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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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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Modern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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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시대 런던의 모습
1. 개요2. 상세
2.1. 근대를 상징하는 것들
2.1.1. 한국2.1.2. 중국2.1.3. 일본2.1.4. 서양

[clearfix]

1. 개요

근대(, modern period[1])는 고전후 시대 현대 시대의 사이의 시대이다. 유럽사에 한정하여 중세 이후의 시대로도 볼 수 있다. 근대와 현대를 분리하는 경우 대개 15~16세기경부터 시작하여 20세기 초중반에 끝나는 것으로 간주하며, 분리하지 않는 경우 15~16세기 이후 현재까지로 간주된다. 근대는 다시 16세기 초를 시작으로 하는 초기 근대(early modern period)와 18세기 중반 무렵부터의 후기 근대(late modern period)로 나뉘는데, 동양에서 전자를 근세로 번역하고는 후자만 '근대'라 부르기도 한다. 한국사에서는 일반적으로 고종의 즉위이자 흥선대원군의 집권부터 해방 이전까지가 근대이다.[2]

시대구분은 학자들마다 그리고 나라와 각 문화권마다 모두 그 기준이 다 다르다. 현재 학계에서도 명확한 시대구분이란 존재하지 않으니, 강박적으로 구분 지으려 하지는 말자. 어차피 학자들끼리도 그 기준이 다 제각각이다.

해당 문서는 근세 이후~현대 이전를 뜻하는 '후기 근대'와 근세와 후기 근대를 모두 포함하는 포괄적인 '근대'를 함께 설명하나, 일단은 후기 근대에 중점이 맞춰져 있음을 알린다.

동양사와 서양사 분야에서 근대를 구분하는 방식이 조금 다르다. 동양사에서는 왕조 구분이 더 역사를 구분하기 쉽기도 하기에 이러한 시대 구분은 왕조 구분에 맞추어져 있다. 더불어 근대를 개항기부터로 간주하는 경향이 많으므로 그 이전을 근세로 구분한다. 이 과정에서 근세는 관료제가 들어선 근대로의 이행기, 근대는 개항을 통한 발전기로 바라보는 경향이 크다, 이 관점에서 중국은 청나라 말기, 조선은 조선 후기 대한제국시기, 일본은 메이지 유신 때를 근대로 볼 수 있다. 한편 서양사도 이와 비슷한데, 초기 근대의 대표적인 특징이 절대왕권의 수립이고, 동양의 관료제나 서양의 절대왕권이나 둘 다 강력한 중앙집권화가 이루어져야지 가능한 것이라 어느 정도 동속성을 보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서양사에서는 근세라는 명칭을 쓰지 않으므로 이 시기부터 근대로 바라본다. 하지만 이럴 경우 근대 안에서의 변혁기가 너무 많아지므로 일정한 범주로 묶어서 초기 근대와 근대로 나누는 편이다.

2. 상세

근대(modern)라는 용어는 1585년에 현재 사용되는 의미로 처음 등장했으며, '현재, 최근의 시대'를 지칭하는 라틴어 형용사 modo에서 기원했다. 1420-1630년 사이의 르네상스는 중세 후기(Late Middle Ages)와 전기 근대(Early Modern times)를 구분하는 전환기였다.

서구에서 말하는 Modern은 대체로 동로마 제국의 멸망(AD 1453년)이나 루터의 종교 개혁(AD 1517년)에 시작하여 Contemporary(현대)를 포함한 시대를 말한다. 반면 한자문화권에서 말하는 '근대'는 넓게는 Early Modern(초기 근대, 혹은 근세)에서 시작하여 Contemporary를 배제한 개념이며, 좁게는 Early Modern마저도 배제한다. 즉 17세기 유럽은 분명히 Modern이지만 '근대'인지는 논쟁이 있고, 21세기는 명백하게 Modern이지만 '근대'가 결코 아니다.[3]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은 '근대'를 종교개혁, 시민사회, 계몽 등에 의해 특정되는 시대라고 바라봤다. # 헤겔의 생각을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1. 종교 개혁에 의한 사상적 자유.
  2. 시민 사회의 성립에 의한 사회적 자유.
  3. 개인들이 각자의 목적을 마땅히 자유롭게 추구.
  4. 1, 2, 3의 것들을 상호간에 조정하면서 권리로서 보증하기 위한 계몽.
  5. 합리적으로 하나의 관계 = 국가를 형성하며 운영해가는 시대와 세계

더 깊이 들어가면 미국이 독립하는 1776년, 혹은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는 1789년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 한편 17세기, 18세기가 근대의 시작이라는 의견도 있다. # 자본주의의 형성과 시민 사회의 성립이라는 중심으로 17-18세기 이후가 근대라는 시각도 있다. # 서양의 기준으로는 신의 섭리를 기준으로 가치관과 사회가 구성되었던 시대를 중세로 여기기 때문에 시민이 주체로 등장하는 시기를 근대로 여기기도 한다. 프랑스 혁명을 근대의 시작으로 보는 것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

