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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족 Koreanic Languag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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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어 * 한국어의 방언으로 분류되기도 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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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어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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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어 가라어 | 伽耶語, 加羅語 Kara languag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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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색은 가야어를 사용했던 지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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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colbgcolor=#003074> 유형 | 교착어[1] | |
어순 | 주어-목적어-서술어 (SOV) | |
서자방향 | 우종서 (오른쪽부터 세로쓰기) | |
문자 | 한자 | |
주요 사용 지역 | 한반도 남부[2] | |
원어민 | 모국어 화자 없음 | |
계통 | 한국어족 혹은 일본어족 | |
언어 코드 |
<colcolor=#fff><colbgcolor=#003074> ISO 639-1 | - |
ISO 639-2 | - | |
ISO 639-3 | zra | |
글로톨로그 | - |
[clearfix]
1. 개요
加耶語, 伽倻語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가야어 항목
가야에서 사용했던 언어로, 7세기쯤 사멸됐다. 사멸 후 신라어에 자연스럽게 흡수되었다. ISO 639-3 및 링귀스트 리스트에서의 언어 코드는 'zra'이다. '가라어'라고도 한다.
2. 상세
가야에서 특정 언어를 사용했고, 이를 문자로 기록했음은 확실하다. 벼루나 붓, 먹과 같은 유물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야의 언어와 관련된 직접적이고 명확한 기록은 굉장히 소략하다. 현전하는 명시적인 기록은 삼국사기 사다함 열전의 대목이 유일하다.及抵其國界, 請於元帥, 領麾下兵, 先入旃檀梁. 【旃檀梁, 城門名. 加羅語, 謂門爲梁云.】
그 국경에 이르자 원수(元帥)에게 청하여 휘하 병사를 거느리고 먼저 전단량(旃檀梁)으로 들어갔다. 【전단량은 성문의 이름이다. 가라(加羅) 말로 문(門)을 양(梁)[3]이라 했다고 한다.】
《 삼국사기》 권44 〈사다함 열전〉 中
그 국경에 이르자 원수(元帥)에게 청하여 휘하 병사를 거느리고 먼저 전단량(旃檀梁)으로 들어갔다. 【전단량은 성문의 이름이다. 가라(加羅) 말로 문(門)을 양(梁)[3]이라 했다고 한다.】
《 삼국사기》 권44 〈사다함 열전〉 中
비교적 분명히 확인되는 또다른 가야어 어휘로는 고해(古奚), 산반해(散半奚), 만해(滿奚), 마차해(麻且奚) 등 가야의 지명에서 나타나는 접미사 해(奚)가 있다. 이는 백제 지명에서 성(城)을 뜻하는 접미사 혜(兮)·하(下)·지(支/只)[4]와 동계어로 보이며, 실제 발음은 *kɛ로 재구된다. 반파국의 외교관 고전해와 안라국의 외교관 이탄해, 신이해(辛已奚)의 이름에서도 같은 단어가 보이는데, 고대 한국 인명에 지명 요소가 들어가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다.[5]
이외에도 가야의 여러 소국명과 지명[6], 인명[7]을 비롯한 고유명사 자료가 가야어 연구에 도움이 된다. 가야의 왕호 한기(旱岐: *kankɛ)는 신라 금석문에서 관등 끝에 붙는 간지(干支)와 같은 단어이며,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가야 왕 기본한기의 이름 기본(己本: *kɛpɔr)은 백제어·신라어의 기부리(己富里)·거벌(居伐)과 같은 단어로서 현대어 고을로 이어진다.
가야인이 당대에 만든 것으로 확인되는 (혹은 추정되는) 자료는 합천 매안리비[8], '大王'명이 새겨진 뚜껑이 있는 긴 목 항아리, '下部思利利'명이 새겨진 짧은 목 항아리, 그리고 토기에 남아 있는 '二得知', '井', '+' 등이 새겨진 것 정도이다.
3. 분류
한국어족에 속해 있지만, 초기의 가야어는 일본어족에 속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는 아래 문단에 후술한다.3.1. 반도 일본어설
자세한 내용은 반도 일본어설 문서 참고하십시오.'가야어가 일본어족에도 속한다'라는 주장도 있다. 미국의 언어학자인 알렉산더 보빈은 지명 및 인명을 분석한 결과를 통해, 초기의 가야어가 일본어족에 속한다고 추정하고 있다. 같은 가설에서 보빈은 가야의 언어가 후대에는 고대 한국어로 서서히 대체되었다고 보는데, 이는 한국어와 동계로 추정되는 고구려어의 영향으로 인한 결과로 생각했다.[9] 만약 초기 가야어가 일본어족이라는 주장이 정설이다면 반도 일본어설에 대한 증거가 될 수 있다.
[1]
한국어족과 일본어족 모두 하위 언어들이 교착어이기에 교착어였음은 거의 확실하다.
[2]
그 중
가야의 영토에서 주로 사용.
[3]
당시에는 '돌'에 가까운 발음으로 훈독했다.
[4]
삼국시대 당시에는 ㄱ으로 시작했다.
[5]
당장 신라 상대 인명에서 자주 쓰인 접미사 부(夫)·부례(夫禮)는 벌판을 뜻하는 부리(夫里)와 같은 단어다.
알천,
금천,
구진천,
동타천, 횡천, 성천, 술천, 원천, 철천 등 내 천(川) 자로 끝나는 인명들도 더러 있고, 인명 끝에 종종 보이는 품(品) 역시 근암성(近巖城)과 근품성(近品城)의 이표기 관계를 고려하면 바위 암(巖)의 이체자 嵒을 간략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6]
삼국사기에
우륵이 작곡한 것으로 기록된 가야금 12곡의 곡명 역시 가야의 지명으로부터 따온 것으로 추정된다.
[7]
삼국사기,
삼국유사,
일본서기,
신찬성씨록 등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8]
가야에서 세운 비석인지 사실 논란이 좀 있는 비석이기는 하지만, 가야의 비석이 맞다면 현존하는 유일한 가야 비석이다. 비문은 마모가 심해 몇 자 판독할 수 없지만, '干支', '村'과 같은 문자가 남아 있다.
[9]
알렉산더 보빈은
광개토대왕이
금관국을 침공한 것이
가야에서
일본어족 계통 언어가 쇠퇴하는 데에 결정타가 되었다고 추정했다.