기본적으로 군웅집결을 제외한 모든 시나리오에서는 오토모 가문의 가신으로 나오며 가문 내 통무지 1순위 능력자이기에 귀중한 인재다. 본인도 강력하지만 초기 시나리오를 지나 중반기가 되면 또다른 능력자인 다카하시 쇼운이 원복하는 관계로 두 사람을 투탑으로 쓰며 규슈 지역을 정복하면 된다. 특히, 남쪽의 시마즈가 강하다고는 하나 시마즈 요시히로가 원복하기 전 시나리오를 선택했을 때는 도세츠가 사실상 규슈 원탑의 무장이기 때문에 어느 가문과 싸워도 절대 밀리는 법이 없다. 다만 초기 시나리오에서는 스오 오우치 가문이 시작부터 전국 최상급 세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빠르면 빠를 수록 오우치와 동맹을 맺어 두고 신나게 규슈를 털면 그만이다. 무네시게가 등장하는 시기엔 거짐 말년이라 둘을 같이 쓰는 시나리오는 사실상 천하삼십장이나 군웅집결 외에는 없다.
3.2. 센고쿠히메
센고쿠히메 시리즈에서는 휠체어를 탄 병약해보이는 여성으로 묘사되었지만 무력은 그 상황에서도 후덜덜...오토모 소오린 루트의 진히로인이다. 3탄에서는 다치바나 무네시게에게 진히로인 자리를 내주고 자신은 무네시게의 양모로 등장.
[1]
'벳키 / 베츠키 등으로 읽힌다. 요즘에는 '토츠기'로도 읽는 듯.
[2]
타치바나 아키토시는 이게 2번째 반란이었기 때문에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3]
일본에서 출간된 판타지 라이브러리 시리즈 중 신검전설에서는 벼락이 치는 날 나무 한 그루가 있는 언덕에 올라가서 기다리다가 나무가 벼락에 맞는 순간 단칼에 나무를 베었고 나무를 베는 순간 감전되어 하반신 불수가 되었다는 내용으로 나온다.
[4]
하타케 카카시가 번개를 잘랐다는 일화,
뇌절과
치도리의 이름 등이 도세츠에서 따왔다.
[5]
참고로 신겐은 '서국의 뇌신'으로 칭해진 도세츠와 비견되는 '동국의 군신'
우에스기 겐신과 라이벌 관계였다. 아무래도 자신의 라이벌과 비견되는 평을 듣는 인물이니 멀리 있어도 관심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6]
원래는
나베시마 나오시게가 지키고 있었는데, 류조지 타카노부가 전사하자 나베시마 나오시게가 사가 성을 지키러 가서 류조지 타카노부의 6촌 동생인 류조지 이에하루(龍造寺家晴)가 지키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나중에 양아들 무네시게가 다이묘가 되어 받은 성이 바로 이곳이다.
[7]
보통의 도발과 달리, 범위가 전장 전체다.
[8]
부대공격력을 높이고 주변 부대의 사기를 지속적으로 깎는다. 사기 올리기가 까다로운 전투 시스템이기 때문에 상당히 무서운 효과다. 다른 보유자 둘은 우에스기 겐신과 사나다 유키무라.
[9]
1위는 우에스기 겐신(120) 2위는 다케다 신겐(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