다만 근래에는 중세와 근대(특히 초기 근대) 사이의 사상적 연속성을 강조하는 추세이며, 특히 19세기 계몽주의자들이 초기 근대에 자신들만의 '상상의 나래'를 덧붙인 것을 배격하고 있다. 즉, 위에서 말한 헤겔의 시대 구분은 오늘날 설득력을 잃었으며, 특히 초기 근대에는 적용할 수 없다. 헤겔의 이러한 시대 구분은 19세기 사상가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유럽'에 초기 근대의 유럽을 억지로 끼워맞춰 해석한 '예쁜 그림'에 불과하다.
가령, 당대의 모든 사상가들은 인간, 신, 그리고 자연계 사이의 긴밀한 관련성을 확신했으며, 이로써 신학적 진리와 과학적 진리 사이에 상호관련성이 있음을 확신했다. 따라서 당시에 논의된 주제들은 과학과 신학/종교가 뒤섞인 복잡한 성격을 띠었다. 근대 초기의 자연철학을 이해하려면 오늘날의 여러 가지 상식적인 가정과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첫째, 거의모든 유럽인, 특히 이 책에서 거론된 모든 과학사상가는 기독교를 믿고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현대적이든 아니든 간에 과학 연구에는 무신론—에둘러 표현하자면 ‘회의론’—이 필요하다는 개념은, 과학 자체를 종교로 삼길 바라는 (대체로 자신들을 그러한 종교적 위계질서에 포함시키는) 이들이 제안한 20세기의 신화다. 둘째, 근대 초기의 경우 기독교 교리는의견이나 개인적 선택이 아니었다. 당시의 기독교 교리는 자연계의 사실이나 역사적 사실에 맞먹는 위상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신학적 이론이나 예배 관행의 고차원적인 지점을 놓고서는 교파 간에 분명 이견이 존재했다. 마치 오늘날의 과학자들이 중력의 실재성이나 원자의 존재 또는 과학적 연구의 타당성을 의심하지는 않으면서 아주 미세한 지점을 놓고 서로 논쟁을 벌이듯이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신학이 결코 ‘개인적 믿음’의 지위로 전락한 적은 결코 없었다. 오늘날의 과학과 마찬가지로 당시의 신학은 모두가 동의하는 사실들의 요체이자 존재에 관한 진리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탐구 행위였다. 그렇다보니 신학적 교의들은 근대 초기 자연철학자들이 연구 자료로 쓴 데이터 집합의 일부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신학적 사상들은 과학 연구와 추론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단지 과학 연구의 바깥에서 얼마간의 ‘영향력’을 미친 정도가 아니라, 신학적 사상은 자연철학자들이 연구하던 세계의 필수적이고 중요한 일부를 차지했다.
-Lawrence M. Principe 씀 노태복 역, 『과학혁명』 2장
미슐레, 부르크하르트, 페이터는 르네상스를 역사의 한 시대라기보다는 하나의 정신으로 바라보는 19세기식 개념을 만들어냈다. 예술과 문화에서의 성취가 개인에 대한 새로운 태도와 ‘문명화’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르네상스를 이런 식으로 정의하는 태도에는 문제가 있는데, 15세기부터 계속된 현상에 대한 정확한 역사적 설명을 제시하기보다 그것을 19세기 유럽 사회의 이상향으로 설명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들 연구자들은 제한적인 민주주의, 교회에 대한 회의주의적인 태도, 예술과 문학의 힘, 다른 문명들에 대한 유럽 문명의 승리를 찬양했다. 이러한 가치들은 19세기 유럽 제국주의를 지탱했다.
그린블랫이 저서 제목으로 사용하기는 했지만, 이제 그와 동료 연구자들은 르네상스를 설명할 때 ‘근대 초’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용어는 사회사에서 온 것으로 미슐레와 부르크하르트의 이상적인 설명보다 좀더 회의적인 르네상스와 근대 세계의 관계를 제시한다. 이 용어는 또한 르네상스라는 개념을 19세기 저자들이 제안했던 문화적 ‘정신’으로보기보다는 역사 속의 한 시대로 강조한다.
-Jerry Brotton 씀 윤은주 역, 『르네상스』

즉 15세기 말을 기점으로 어떤 엄청난 사상적인 전환이 이루어졌고 그것이 '근대'를 부른 것이 아니다. Early Modern 시대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그리스도교적으로 생각했으며, 오히려 사회에 대한 교계의 통제는 더욱 강화되었으며, 경건주의가 사회 상층부부터 하층부까지 모두 보급되었고, 신학적 사상은 과학 연구의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렇기에 오늘날엔 '르네상스 정신' 같은 19세기식 역사 인식이 사장되었으며[4] '르네상스 시대'라는 용어도 '초기 근대'라는 건조한 용어로 대체되어가고 있다. 곧, 오늘날 중세와 근대의 구분은 '중세를 끊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했다'라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다만 관습적인 의미의 용어에 가깝다.

