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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0-18 20:48:14

극진공수도/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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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분파 일람3.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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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극진공수도 최영의 총재 생전에도 독립해서 나간 단체들이 많았으며, 대도숙 공도, 사도관 가라데, 아시하라 회관, 월드 오야마 가라테 등이 독립해 나가서 유명해진 단체들이다. 직접 독립하진 않았으나 정도회관과 원심회관 같은 경우도 원래 극진에서 유명하던 사범과 선수들이 구성원의 주축을 이룬다.

총재 사후에는 '극진'의 이름을 달고 분파가 되기 시작한것이 특징. 사실 이 분파문제는 각 단체 지도부들이 양보없이 맹렬히 대립하고 법정까지 간 문제라, 각 단체의 사범과 수련생들도 언급이 조심스러울수밖에 없어 언급이 꺼려지는 문제다. 상황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은데...

1. 최영의 총재 사후에 유언장으로 극진회관 2대 관장으로서 문장규[1]가 선출되었으나, 유언장만으로는 법적효력이 없다는 주장과 함께 일부는 마쓰이 쇼케이의 리더쉽에 의문을 제기[2]하며 분열.

2. 국제공수도연맹(IKO) 상표권과 '관장' 직함 사용 등으로 법정 공방이 생김. 신극진회, 극진회관, 극진회관 테츠카그룹, 극진 종가회, 극진 장학회, 극진관, 극진연합, 기타 그룹 등으로 나뉘어 서로 대립. 결국 쌍방향으로 다수의 법적 공방이 시작됨.

3. 2007년에 최종적으로 법원에서 판결이 내려짐. '극진회관'의 2대 관장으로서 마쓰이 쇼케이의 관장 직위는 인정되나, 극진공수도를 만드는데 다른 사람들 역시 공헌을 했기에 그 사람들이 상표권이나 명칭을 사용하는데 방해를 하면 안됨(타 단체를 이단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이 되기에). 현 극진회관은 분열로 인해 최영의 총재 생전과 같은 단체라는 의미로 보기 힘들고, '관장'이란 명칭이 한 단체 수장임을 과시하는 명칭으로 쓰일 수 있기에 이 명칭을 사용한다고 해서 다른 단체를 이단처럼 보이게 하지는 않음.

그리하여 다들 분리가 되고, 각 단체의 수장이 자신들 단체의 관장직을 주장 할 수 있는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1. 최영의 총재가 만든 단체는 '극진회관', 해당 이름을 쓰는 단체는 3~4 단체이다. 극진회관 IKO1, 극진회관 전극진 .극진회관 테츠카그룹, 극진연합, 극진회관 마쓰시마 등이 있다.

2. 세계대회와 전일본대회 등을 최영의 총재 시절로부터 이어서 개최 중. 다른 단체들은 전부 새로운 대회를 개최한다.[3] 현재까지 세계대회, 전일본대회를 꾸준히 하고 있는 단체는 IKO1, 신극진회, 극진관, 극진연합이 있다.

3. 최영의 총재시절에 이미 7~8단을 받은 고단자들 대부분이 마쓰이 쇼케이 관장을 지지중. 예를 들자면 고다 사범(본부 고문), 이소베 사범(브라질 지부장), 피터 쳉(싱가폴 지부장), 바비 로우(하와이 지부장이자 최영의 총재 최초의 내제자. 2011년 연말에 사망.), 하워드 콜린스(유럽 지부장), 케니 우이텐 보가트(아프리카 지부장)

그러나 2010년 기준으로 일부 고단자들이 마쓰이 쇼케이 지지 철회 및 탈퇴하는 일이 발생했다. 하워드 콜린스 사범이 신극진회로 이적, 2016년에는 오사카의 세계대회 2연패의 거성 나카무라 마코토 탈퇴, 2018년에는 피터 쳉까지 탈퇴하였다.

4. 2018년 기준으로 일본 내 너무 많은 IKO1 도장들의 탈퇴로 일본 내 도장 수는 신극진회에 밀려 2위가 되었다. 그래서 현재 도장 수로는 1위는 신극진회, 2위 IKO1이다.

현재 각 유파의 수련생들은 당연히 자신을 정통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으므로, 괜히 타 유파에게 저런 말을 해서 싸움을 일으키지는 말자. 또한 유파가 다르다고 해도 어쨌든 같은 극진의 뿌리에서 나온 단체이기 때문에, 사이비 단체가 아닌 이상 수련 내용이나 대련 규칙에 큰 차이는 없다.[4] 자신이 어떤 신념이나 특별한 이유를 가지고 있지 않은 한 굳이 멀리서 찾지 말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도장을 찾아 배워도 상관 없다.

2. 분파 일람

3. 관련 문서



[1] 제4회 극진 세계대회, 체급제 대회 우승자이자 100인 조수 달성자로 한국인이다. 일본명은 마쓰이 쇼케이. [2] 당시 마쓰이 쇼케이는 30대로 젊은데다 그보다 경력있고 명망있는 사범들도 있었기 때문. [3] 그러나 신극진회 역시 전일본대회, 세계대회를 꾸준히 이어서 하고 있고 분파 이전 기록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신극진회의 역대 세계대회 우승자 목록을 보면 분파 이전의 5회까지는 IKO1과 동일하다. [4] 단, 극진관처럼 안면 타격을 허용하는 예외의 경우는 존재한다. [5] 재일교포로 한국 이름은 문장규(文章圭)이며, 마쓰이 쇼케이는 일본 내 통명이다. [6] 모두 총본부 인가를 받은 정식 지부이나 두 지부간에는 교류 없이 철저히 분리되어 있는 상태이다. [7] 재일교포 출신으로 한국명 '노초웅(盧初雄)'. 1982년에 일본으로 귀화. [8] 그러나 9명은 극진회관으로 돌아가고, 1명(후쿠시마 지부)는 또 이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