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웹툰 '숲 속의 미마'의 등장인물 그디니아에 대한 내용은 그디니아(숲 속의 미마)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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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디니아 폴란드어: Gdynia 독일어: Gdingen | Gotenhafen(1939년~1945년) 카슈브어: Gdini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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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역 | 포모제주 | ||||
면적 | 391.5km² | ||||
인구 | 243,918명[1] | ||||
역사 | 1926년 2월 20일 도시 승격 | ||||
시간대 | UTC+01:00 (GMT)[서머타임] | ||||
링크 | 공식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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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발트해에 접한 폴란드 포모르스키에 주의 항구 도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단치히(그단스크)와 함께 폴란드의 무역 물동량을 담당하였으며, 현재도 폴란드 2위의 물동량을 자랑한다. 단치히와 마찬가지로 폴란드 회랑에 위치해 있다.2. 언어별 표기
폴란드어 | Gdynia |
독일어 | Gdingen(그딩엔)[3] |
3. 역사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독립한 폴란드는 '독립한 폴란드에게 바다로의 접근을 허용해야 한다'는 우드로 윌슨의 평화원칙 중 13번째 조항에 따라 바다와 접하는 영토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베르사유 조약에서 독일의 서프로이센 지역이 폴란드에게 할양되었는데, 폴란드 본토에서 바다인 발트해로 가장 가까이 갈 수 있는 지역이자 역사적으로 폴란드 분할 이전까지 폴란드 영토였으며, 폴란드인이 다수인 지역이라 민족자결주의적으로도 부합했기에 서프로이센 지역의 할양이 결정되었다. 하지만 이 조치는 독일에게 있어서 큰 불만이었는데 서프로이센이 비록 폴란드 영토였다고 하지만 100년 넘게 독일화가 상당히 진행되어 독일인의 숫자도 상당한 지역이었으며 무엇보다 서프로이센이 폴란드에게 넘어가면서 동프로이센이 독일 본토와 고립된 월경지가 되어버렸다는 것이었다.그런데 폴란드에 할양된 서프로이센의 주도이자 폴란드의 유일한 항구도시였던 단치히(그단스크)는 이미 시민의 절대다수가 독일인이었다. 이는 협상국이 내세운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저촉되는 것이었기에 협상국은 단치히와 그 주변지역을 묶어 독일에도, 폴란드에도 속하지 않는 국제연맹 소관의 단치히 자유시라는 도시국가로 독립시켰다. 다만, 이 단치히가 폴란드 입장에서는 거의 유일한 항구도시였기 때문에 폴란드는 단치히 자유시와 관세동맹을 맺어 단치히의 세관을 통제했고 단치히 시내의 우체국 옆에 새로 우체국을 세워 우편 업무도 통제했다. 또한 단치히 철도도 폴란드 소유였으며 단치히의 항구도 사용할 수 있었다. 일반적인 국가였다면 엄연한 주권침해였지만 폴란드 정부는 이러한 행위들을 '바다로의 자유로운 접근을 위해 베르사유 조약에서 보장한 행위'라며 정당화했다. 그러나 강제로 조국인 독일에서 분리되었다고 여긴 단치히의 독일인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폴란드의 이런 행위에 크게 분노하였고, 급기야 신생 폴란드의 가장 큰 위기였던 소비에트-폴란드 전쟁 당시에는 소비에트 적군과 폴란드군 간의 바르샤바 전투가 벌어지기 직전 단치히의 독일인 항구 노동자들이 협상국이 폴란드에 지원한 물자를 내리는 걸 거부하는 파업을 일으켜 폴란드의 전쟁 수행을 방해하는 일도 있었다.
전쟁 후 폴란드는 자국 영토 내에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항구의 필요성을 느끼고 항구를 건설할 수 있는 부지를 물색하던 중 그당시 작은 어촌마을이었던 이곳을 선정하여 대규모 항구를 건설하였다. 이후 단치히를 대체하기 위한 폴란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그디니아는 근대적 항구도시로 발전하였고 폴란드 침공 직전에는 폴란드 수출의 41.6%가 경유햐는, 단치히의 물동량마저 넘어선 폴란드에서 가장 큰 항구로 성장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나치 독일에 의해 점령되었으며, 단치히에서 있었던 것과 비슷하게 이곳에서도 학살이 있었다. 항구는 해군 기지로 사용되었으며, 1945년 소련의 공습으로 많은 시설이 파괴되었으나, 전후 복구되었다. 현재도 폴란드 해군의 기지가 있다.
4. 기타
그롬급 구축함의 2번함인 브위스카비차(Błyskawica)와 범선 다르 포모자(Dar Pomorza)가 이곳에 박물관함으로 보존되어있다.샤른호르스트급 전함 2번함인 그나이제나우가 무장이 해체된 상태에서 이곳 항구에서 자침하여 최후를 맞았으며, 전후 폴란드에서 스크랩하였다.
여객선[4] 빌헬름 구스틀로프가 이곳에서 출항한 뒤 소련의 잠수함 S-13의 어뢰공격을 받고 침몰하였다.
많은 카슈브어 화자들이 그단스크와 이곳에 거주중이라고 한다.
아르카 그디니아의 연고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