시대구분에 한 획을 그은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장기 19세기'와 '단기 20세기' 개념을 주장했다.
<장기 19세기>
1. 혁명의 시대( 1789년- 1848년)
2. 자본의 시대( 1848년- 1875년)
3. 제국의 시대( 1875년- 1914년)
<단기 20세기>
1. 파국의 시대( 1914년- 1945년)
2. 황금의 시대( 1945년- 1973년)
3. 산사태 시대( 1973년- 1991년)
이에 빗대어 1789년부터 1914년까지를 근대로, 그 이후를 현대 내지 동시대로 볼 수도 있다.

모더니즘은 이 근대 시기에 시작돼 현대 초중반까지 이어진 사상적 흐름을 일컫는다. 이전 시기와 다른 것은, 이전의 정신이나 유산을 계승하려고 한 게 아니라 극복하고 뒤집으려는 사고가 강해졌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옛날 사람들보다 우리가 잘났다는 식의 사고로 요약된다. 문화와 예술에서 이런 분위기가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한 예로, 입방체 모습의 단순심플한 건축물(아파트) 같은 것도 다 근대 모더니즘부터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근대의 시작이 언제부터냐에 대해서는 이견이 갈리는 편이나, 대중적으로는 산업 혁명이 시작되면서 자본주의 경제가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한 18세기 중반 이후부터로 인식되는 편이다.

동양에서의 근대란 개념은 서양과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진다. 앞서 말했듯 '근대'라는 용어부터가 정의하기 어려운 관습적 용어에 가까우며 19세기 서양에선 이른바 '르네상스', 그것도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초기 근대 유럽'이 아니라 19세기 인텔리의 감수성에 맞게 이상화된 '초기 근대 유럽'을 기준으로 정의해버렸다. 혹은 마르크스 사관에 의하여 '유럽사 기준으로' 관념화시킨 역사 발전 도식으로 근대를 정의했다. 당연히 이 기준을 가지고 동양사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기에, '서구화'를 '근대화'로 정의하고는 '서구화' 이전의 단계를 '전근대'로 칭하는 관습이 굳어졌다. 따라서 동양의 근대 기준은 서양보다 늦은 19세기쯤으로 정의된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는 고종의 즉위 및 흥선대원군의 집권기(1864년)부터 8.15 광복까지를 근대로 분류한다. 광복 직후 미군정/ 소련군정기부터 한국 전쟁까지의 해방정국은 근대로 보는 의견도 소수 있지만 대체로 현대사로 간주한다.

일제강점기 시절 교과과정에서는 갑오 개혁을 한국 근대의 시작으로 비정했다. 이 때문에 일본 학설로 공부 배운 사람들은 근대의 시작 갑오경장이 나온다. 현대 한국 학계에서는 근대의 시작으로 갑오 개혁을 주장하는 사람은 사실상 없다.

일본사에서는 메이지 유신(1868년)에서부터 제2차 세계 대전의 종전(1945년)까지를 근대로 간주한다. 중국사에서는 아편전쟁(1840년)부터 시작하여 5.4 운동(1919년) 또는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1949년) 전까지 근대로 친다.

한국에서는 산업화를 흔히 근대화라고도 말하는 경우도 많다.

2.1. 근대를 상징하는 것들

2.1.1. 한국

2.1.2. 중국

2.1.3. 일본

2.1.4. 서양


[1] 영단어 Modern은 한자어 '근대'와 '현대'를 모두 포괄한 개념으로도 쓰인다. 이에 관해서는 동시대 문서 참고. [2] 조선 건국부터 철종 재위기까지는 근세로 분류하고, 세부적으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부터 철종의 재위기간까지를 근대태동기로 부른다. [3] 용어가 이렇게 꼬인 이유는, 일본 사학자들이 에도 시대를 구분하기 위해 중세도 근대도 아닌 '근세'라는 애매한 시대 구분을 밀어넣은 데 원인이 있다. 이 용어가 한국사학자들에게 영향을 주고, 동양인들의 서양사 서술에 역류하면서 Early Modern을 (원래는 '근대'를 배제한 개념인) '근세'라 부르는 어처구니 없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게다가 이제와서는 중세성이 어쩌고 근대성이 어쩌고 하는 게 19세기인들이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애매모호한 개념으로 밝혀진 마당이라, 이미 관행으로 굳어버린 용어들을 바꿀 동기도 없어져버렸다. [4] 단, 대중 교양서에선 여전히 현역이다. [5] 1960년대는 현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